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내가 다시 펼친 페이지에서
저는 외로운 시간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외로움은 다르게 읽으면,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간이라는 뜻이니까요.
혼자인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은 밖에서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입니다.
해외 생활은 늘 외로움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자유는 있지만, 나를 단단히 붙들어주던 관계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게 되니까요.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결국 혼자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십 년이 넘는 해외 생활 동안 제가 조금이나마 단단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배워서가 아니라 혼자인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쌓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호주에 살던 시절, 가벼운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운동화 끝을 묶고 석양을 따라 달렸습니다. 외롭고도 아름다운 그 시간들을 좋아했고 또 아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던 밤. 그 시간은 제게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자리였습니다.
해외 생활의 아쉬움 중 하나는 도서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글로 된 책을 구하기 어려워 몇 안 되는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반복들이 저를 더 깊게 만들었다고 깨닫습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에 또 다른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럴 때면 깨닫습니다.
책은 같은 문장을 두 번 읽게 하지 않음을.
달라진 내가, 다른 문장을 만나게 될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모호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도 공감해주지 못할 것 같던 감정을 책 속의 누군가가 이미 지나왔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는 일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위로를 받습니다. 어설픈 격려보다 까만 글자들이 건네는 침묵의 다독임이 더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저는 책을 읽고, 혼자인 시간을 아낍니다. 해외에서 사는 삶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조용한 시간들이 제 곁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