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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26. 2018

아빠, 서울은 어때?

당신은 항상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아빠에게 서울이라는 곳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조금은 낯선 도시의 이름이었다. 2년 전 딸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년 퇴직을 아직은 조금 더 앞두고 있는 아빠의 시간은 회사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회사 운영이 갑작스럽게 중지된 이유 때문이었다. 시골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수많은 아버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서울에 자리하고 있는 본사 앞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얻으며 맞서 싸우는 일뿐이었다. 베트남과 다른 도시로의 준비를 살금살금 마친 사장은 시골 회사의 경영에 관심을 끊기 시작했고 아버지들은 평생을 몸 담아 오던 회사의 갑작스러운 배신에 목이 메이셨을 것이다. 처음엔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는 차량을 수배했을 것이고 그 차량이 아버지들의 하루가 끝날 때까지 머물 주차 공간을 알아봤을 것이며, 말도 안되는 주차비에 놀라기도 하셨을 것이고, 배고픔을 채우는 용도만으로 세워져있는 식당에 앉아 넉넉하지 않은 밑반찬의 양에 야박하다고도 느끼셨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아버지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매일 같이 길거리 농성을 하는 중이셨다. 그 사이에는 잠시라도 딸의 얼굴을 보고 싶지만 바쁘면 안와도 돼 라는 말로 애써 그리움을 포장하던 아빠가 있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대행사 일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찜통같은 더위에 잔뜩 절어버린 아버지들에게 차가운 음료 한잔을 대접하는 일 뿐이었다. 멀리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아빠를 바라본다. 딸의 지갑이 홀쭉해질까봐 애써 손사레를 치는 아빠에게 잠시라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게 해드리는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였다. 음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다면 더디게, 빠르다면 빠르게 흘렀다. 아빠는 멀리까지 걸음을 해준 내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채 만나지 못하는 동안 아빠의 수염이 하얗게 새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리곤 시간이 이내 야속해져버렸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서울로 올라와 본사 앞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라던 아빠의 얼굴에는 아직은 지칠 수 없다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밖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들에게 음료를 건내드리고 아빠와 잠시 무리에서 빠져나와 맥주 한잔을 나누기로 했다. 퇴근 후 바로 달려왔다는 사실을 아는 아빠는 자꾸만 메뉴판을 나에게 펼쳐보였다. 가슴까지 차오른 어떤 감정이 배고픔을 대신했지만 아빠의 고집 끝에 골뱅이가 올라가있는 비빔면 하나와 맥주 두 잔이 우리의 사이에 놓였다. 



"사람 참 많지 아빠?" 라고 내가 물었고,

"그동안 아빠 원망 많이 했지?"라고 아빠가 대답 대신 내게 되물었다. 



하고 싶은 일들 못하게 해서, 더 이상 성장시켜줄 용기가 없어서 나를 그만두게 했다는 생각이 아빠의 마음 한켠에서 오래 짐이 된 모양이다. 목 울대까지 차오른 감정들을 맥주 잔 가득 찰랑이는 맥주와 함께 삼켰다. 무리에서 오래 빠져나와 있을 수 없다며 동료들에게로 돌아가는 아빠의 어깨를 두드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서울의 한 복판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두 눈으로 쫓다가 이내 발 끝을 바라 보았고 다시 고개를 든 순간 하얗게 웃고 있는 아빠가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당신은 괜찮다며 어서 집으로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밤새 길 위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낼 아빠를 생각한다. 서른이 넘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느린 버스를 타고 오랫동안 창 밖을 보며 하염없이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를 닦았다. 아빠는 본인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을 위해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노라고 말했다. 본인들의 희생으로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알지도 못하는 서울 한 복판에서 뜨거운 기운을 참아내며 투쟁을 하는 중이었다. 행인들은 그런 삶을 쇼윈도의 물건처럼 바라보며 지났지만 나 역시도 언젠가 그런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괜히 손톱을 만지작 거렸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빠에게 서울은 조금은 차갑지 않은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로 향하는 아빠의 마음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참 다행이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일은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땀에 잔뜩 지쳐버린 누군가의 어깨를 보며 우리 아빠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나로 인해 아빠의 서울이 그리고 또 다른 아버지들의 서울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만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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