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입히는 일

사이공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by Jessie


저는 요즘, 햇살을 널고 있습니다. 옷이 아니라 하루를요




엄마가 된 이후로 제가 가장 오래 서 있는 자리는 아마도 싱크대 앞과 빨래 건조대일 것입니다. 혼자였을 때는 허기만 채우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습니다. 주방은 잠시 들렀다 나오는 공간에 가까웠고요. 하지만 누군가와 저녁을 함께 먹기 시작하면서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풍경의 소중함을 두 눈과 두 손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설거지와 빨래, 요리는 더 이상 사소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선 돈을 내고 해결할 수 있었던 것들도 해외에서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밥을 짓는 일, 깨끗한 옷을 입히는 일은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도마 위에서 양파를 썰 때마다 타닥타닥 울리는 소리, 과일 자국이 묻은 옷을 손으로 조물조물 문지르며 세탁기에 넣는 시간. 그 일들은 어느새 제 하루를 지탱하는 리듬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가운데 가장 선명한 장면 하나는 햇살 냄새가 배어 있는 이불 위에서 낮잠을 자던 순간입니다. 볕에 바삭하게 마른빨래에서는 늘 다정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건조기의 편리함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옷과 아이의 옷만큼은 반듯하게 널어 햇살에 맡깁니다.


옷을 입는 일이 아니라 햇살을 입는 기분을 아이에게도 건네고 싶어서입니다.


베트남의 건기는 그래서 저에게 작은 기쁨이 됩니다. 아침에 널어둔 빨래가 석양이 질 무렵이면 바삭해지는 일. 정수리가 따가울 만큼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빨래는 묵묵히 마르고 있습니다.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루를 다독입니다. 빨래를 가지런히 개는 건, 오늘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작은 표시 같아서요.


뜨거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이 가끔 버겁게 느껴질 때에도, 햇살을 머금은 옷을 품에 안으면 이곳에서의 삶이 조금은 덜 낯설고, 조금은 더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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