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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7. 2019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PR

살다 보면 뭐하나 해보기도 전에 망설일 때가 많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 보면 결국 해내는 경우보다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을 할 때 아이디어 내 봤자 또 예산 없다 그러겠지 체념하고서 주어진 업무만 기한에 맞춰 해내는 사람이 돼버리기도 했고,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이 사람이 싫어하지 않을까?고민하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 채 관계를 끝맺어야 하기도 했다.

이 일 할까 말까, 이렇게 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사실 살면서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은 정말 많다. 망설이다 보면 끝내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늘 시작이 어렵고 그만큼 가치 있었다. 언젠가 크로스핏 헤드 코치님 또한 시작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잘하는 사람은 그냥 되는 게 아니야. 남아서 맨날 못하는 거 시도하잖아. 그래야 느는 거야."


말인즉슨,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거였다. 그때 난 매일매일 크로스핏 박스에 왔지만 오로지 WOD(Workout Of the Day; 오늘의 운동)로만 운동했고 연습량이 부족해서 버거운 동작이 많았다. 스내치(Snatch)라는 역도 자세가 특히 그러했는데, 잘하고 싶긴 하지만 남아서 맨날 시도하라는 말을 행하긴 어려웠다. 주로 점심시간에 운동하러 오는데 회사에 복귀하느라 나머지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풀 죽은 얼굴로 핑계를 대는 내 앞에서 코치님은 전투적으로 말을 이었다.


"형한테 물어보는 사람들은 진짜 많아. 뭐뭐뭐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근데 정작 하진 않아. 내일 할게요. 다음 주에 할게요. 망설이다가 그 종목이 다음에 와드로 나와버리는 거야. 물어봤으니깐 잘할 줄 안다? 아니. 못해."


단호했다.  날 하필 와드로 나와버린 스내치(Snatch) 동작을 미적지근하게 해서인지, 저녁 10시까지 남아서 운동을 했다. 코치님 조언이 민들레 홀씨처럼 마음에 닿아 어떻게 서든 이 동작을 해내고 싶었다. 물론 평소보다  무리해서 운동하고 나니 다음날 아침, 어깨며 종아리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두 다리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어있었고 양 손바닥은 까져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점심, 저녁, 하루에 두 타임씩 운동을 나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처음 마음먹기가 어렵지 번째부터는 이전보다 더 쉬웠다. 65lb를 넘어 70lb의 스내치를 가까스로 들게 됐을 때 나는 다시 원래의 루틴대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점심시간에만 운동을 나가는 날이 반복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전보다 운동 능력이 향상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뮤지션 중에 마이크 포즈너(Mike posner)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움직임을 장려하는 좋은 구호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Move on! Keep going! (나아가! 계속해!)


마이크 포즈너는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시고, 연애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친구였던 아비치(Avicii)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마이크 포즈너의 삶은 현저히 달라졌는데, 자기답게 살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하는  삶을 살게 됐다 해야 할까.


성공한 뮤지션, 말끔한 외모, 세상이 그를 향해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다 버린 채 더 이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지 않겠다 선언하며 미대륙을 걸어서 횡단하기 시작했다. 자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무려 187일 동안 대서양부터 태평양까지 4,588km의 거리를 오롯이 걸어냈다.(*우리나라 외곽을 한바퀴 쭉 도는 둘레길이 4,500km다)


미대륙 횡단을 끝낸 지금에 와서 그는 소셜을 통해 스스로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요가를 한 후 글을 쓴다고. 덕분에 삶이 좀 더 풍요로워졌다고. 한창 무대에서 살인적인 공연 스케줄을 감당하던 때 그는 우울증을 앓았었다. 팬으로서 마이크 포즈너가 심신의 안정을 찾아간다는데 기뻤지만 4시라는 숫자와 글을 쓴다는 것에 유독 주목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내가 하는 많은 도전 중에 글을 쓰는 일이 가장 비효율적인 일에 속했다. 매일 크로스핏 운동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그림도 그리지만 시간 대비 가장 능률이 떨어지는 게 글쓰기였다. 새벽 3시까지 붙잡고 있어도 한 문장도 못 쓸 때가 많았 꾸역꾸역 써도 발행되지 못할 내용이란 생각에 서랍 속에 꽁꽁 묶어두기 마련이었다.

