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스티븐 달드리, 2002)를 봤다. 보면서 내내 영화 <토니 타키타니>(이치카와 준, 2004)가 떠올랐는데, 그건 영화에 배어있는 정서 때문이었다. 허망함, 삶의 무의미라는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고서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디거나 그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같은 것을 과감히 내리는 사람들. 그들을 보는데 그저 아득하다, 라는 느낌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이 아득함은 너무 깊거나 너무 멀어서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감정과 가깝다.
영화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해볼까.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는 자기 삶의 진실을 힐끔 본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은 차마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진 못하지만 결국 자신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며, 클로리사(메릴 스트립)는 자기 존재조건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서 함께 살고 있던 샐리와 마음을 나눈다. 저마다 삶의 허망함을 견디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내린 것이 숭고해보이는 것은 같다. 정직한 것이다. 어떤 겉치레나 두터운 화장으로 자기 존재를 단장(가장)해도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내부에서 시작된 어떤 희미한 균열의 틈으로 삐져나오는 허망함을 차라리 정직하게 마주보는 것. 그러고나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것.
그런데 삶을 정직하게 마주대하는 자세로 이들의 선택 외에 다른 건 없을까. 한강 소설의 인물은 이들과 비슷한 정서를 감각하지만 선택의 결은 조금 다르다.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에 수록된 "회복하는 인간"이라는 단편에서 화자인 당신은 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잘 모르겠어. 사람들이 어떻게 통념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그런 화자의 말에 언니의 얼굴이 설핏 어두워졌다가 거울을 통해 그녀의 얼굴을 건너다보면서 이렇게 대꾸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지만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통념 뒤에 숨을 수 있어서."
삶의 진실을 정직하게 대하는 태도로 쉽게 영화 <디 아워스>의 세 여인들이 내린 선택을 떠올리기 쉽지만, 한강은 또다른 선택도 가능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 같다. 통념 뒤로 숨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향해 가볍다고, 당신의 삶은 허울 뿐이라고, 비겁하게 자신을 외면하지 말고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마주보라는 식의 말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이렇게나 겨우 이해하며 살아가는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