영상, 잘 만들고 싶을 뿐이었는데

예능 편집 기본기

by 정영택

어떻게 만들어야 영상이 재밌어져요?


모르겠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등등, 많은 플랫폼이 있는 지금은 더 정답이 없다.

2005년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조연출로 처음 한 꼭지의 연출을 맡게 됐다. 밤샘 편집 후 여기저기서 까이는 건 둘째 치고, 한동안 내가 봐도 부끄러운 결과물들을 쏟아냈다. 답답했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편집할 수 있지?


먼저 고백하면 나는 PD 치고는 심한 내향형이다. 연출을 위해 현장에서 뭔가 요구하는 걸 미안해서 잘 못 한다. 그래서 촬영본을 끌어안고 밤새 끙끙대며 편집으로 살려보려고 애쓰기 일쑤였다. 편집법을 알고 싶었다. 교보문고 같은 큰 서점에 가면 편집에 관한 책이 있겠지.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닐 거야. '편집의 정석' 같은 책을 찾아보자.

없었다. 몇 시간을 뒤져도 이거다 싶은 책을 찾을 수 없었다(하지만 훗날 찾았는데 그 책들은 밑에 적는다). '프리미어 프로' 같은 편집 툴에 대해 설명하거나, 신문방송학과에서 교재로나 쓰일만한 개론 책이 다였다. 빈손으로 서점을 나선 후 나름 용기를 내서, 당시 PD 님들과 선배들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해야 편집을 잘할까요?"

답은 늘 비슷했다.


많이 보고 직접 많이 해봐야 '감'이 생긴다.

궁금했다. 그 '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감'이라는 건 '이유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나 생각' 아닌가. 게다가 느낌이나 생각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건데, 그 '이유'를 모른다?

방송 프로그램 한 편을 만들려고 그 '감'이라는 게 있다는 방송쟁이들이 둘러앉아 수많은 시사를 한다. 방송은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때의 '감'은 '대다수 사람이 즐거워하려면, 이유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나 생각'이 된다. 이래서 나오는 말들이 대략 다음과 같다.


이 장면 날려야 되지 않니?
이 장면들 순서를 바꿔야 하지 않니?
그 장면 괜찮았는데 살려야 되지 않을까?

'이유'는 대부분 이것이다.


그래야 재밌잖아. 자연스럽잖아. 집중되잖아.


적절한 '이유'가 없는 '감'은 의견이 아니라 그저 '말'인 것을. 간혹 누군가 나름의 이유를 설명해도, 각자의 '감'이 달라서 서로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경험상 자리가 깡패라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책임자-메인PD, 메인작가 그 위의 CP-의 의견대로 수정돼 방송된다. 그러면 직접 편집을 맡아 밤샌 선수들의 입에서는 이런 볼멘소리가 나온다.


완성본이 첫 번째 편집본보다 더 재미가 없어졌어.
프로그램의 색을 잃어버린 것 같아.
대다수 사람이 진짜 이걸 즐거워하는 건가?
아무래도 난 감이 없는 것 같아.
과연 이 길이 맞는 걸까?


'이유' 없는 '감'은 이토록 사람을 답답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심지어 나름의 '감'을 얻어서, 빠른 속도로 탁월한 편집을 하는 사람들도 이유를 몰라 제대로 설명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과 마찬가지다.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채 상관의 지시를 따르다 보면 그 끝은 퇴사니까. 그 과정에서 노하우를 쌓더라도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힘들다. 이해 못 하고 그냥 외워버린 수학 공식 같은 거니까. "이렇게 하면 되더라. 너도 해보면 알아."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영상은 결과가 수학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분야가 아닌, 사람의 주관적 해석이 주가 되는 분야라서 더 심하다. 그래서 이 바닥에 심각하고 웃기는 일이 발생한다. 이 '감'을 '편집 센스'라는 말로 포장하고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편집 센스'를 키우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가 왜 이 컷을 붙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험상 붙이고 있는 게 편집 센스라니... 그래서 혼란은 계속해서 돌고 돈다.


이 혼란을 멈추려면 '감'을 뒷받침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플랫폼에 따라 다르지만, 방송-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플랫폼-의 경우, 이때의 '이유'는 '대다수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으니까. 그럼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알고 싶어 진다.


다른 사람들은 뭘 보고 즐거워할까?
그걸 알면 그걸 중심으로 편집할 텐데.
즐거움이라는 개념은 뭐지?
영화, 드라마, 교양, 예능, 다큐 모두 다른 의미로 즐겁잖아.
어떻게 그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거지?
그걸 알면 그렇게 편집할 수 있을 텐데.
대다수 사람이 즐거움이나 불쾌함을 느끼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그걸 알면 모두 즐거워할 수 있게 편집할 수 있을 텐데.
공통분모들이 있다면, 인간의 어떤 공통된 성격이 있다는 걸까?
인간의 본성은 뭘까?


그저 편집을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는 인간의 본성까지 생각하게 된다. 결국 영상은 인간이 보는 거라 인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그 '감'의 '이유'를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모든 기준을 '시청자'에게 맞추려고 한다. 편집 시 발생하는 어떤 문제에서도 '시청자'를 기준으로 판단하려 한다. 이를 위해 편집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을 크게 해소해준 책이 있어 소개한다.



편집에 절망하는 친구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로버트 맥키 저|고영범·이승민 옮김|민음인

<시나리오 가이드> D.하워드·E.마블리 공저|심산 옮김|한겨레신문사

<스토리텔링의 비밀> 마이클 티어노 저|김윤철 옮김|아우라



이 책들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편집'의 관점에서 정리해보려 한다. 예능 연출을 주로 해서 '예능 편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연출에는 정답이 없고 아직도 연출의 답을 찾고 있는 사람의 글이라, 이 역시 하나의 답일 뿐이다. 그래도 영상이라는 길을 가는 친구들의 혼란은 너무 깊다. 미약하지만 이 글이 조금이라도 그 막막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도서 <직업으로서의 PD>

http://aladin.kr/p/mRs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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