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와 가이드를 믿으세요

예능 편집 기본기 STEP 1

by 정영택

일단 편집의 정의를 찾아보자.

'편집(editing)'이란 촬영된 영상을 영상문법과 기획의도에 따라 방송 시간에 맞게 줄이는 작업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뭔가 감이 잘 안 오는 단어가 '영상문법'과 '기획의도'다. 일단 '영상문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영상문법?


사람은 뭔가를 보고 감정을 느낀다. 강아지 사진을 보고 귀엽다고, 전쟁 사진을 보고 참혹하다고 느낀다. 그 감정은 잠깐의 '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책이나 영상을 보고 '정말 재밌었다'라고 느낀 때를 회상해보자. 그래야 그렇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그때 우리는 무엇을 했길래, 왜 재밌다고 생각했을까?


셜록 홈즈와 슬램덩크


셜록 홈즈

1) 책을 폈다. 사건이 일어난다.

2) "범인은 누구지?" "사건은 왜 일어난 거지?" "방해꾼들을 홈즈는 어떻게 극복할 거지?" "홈즈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3) 사건이 해결됐다.

4) “야! 재밌었다!”


슬램덩크

1) 책을 폈다. 강백호가 농구부에 들어간다.

2) "풋내기 강백호가 농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농구부 폭력사태로 농구부가 없어지진 않을까?" "강백호가 허리 부상을 당했는데 이겨낼 수 있을까?"

3) 최강 산왕공고를 이겼다.

4) "야! 재밌었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출처 MBC)


무한도전 '봅슬레이 편'

1) 멤버들이 봅슬레이에 도전한다.

2) "경험도 없는 멤버들이 탈 수는 있을까?" "에이스 전진과 정형돈이 부상을 입었네, 출전은 할 수 있을까?" "재석, 명수, 준하 최고령 멤버들이 출전하게 됐네, 순위에 들 수 있을까?"

3) 무사히 완주했다.

4) "야! 재밌었다!"


사람들이 '야! 재밌었다!'란 느낌을 얻기 위해 선행했던 공통적인 것을 보자. 바로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뭔가를 보는 과정 중 그 질문들이 해결되고, 또 다른 질문이 생기고 또 해결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계속 참여한다. 가장 큰 질문이 해결된 후, 본다는 행위가 끝난다. 그리고 느낀다. "야! 재밌었다!"


어떻게 편집하면 영상이 재밌어져요?


최소 필요조건. 영상을 보며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편집할 것. 그래서 영상이 전하는 이야기에 몰입시킬 것.


'영상문법'의 최종 목표는 '시청자의 몰입'이며 '시청자를 몰입시키기 위한 방법'이 곧 '영상문법'이다. 하지만 '영상문법'은 수학처럼 공식이나 철칙이 있는 게 아니다. "A를 했더니 시청자들이 몰입하더라고요. 옛날부터 많이 그랬어요."라는 걸 모아서 '영상문법'이라고 부를 뿐이다. '시청자의 몰입'을 위해서 '영상문법'은 자유롭게 변주하고 생성된다. 요즘 같은 유튜브 시대엔 더 그렇다. 그래서 편집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나.

딱 하나만 생각하자. "이 영상을 보면서 '시청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궁금하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편집할 수 있다면 당신은 '영상문법' 마스터다. 그렇다면 '기획의도'는 뭘까?




기획의도?


내가, 내 팀이, 내 클라이언트가 이 영상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게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이 될 수도 있다.

복면가왕(출처 MBC), 가짜사나이, 바이럴 광고


MBC '복면가왕' 기획의도
"노래 실력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어!"
유튜브 '가짜사나이' 기획의도
"일반 사람들도 할 수 있어!"
바이럴 광고 기획의도
"이거 좋으니까 한 번 사봐!"

영상은 재밌는 부분만 살려서 이어 붙인다고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다음 글을 보자.

내가 나무로 오두막을 짓는다고 하자. 오두막이라는 이미지는 나의 '목적' 곧 최종 결과물이며, 이 오두막을 짓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나무를 베고 자르면서 언제나 집이라는 최종 결과물을 생각한다. 나는 그 일을 할 때 집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일에 집중한다.
- 스토리텔링의 비밀|마이클 티어노 저


'복면가왕'에서 '노래 실력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메시지는 '목적', 최종 결과물이다(기획의도). 이를 위해 나무도 베고 자르는 것처럼, 가면도 씌우고 투표도 한다(수단). 그 일을 할 때 언제나 집이라는 최종 결과물을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편집하면서 언제나 '노래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라는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경연 중간 개인기 타임이 재밌어서 그걸 살리고 본 무대 시간을 줄이면 안 되는 것이다. 화장실 자재가 너무 좋다고, 화장실을 침실보다 크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기획의도를 살리는 영상문법


결론은 이렇게 편집하면 된다. 나는 이게 편집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시청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편집해서 기획의도를 전달한다.

말이 쉽네. 어떻게 그렇게 하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또 이렇게 보면 알 것 같다.


"이번 주 가왕은 누가 될까? 저 사람은 누굴까? 가수일까? 배우일까? 지난주 가왕은 타이틀을 지킬 수 있을까? 아! 저 사람이었구나! 가수도 아닌데 노래 잘하네!"

"UDT 훈련 어마어마하구나! 이 사람들 견뎌낼 수 있을까? 이번엔 누가 퇴교할까? 누가 끝까지 훈련을 마칠까? 아! 마쳤네! 일반 사람들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구나!"


'시청자'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복면이란 장치를 넣는다. 보스를 잡는 스테이지 구성을 넣는다. 궁금증을 키워주기 위해 연예인 판정단을 넣는다. UDT 훈련 체험을 넣는다. 퇴소라는 장치를 넣는다. 그렇게 포맷을 잡는다. 이게 예능 연출이다. 이제 우리 앞으로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보자. '그렇게 해야 재미있잖아.'가 아닌 '그렇게 해야 시청자가 궁금해하잖아.' 시청자가 궁금해하면 재미는 따라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편집 전 막연한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는 다음 두 가지.


'기획의도'는 목적지며 나침반이고 등대다. 내가 지금 편집하는 장면이 '기획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장면인지 생각해보자. 아니라면 미련을 버리는 게 낫다. 사족이다. 밤새 편집하는 내 몸을 위해 기꺼이 버리자.

'영상문법'은 가이드다. 목적지까지 가는데 가이드 역할에 따라, 같은 시간이라도 재밌게 혹은 지루하게 갈 수 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보려면, '난 이 영상을 처음 본 시청자야.'라는 최면을 걸고 편집한 영상을 플레이해보자. 몰입이 안 돼서 뒷 장면들이 궁금하지 않으면, 애석하지만 좋은 편집 흐름이 아니다.

다음 편부터는 한 편의 영상을 완성하는 순서를 따라서, 기획의도를 살리는 편집 연출에 대해 정리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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