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교과서 앞 단에서 '인간의 기본 욕구 피라미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애를 하며 지켜봐 온 그는 다른 누구보다 수면욕이 강한 사람이었고 다음은 식욕 그리고 아주 마지막 단 정도에 성욕이 자리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신혼인 나를 매우 섭섭하게 만들었는데 사실 이 욕구라는 것은 싸우거나 섭섭해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본인의 피라미드 형태를 뒤집어엎어야지만 조금이나마 파국으로 치닿는 것을 막게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결혼 전에 알았으면 결혼을 보류했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지만 결혼 전에도 그가 이 정도 수준인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는 연애할 때 세상 뜨거운 남자였던 것이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시작되던 가을 언저리, 헤어지기 위한 인사도 언제나 몇 번씩이나 반복해야 우리는 마침내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매일 새벽 5시, 카페로의 출근을 위해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했던 그는 시간에 유독 예민했지만 밤 열 두시까지 나와 함께 있는 일에는 관대했다.
호주에서의 연애는 한국에서의 연애와는 조금 달랐다.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는 패턴의 한국에서 해왔던 연애와는 달리 호주의 연애는 꽤나 원시적(?)이고 자연 친화적이었으며 또 순수(...?)했다. 만 원짜리 캠핑 의자를 펴고 밤바다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거나 이따금 주위를 뛰어다니는 캥거루만 있는 국립공원에 담요를 펴고 누워 은하수를 보는 일이 그런 것들이었다. 그 원시적인 연애는 하루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 가진 것 없이 용감하게 결혼을 했다. 어쩌면 현실적이지 않았고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에 앞서 '그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였다. 많은 굴곡을 함께 겪은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의리가 사랑을 더 두텁게 만들어주는데 우리가 어쩌면 그러했다.
결혼을 하고 책임감과 일에 대한 중압감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던 그는 신혼여행에서도 내내 잠을 잤고 결혼을 한 후에도 자주 피곤해하며 본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원했다. 연애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의 모습에 결혼하기 전부터 자주 싸우고 토라지곤 했지만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그의 체력은 언제나 바닥 언저리에서 빨간불을 깜빡거리곤 했다.
가끔 부부 동반 모임을 가면 결혼 선배들이 던지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은 지나치게 빨리 배워와 가끔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나에게 던지곤 했다. 신혼 4개월 차에 벌써부터 섭섭한 삶은 나를 딜레마에 빠져들게 하지만 터놓을 때 없는 서러움을 듣고 엄마는 '젊은 사람이 벌써 그럴 수가 있니'라며 그의 바닥난 체력을 위해 녹용을 보내왔다.
'신혼'이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다. 적당한 타협을 위해 운동을 쉬지 않고 하는 중이다. 기다려달라는 그의 다짐을 믿고 지치지 않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방법인 '운동'을 선택했다. 이따금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혹은 원데이 클래스 복싱을 듣기도 한다. '여자가 먼저?'라는 편견이나 '남자가 혹시..'라는 오해보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부가 있구나,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손을 잡고 걷기 위해선 발의 보폭과 체력을 맞추고 끝없이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이 필요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