늘 생각처럼 안 되는 글쓰기를 보면서 나는 정말 매시간, 매분, 매초 좌절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좌절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무언가를, 그러니까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장에 꾸준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순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였다. 이렇게 모인 짤막한 메모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붙여 놓은 후 장독 보관하듯 작가의 서랍 속에 오래도 묵혀두었다 이렇게 꺼내놓았다.


자기 글을 보여주는데 꽤 소심한 나와는 달리 마이크 포즈너 횡단하는 내내 기 일과를 가감 없이 소셜에 보고 했다. 대장정의 첫 시작부터 중간에 다쳐서 잠정적 중단을 말해야했을 때도, 대망의 마지막 날까지도 무려 늘 공개된 공간에 자기 이야기를 표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 스스로도 변화했겠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어떤 이는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는데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게 됐다했고, 또 다른 이는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타인의 시선에 나 자신을 규정짓지 않고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가는 도전 정신, 그렇게 그는 자신의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마이크 포즈너가 자기표현 도구로 걷기를 택했을 때 그냥 하던 음악이나 하라며 질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난하는 사람들에 굴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공개된 곳에 말한다는 것, 글이나 노래, 이미지나 영상 같은 창작물을 계속 내놓는다는 것은 대담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가 미대륙 횡단을 끝낸 지금에 와서는 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시도에 대해 존중하고 신뢰해주었. 이제는 단지 음악 잘하는 뮤지션이 아니라 마이크 포즈너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져 버렸기 때문이었을 . 궁극적으로 운동을 통해 말하고 있지만 내가 쓰는 , 내가 그리는 그림 또한 이런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한 것일 테다.




크로스핏 용어 중에서 시작 또는 계속해서 나아감을 뜻하는 PR(Personal Record)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본인이 지금까지 행한 최고 기록을 뜻하는 말이다.


나 데드리프트 205lb PR 했어!


라고 하면 지금까지 들었던 데드리프트 무게 중 가장 무거운 무게가 205lb(93kg)라는 걸 뜻했다. 마찬가지로


나 풀업 1분에 50개 했어!


라고 말하면 그전까지는 분 당 50개까지 풀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고로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도했을때, 노력이 응당 빛을 발해 전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을때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PR이다.


얼마 전 있었던 크로스핏 오픈 대회에서 나도 PR을 했다. 115lb 클린 앤 저크(51kg의 바벨을 바닥에서부터 풀로 당겨 들어 올려 스쿼트 상태로 앉았다 일어나는 것, 그 후에는 하늘로 바벨을 높이 들어올리는 동작)였는데 그 당시에는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혹시 들다가 다치면 어떡하지.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는데 괜히 못하는 거 들다가 머리 다치는 거 아니야? 다치면 앞으로 좋아하는 운동 못할 텐데 어쩌지? 동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끝없이  좋은 생각들을 가 지치기 해 나아갔다.


경기 제한시간 15분이 남아있는 상황, 떨리는 마음으로 바벨을 잡았다. 정확히  시도만에 한 번을 들 수 있었다. 8분 만이었다. 헤드 코치님이 응원석에서 뛰어나오며 환호했다. 나도 방방 뛰며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중에 이때 찍힌 영상을 보고 나니 다소 쑥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PR을 하고 나서도 경기 시간이 7분이나 남았으며 그 후로는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반복해서 다시 시도했다. 그러자 기적처럼  들 수 있었다. 재시도 다섯 번 만에 꼬박 두 번을 더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자신감이 붙어서 이전보다 쉬웠다. PR 이후로 나는 사람들에게 115 맨이라 불리게 됐다. 이 말인즉슨 이제 또 다른  PR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삶에 있어서 PR의 순간은 참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PR은 갱신되라고 있는 것이다. 계속 나아가다보면 PR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그러니 나는 할까 말까 망설일 땐 그냥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게 있을 땐 못 먹어도 고. 고민하기 전에 고. 그러다 보면 물론 실패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눈부신 PR의 순간을 덜컥 경험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실패의 순간조차 그 나름대로 PR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마이크 포즈너가 그랬듯 내가 그랬듯 못 할 것 같던 것도 계속하다 보면 PR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PR의 경험을 여러 번 쌓아 가다 보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왜 생각만 하고 있는가. 그러니 마이크 포즈너도 그렇게 열심히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Move on! Keep going!(이겨내! 계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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