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예전엔 나와 닮은 취미, 닮은 패턴, 비슷한 삶의 취향이 사랑을 돈독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면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서로 다르기 때문에 퍼즐이 맞춰져 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자주 가던 편의점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또 엄마 아빠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은연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에 끊이지 않는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저의 다이내믹한 삶의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아침잠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러했는데 새벽이면 봇짐을 이고 지고 오일장에 나서시는 할머니를 도와 하얀 입김이 나는 시장 좌판에서 시간을 보낸 기억이라던지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출근을 하던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던 일은 어쩌면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는 주말에도 낮잠을 자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이다. 내가 가진 욕구들을 가만히 나열해보면 수면욕은 아마 하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만큼 말이다.
주말도 역시 눈을 뜨자마자 주중에 미뤄두었던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인다. 흰 빨래와 색이 있는 빨래를 나누어 세탁기에 차례대로 집어넣고, 빨래 건조대 위에 몇 일째 개어주길 기다리는 빨래들을 정리하고,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창틀과 바닥을 차례대로 닦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면 어느새 해가 머리 위에 걸려 있을 때가 많았다.
나와 전혀 다른 패턴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철저한 야행성이다. 그는 내가 모든 일들을 얼추 끝냈을 때야 비척거리며 일어나 한참을 뭉그적 거리고 마침내 몇 달간 철저한 입맛 인증으로 선택한 중국집에 전화를 건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운 짜장과 짬뽕 국물 서비스'를 주문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주중에 채 못 잔 잠을 주말에 몰아서 자는 그는 잠을 잘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눈 밑이 퀭해진 채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점심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눕는 그를 처량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이태원이든, 연남동이든 혹은 드라이브라도 다녀오는 주위 친구들이 부럽기 그지없지만 무척이나 수척해진 얼굴로 누워있는 그를 보면 내 욕망을 조금 잠재우게 된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새로 이사 온 동네의 아기자기한 카페를 다녀오는 동안 그는 미뤄두었던 잠을 자고 오후 3-4시 즈음 내가 집으로 돌아오고서야 그는 마침내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으로 회사의 일을 살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무한도전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거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일이다.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에 피곤과 권태를 잘 느끼는 나와는 달리 그는 몇 번이나 봐서 대화까지 외우는 무한도전 보는 일에 실증을 느끼지 않는 것만 같다.
그가 TV에 빠져있을 때 넌지시 나는 하루의 마무리는 산책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대체적으로 그는 썩 내키지 않는 듯 하지만 내 눈치를 보며 억지로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곤 한다. 그래도 집 밖으로 나가면 그는 언제나
"그래도 이렇게 나오니까 좋다"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자주 나오자"라는 말도 덧붙이지만 사실 그 말이 현실이 된 경우는 없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맥주를 마시며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자고 하지만 그 언저리에는 아침부터 모든 체력을 탈탈 털어낸 나의 번아웃 시간이 돌아온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신혼 4개월 차의 일상은 이렇듯 소소할 뿐이다.
그는 내 평균 이상의 체력에 언제나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둥글고 폭신하다.
주말이면 언제나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하고 온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그가, 그리고 또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그가 대단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