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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pr 03. 2018

요즘도 별 일있게 살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별일 없어?"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별일 있지.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 




 조금 특별한 선택을 했던 호주의 기억 이후로 나는 나름 평범한 삶을 지향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평범해질 수 없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떻게 선택하는 것마다 꽝을 고르게 되는지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좌절을 선택하는 방법'을 강연대에 서서 소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어쩌면 심심하게 사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성격이 자꾸만 나에게 선택지에서 벗어난 답을 찍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호주 대륙을 3개월동안 자전거로 횡단하던 친구들을 도운 일이 있었다. 분명 좋은 취지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사막 한 가운데서 자전거 사고를 당해 반삭을 하고 11바늘을 꿰맨 일이라거나, 보이스 피싱을 당해 부모님이 어렵게 모아두신 돈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 일이 그런 부류의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또 한국에 돌아와서는 월급을 주지 않는 회사에 들어가거나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던 일들이 또다른 적절한 예라고 할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만큼이나 나에게는 좋은 마음과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다양한 직업 선택의 기회가 찾아왔고, 정식적인 체계로 일을 진행하지 않는 회사와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 지를 깨달았으며 내가 서있는 곳을 감히 '바닥'이라 부르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기도 했다.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공감해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인생의 선배로서의 역할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니 언젠가 이 모든 사연들을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즈음에는 멘토로서 작은 강연을 꾸려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곤 했다. 그 확신은 지금의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어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해나가는 것이 절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것을, 지금도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2년 전 생일 날, 보이스피싱을 당하고서야 나는 뉴스로 만나는 그 많은 사건 사고들이 언제 어떻게 생길 지 모른다는 경각심과 함께 삶에 집착이 생겼다. 해외에서 지냈다는 이유로 세상 돌아가는 흐름조차 모르고 살던 나의 지난 시간들을 반성했다. 부모님께 상처를 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혼자서 감당하게 된 커다란 마음의 짐과 어떻게서든 살아내야 한다는 삶에 대한 집착은 내가 쓰는 글들에 절실함을 불어 넣어 주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삶의 공식이 생겼다. 딱 죽지 않을만큼의 지푸라기가 언제나 눈 앞에 나타났다.



 적어도 우리는 되돌릴 수 있는 것들을 잠시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뿐 인생의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었다. 삶을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것은 나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지 않는 회사와는 어렵지 않게 안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내 성장통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마음을 더 깊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언젠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마무시한 일을 겪은 서른이 되고 내게 가장 크게 와닿은 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별일있게 사는 내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여전히 철들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삶을 들여다보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서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문득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이 행복한 삶이라고 우리는 결코 말할 수는 없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언젠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온전히 채워넣는 날, 나는 삶에 대한 애착을 'Even though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자로 손목 한켠에 새겨 넣기로 했다. 그것은 나에게 찾아온 절망이 결코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다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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