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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27. 2019

아빠의 파업이 끝나길 바랍니다.

길 위에서 밤을 보내는 아빠를 위로하며




아빠가 길 위에 서기 시작한 후 뺨 위로 닿는 온도에 나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작은 부탁을 위해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아빠가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수화기 너머로 아빠가 나와 같은 서울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다. 내 목소리를 들으면 약해질까봐 아빠는 애써 스스로를 닫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밥을 먹으러 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도 추위를 가려 보려 애써 옷깃을 여미는 내 모습 위로 하루종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을 아빠가 잠시 머물다 떠났다. 월화수목 짧지 않은 시간을 허망한 상상과 차가운 도시에 대한 헛헛함으로 보내며 아빠는 서울 어딘가에 있을 나를 몇 번이고 떠올리다 겨우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아빠는 몇 번이나 아빠가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경상도 특유의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에는 보고싶다는 말이 묻어났다. 아마 아빠는 그 외로운 싸움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35년간 몸담아 왔던 회사에서 잔뜩 구겨진 마음 하나 둘 곳이 없어서 나를 자꾸만 찾고 싶었을 것이다. 주말이 되어 겨우 시간이 났던 아빠는 나에게 오고싶다는 속내를 내비췄다.






홍대에서 약속을 끝내고 광화문 어딘가에 있는 아빠를 향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언제쯤 도착하냐는 아빠의 전화에 20분 즈음 걸릴테니 전화하면 나오라고 말했지만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모습은 차가운 바람에 잔뜩 일그러진 몸집을 한 채 였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마 1분이 10분 같았을 것이고, 다시 그 10분이 100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었다. 아빠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왜 밖에 나와있냐고 물으니 함께 파업을 하는 아저씨들은 6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해 쓸 돈이 없어 나오지도 못하는데 당신은 나를 만나러 나온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어 조금 일찍 나섰다고 대답했다. 한 평생 몸 담아 온 회사의 일방적이고도 갑작스러운 통보가 100명이 넘는 아빠들을 모두 길 위에 내몬 것이다. 일을 하다가도 찬 바람을 맞으며 고생하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면 서초구에 위치한 본사에 찾아가 마음에 켜켜이 쌓아둔 노란 욕설을 가래침과 함께 뱉고 싶다는 생각이 턱 끝까지 치솟았다가 가라앉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당신의 아들보다도 어린 무장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자신들을 막아 세울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경찰이 몇 번이고 당신들을 막아 세우다 넘어지면 그들이 혼나지 않도록 몰래 뒤돌아 보내주는 일을 일주일동안 하는 중이라고 대답하는 아빠는 많이 지쳐보였다. 찬 바람에 하얗게 터진 손 등 위로 깊은 생채기가 이미 추위에 질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울지 않으려고 당신의 팔짱을 끼고 광화문까지 걸음을 옮겼다.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적어도 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찬 바람을 맞고 있지는 않지 않냐고 누구인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화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은 태어나서 처음 온 서울이 무척이나 춥다고 했다. 딸의 신혼집이 있는 곳까지 한 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지만 나를 만난 후 아빠는 조금 기쁜 기색이었다. 5호선을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나란히 자리가 생겼고 나는 당신과 함께 앉아 체온을 보탰다. 어설픈 치약 냄새가 당신이 나를 만나러 오기 전 잠시 거울을 봤을 것이고 빗질을 했을 것이고 또 양치질을 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민트냄새조차도 어쩔 수 없는 것은 낡아버린 패딩점퍼였고 또 보풀이 군데군데 생겨난 바지가 그려내는 추위의 흔적이었다.









"딸랑구, 아빠는 서울 같은데는 못살겠다"


 아빠가 꺼낸 진심어린 한 마디가 곧 내가 꺼낸 말이 되어 나를 바라보는 동안 몇 번이고 터져나오려는 감정을 참기 위해 나는 애꿎은 지하철 노선도를 읊으며 "네 정거장", "세 정거장", "다음 군자에서 내려 환승하면 돼"라는 말로 울음을 덮었다. 작디 작은 샤워실에서 100명이나 되는 아버지들이 차례를 기다리는동안 채 씻지 못한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아빠가 어설프게 벗어놓은 추위에 쪄든 옷들을 세탁기에 밀어넣으며 나는 울고 싶은 마음도 함께 세탁기에 우겨 넣었다. 10평 남짓의 딸네 집에서 비로소 얼었던 마음을 내려놓는 아빠를 보며 이미 베트남으로 도망가버린 회사의 대표를 떠올렸고 그가 남겨두고 간 아빠들의 현재를 생각했으며 죄도 없이 회사를 막아서고 있는 어린 경찰들의 임무를 생각했다. 서초의 차가운 인도 위에서 200일이 넘는 시간동안 결코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향해, 힘없는 국회의원을 향해 소리를 내고 있는 아빠의 파업을 그리고 그 고단한 시간이 아빠의 이마 한 켠에 새겨놓은 삶의 아픔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소주 한잔이 마시고 싶다는 아빠에게 어설픈 고추장 찌개를 내려놓으며 산다는 게 참 쉽지 않은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홀로 외로울 아빠 곁에서 밤을 보내고 눈을 떴을 때 아빠는 나에게 등을 보인채 잠들어 있었다. 한 달 후면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과 결코 끝나지 않는 파업을 마주하고 있는 아빠 사이에서 괴로움이 일렁거렸다. 조금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을 건내는 아빠의 낡은 와이셔츠 끝자락을 바라보며 결코 내가 당신의 눈을 바라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자꾸만 커가는 나를 담아줄 수 없을까봐 서울로, 해외로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던 당신의 지난 날,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당신 앞에서 울던 나를 깊숙한 기억 속에서 끄집어 냈을 때 나는 당신보다 더 빨리 그 사실을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광화문에 당신을 데려다주고 무거운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국에 돌아와 내가 당신을 보듬어 줄 수 있어서, 추운 도시 어딘가에 당신의 갈 곳을 꾸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내일부터 다시 길 위에 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출근길에 다시 당신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빠는 끝이 나지 않는 갈등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서야 400km나 떨어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빠를 내려주고 돌아오면서 아빠가 양말을 사러 가야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얗게 터진 손등에 바를 핸드크림 하나 쥐어주고 오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휴지로 코를 닦다가 괜스레 '감기가 심해질 것 같네'라는 말로 애써 눈물을 삼키며 하루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일기장 위에 조심스레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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