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각자 저마다의 학창 시절을 보내며 마음에 새긴 단어들이 있겠지만 제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학창 시절의 단어 중 하나는 바로 '군중 속의 외로움'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인데 왜 외로운 거지?'라는 의문은 당장의 시험으로 인해 잊혀졌지만 잊고 있던 그 단어를 피부로 느낀 것은 10년 전, 처음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할 때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무리의 존재지만 그 속에서도 문득 그리고 또 자주 외로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조금씩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결혼을 해도 외로움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에게 더 많이 의지할수록 짙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성향의 답장을 하는 패턴을'소극적 공격성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얼마 전 우연히 뉴스 기사에서 접했다. 삐딱하게 흘러나오는 감정은 마치 뚜껑이 사라져버린 화장품의 일부처럼 감정을 담고 있는 나라는 공간을 잔뜩 어지럽히곤 했다. ‘참아야지’라는 생각이 쌓이고 쌓여 결국 어딘가를 비집고 나와 버리면 나는 몇 번을 말해도 고쳐지지 않은 감정이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는 걸 알면서도 결국 삐딱하게 응대를 하고 말았다.
이 감정은 오래전, 한국살이를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에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밥을 먹는 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않는 일이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탁에서 밥을 먹던 우리 집의 문화와는 달리 그와 가정을 이루고 나는 '식구'라는 개념이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끊겨버린 것이라고 짐작해야 했다. 지금의 우리를 빗대어 돌아보면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눈 보이지 않는 마음 덕분이었을 거라고 지금의 우리를 보며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그의 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잠이 드는 순간까지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함께 있는 시간에도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는, 역시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서도 누적된 피로를 잠으로 풀었다. 새벽 3시까지 일을 하고 들어와 결혼 준비를 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반면, 평생 한번뿐인 시간일 텐데 잠을 자고 있는 그가 야속해 나는 바에서 샴페인 한 병을 통 크게 주문했다
결혼을 하면 달라질 거라던 그의 다짐과는 달리 그는 결혼 후 더 많은 임무와 역할을 맡았다. 주말이면 핫 플레이스에 나가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를 보면 그런 말들이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요즘 친구들은 안 만나?”라는 그의 물음은 왠지 나를 더 안쓰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그와 함께 나가고 싶은 건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제일 재미있는 친구이자, 배울 점이 많은 친구 그리고 더 나아가 닮아가고 싶은 친구이기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이따금 섭섭함을 토로할 때면 그의 주변 사람들은 (심지어 나의 절친들도) 나에게 모두 이해를 바랐다. '한국에선 성공을 하기 위해 가족들과 멀어져야 하는 것일까?', ‘다들 그렇게 살아’ 라는 말들에 자꾸만 반기를 들 수 밖에 없었던 건 ‘다들 그래’ 혹은 ‘원래 그런거야’라는 틀을 여전히 부숴내기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 빠르게 변해왔기 때문이었다. 삶의 속도와 마음의 여유 사이에는 자주 비행운이 만
들어졌다.
결국, 결론은 언제나 내가 이해해야 돼.라는 것이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래도 그를 응원해주기로 마음 먹었으니 나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자주 많은 것들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다.
매일 놀자고 할 때마다 피곤한 얼굴로 일어나는 그를 위해(?) 나는 먼 나라로 간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던 그의 소원을 풀어줄 기회가 된 것이다. 출장을 핑계로 한 소심한 복수라는 것을 모르는 그는 내 짐을 챙겨주며 "출장 가는 리부니 짐도 챙겨주는데 좋은 이야기 좀 해줘"라고 말했다. (미안한데 이번 콘셉트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 오빠가 순댓국 집에서 핸드폰 볼 때부터 -_-)
# Jessie
88년 천칭자리 / 서호주 사막 여행자로 살던 중 우연히 만난 남자와 지구별, 서울시에서 사는 중 / 회사와 맞지도 않으면서 회사원 코스프레하며 사는 중 / 외롭고 힘들 때 요가, 달리기, 글쓰기, 와인 마시기를 함
Instagram @jessie_even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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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86년 전갈자리 / 바리스타 8년의 경력을 살려 호주 카페에서 영어 한 문장 구사만으로 취업 / 어디서든 살아남을 자세가 되어있음 / 사회운동가이자 한때 가수 지망생(t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