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의 신혼(그림) 일기
결혼을 하고 이따금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힘들어하는 그를 곁에서 지켜보며 해줄 수 있는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에 돌아와 자주 아팠던 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가 늦은 밤 혼자 울었다는 이야기를 이제서야 다시 곱씹게 됩니다. 결혼한지 180일이 된 우리는 각자의 길 위에서 어른의 성장통을 겪는 중입니다. ‘조금 더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힘들었을까’하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도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고 또 앞으로 마주하게 될 많은 경험들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이를 꽉 깨물곤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해피앤딩일테니까요.
그는 언제나 YES를 외치는 사람. 그 덕분에 회사에서도 빨리 승진을 할 수 있었다고 언제나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 YES는 그의 주변인들에게 좋은 일이지 나에게는 그다지 좋은 범주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동료들과 가족들도 언제나 그에게 기대곤 한다. 팀장이나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배우자가 된다면 이미 당신이 기댈만한 어깨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오는 그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에너지와 격려를 나눠주는 사람이지만 정작 집에 돌아오면 하루동안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느라 나와 대화를 할 힘조차도 없어보이곤 했다.
그의 전화기에는 쉬지 않고 진동이 울렸다. 신혼여행에서도 그러했지만 온전히 쉬기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도, 할머니집 아궁이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동료들까지도 핸드폰을 보지 않으면 불안한 듯 알람이 울리기만 하면 언제나 핸드폰을 열어 손가락을 쉼없이 움직이곤 했다. 이런 현상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안녕을 고하고 떠나갔다. 이따금 너무 좋은 사람과 안녕을 하고 돌아온 그는 슬퍼할 힘도 없어보였다.
그는 언제나 "괜찮다"거나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먼 미래를 함께 일궈 나가야 할 우리 두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핍이 존재했다. 참다 못한 내가 화를 낼 때마다 그는 부족한 체력과 마음을 긁어 꽃다발을 보내곤 했지만 더위로 바싹 말라버려 틈이 생긴 바닥에는 당장의 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가뭄이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다. 몇 번의 다툼이나 논쟁 끝에 그는 그의 것을 그리고 나는 비로소 나의 시간과 열정을 찾아 가기로 했다.
떠남을 준비하는 나에게 아낌없이 내어준 그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역시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회사의 일들을 왜 그는 주변에 나눌 수 없는 것일까. 왜 그는 언제나 희생이나 YES를 강요 받아야 하는 것일까. 왜 아무도 그의 마음 속은 궁금해하지 않을까.
그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전히 회사에 지고 있는 빚 때문이라면 그 짐을 하루 빨리 털어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싶을 뿐이었다.
어려운 상황들을 돌아보며 나는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가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언제든 “후회없이 했으니 이제 됐어”라며 지금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올 그 날을 위해 하루하루 묵묵히 내 길을 준비해 가는 것이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나의 최선임을 깨달으며 나는 내 앞에 주어진 것들을 지치지 않고 해나가는 중이다.
“이 나라에서 자네 운명은 전적으로 자연의 손에 달려 있다네, 친구.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지.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 모든 게 연기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이런 일들에 반드시 감사하게 될 걸세.”
/ 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중에서
# Jessie ▶ 모아둔 돈을 모두 긁어모아 호주로 가는 여정 준비 중
88년 천칭자리 / 서호주 사막 여행자로 살던 중 우연히 만난 남자와 지구별, 서울시에서 사는 중 / 회사와 맞지도 않으면서 회사원 코스프레하며 사는 중 / 외롭고 힘들 때 요가, 달리기, 글쓰기, 와인 마시기를 함
Instagram @jessie_even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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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86년 전갈자리 / 바리스타 8년의 경력을 살려 호주 카페에서 영어 한 문장 구사만으로 취업 / 어디서든 살아남을 자세가 되어있음 / 사회운동가이자 한때 가수 지망생(t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