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멀리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관계라는 것도 그 범주에 포함되는 것임을 뒤늦게 경험을 통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떠나는 역할은 제가 맡아 왔기에 그는 매번 조용해진 집을 지키는 것이 일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따금은 바닥이나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버린 그를 보면서 저는 언제나 떠나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때론 물리적인 거리가 둘 사이의 감정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여권을 다시 챙겨 들고 호주로 떠날 예정인데 말이죠. 그가 더 저를 그리워하길 바라며 다시 일주일 후의 여정을 계획하는 중입니다.
“공항에 데려다줄까?”라는 질문에 “괜찮다”라고 했지만 그가 괜찮다는 내 대답에 바로 일을 하러 갈 줄은 몰랐다. 게다가 배웅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언제나 ‘일 때문에’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핑계가 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이해해야만 하는 범주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출근해버린 그가 떠난 집에서 홀로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집을 비운 동안 신경 쓰일 만한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청소를 하고 올리브나무와 새로 싹이 튼 바질에 물을 주고 나면 얼추 떠날 준비가 끝난다. 아직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있지 않기에 떠나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 언젠가 더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시기가 올 때면 얼마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게 될지를 이따금 생각하게 된다.
내 역할은 사람들을 인솔해서 안전하게 미국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역할은 진땀을 빼게 만들었다. 그래도 함께 동행해주시는 분들이 되려 해외여행이 처음이시거나 누군가의 인솔로 여행을 하시는 것이 처음인 분들이 많아서 내 말에 매사 귀 기울여 주셔서 어렵지 않게 첫 인솔을 잘 끝냈다. 비로소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되어서야 태어나서 처음,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던 촌스럽지만 작고 설렘 가득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미국 디즈니 월드로 향하던 내 모습이 어느새 9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비행기를 타고 설레어하던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낯설지가 않았다.
네슈빌에서의 하루하루가 아쉬워 나는 매일 아침 호텔 인근의 도심을 걸었다. 짧은 여정 속에서도 해외에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풍경 하나를 발견하고 돌아오는 것이 나의 작은 습관이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매일 네슈빌 중심을 끼고 흐르는 컴벌랜드 강의 다리를 달리는 사람들과 “Good Morning!”하고 인사를 나눴다. 아침 일찍부터 땀을 흘리며 하루를 건강하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서호주 퍼스의 심장인 스완 강을 몇 년간 혼자 달리며 짙어진 생각이기도 했다.
운동을 하다가 마침 떠오르고 있는 해를 담고 있는 내 곁을 지나며 할머니 두 분은 나에게 말을 건네셨다.
“무얼 찍고 있는 거니? 해가 뜨는 모습?”
“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담아가고 싶었어요.”
“이걸 매일 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어.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
내가 아끼는 풍경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멈춰 설 수 있는 사람에게 자주 마음을 열곤 한다.
그러고 보니 집에 두고 온 그는 나와 함께 한 3년 동안 나와 함께 달리기를 해본 기억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운동을 하려면 장비가 필요하다는 둥, 옷이 없거나 운동화가 없다는 둥의 핑계가 지나자 이젠 ‘일’이라는 핑계 카드를 가지고 돌아왔다. 매일 아침 네슈빌을 달리며 밝게 웃는 사람들 속에서 내 결혼생활은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과 꽤나 달라있다는 생각을 했다.
‘1년만 있으면..’, ‘2년 만 기다려주면...’이라는 조건부 약속도 언제나 그 끝에선 또 다른 핑계를 불러오곤 했으니 더 많은 실망을 줄이기 위해선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이상향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결혼생활은, 꿈꾸던 모습들을 조금씩 정리해가는 과정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가끔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행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는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고 말이다. 결혼 전, 매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외박 한번 해보지 못했던 한 언니를 프랑스 파리의 한 민박에서 만난 적이 있다. 결혼을 한 후에야 비로소 남편의 응원으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온 언니는 결혼을 하고 더 많이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그 언니를 보며 나는 언제나 ‘결혼을 하고 더 많이 긍정적으로 달라진 삶’을 꿈꾸곤 했다. 주변에 결혼을 하고 더 행복해진 사람들이 많다면 당신 역시도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 역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장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함과 에피소드가 많은 커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면 행복한 이유가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