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함은 잠시 내려두고

비어 사이공에서 배운 느슨함

by Jessie
@사이공 비어, 호치민의 대표적인 맥주 :)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주변의 시선에서 조금 멀어지는 일입니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너무 선명하게 그어두었던 기준을 천천히 내려놓게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는 빛이 바랜 플라스틱 의자와 낮은 테이블에 앉는 일이 조금은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저는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보다 자연 바람과 선풍기가 오가는 로컬 식당에서 커다란 얼음이 담긴 맥주를 마시는 시간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홀로 육아를 하던 시절, 제 하루는 늘 날 선 기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에게, 강아지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 했던 시간들이었으니까요. 흐트러질 틈도, 긴장을 내려놓을 여유도 제 삶에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프거나,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는 날들이 이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어두운 쪽으로 기울어 갔고, 그 시절의 저는 긴 터널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의 저는 낮에 마시는 맥주를 꽤 좋아합니다. 주말 아침, 부지런히 달리기를 하고 샤워를 마친 뒤 선풍기 바람이 천천히 흔들리는 자리에 앉아 풍경 속에 섞여 있는 시간 말입니다. 건강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주말의 나른함을 품은 채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역시 하나의 풍경이 되는 순간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지금.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라는 역할을 잠시 내려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는 일은 저에게 숨을 고르는 연습이 되었습니다.


비어 사이공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방식입니다. 완전함은 잠시 내려두고, 다시 이어질 하루를 위해 천천히 숨을 고르는 시간.


요즘의 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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