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이공에서 일상을 여행하는 법

by Jessie
호치민 어딘가에서


스무 살 무렵, 어른이 되고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늘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소녀에게 카페라는 공간은 현실에서 잠시 비켜나 오롯이 나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어폰을 꽂으면 책 속으로 깊이 잠길 수 있었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 떠나지 못한 여행을 먼저 다녀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카페는 그 시절의 저에게 세상과 나 사이에 놓인 작은 다리 같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반듯하고 깨끗한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작고 소박한, 현지인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을 더 좋아합니다. 주인의 취향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 마치 누군가의 집을 조심스레 구경하는 기분이 듭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의 제목을 훑으며 누군가의 취향과 삶의 철학을 더듬어볼 수 있는 것처럼, 벽에 걸린 액자와 테이블 위 작은 스푼과 컵을 바라보며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의 취향과 삶을 더듬어 보는 일. 그것은 저의 은밀한 취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의 대화에 편승하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카페에 머물렀다면, 베트남에서는 낯선 언어를 백색소음 삼아 자주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공기처럼 흐르는 공간에 앉아 있으면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채 잠시 머무는 기분이 듭니다. 여행도, 삶도 아닌 어딘가에 놓이는 일. 그 감각이 저는 이상하게도 좋습니다.


떠나는 삶을 종종 꿈꾸어왔던 저에게 깊이 뿌리내리지 않는 하루는 불안이라기보다 가능성에 더 가깝습니다. 주변에서는 둥둥 떠다니는 부레옥잠 같은 삶을 걱정하지만, 저는 때로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이 숨을 쉬게 해 준다고 느낍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기에 어디든 잠시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입니다.


구글맵으로 골목을 탐색한 뒤 부지런히 찾아간 카페가 마음에 드는 날이면 괜히 하루를 잘 산 기분이 듭니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카페의 손잡이와 익숙해질 무렵이면 어느새 카운터 너머의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게 되고 이방인의 자리는 조금씩 옅어집니다.


카페는 저에게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베트남이라는 곳과 천천히 인사를 나누는 자리이자 이방인으로서의 경계를 천천히 흐트려놓는 곳이니까요. 강아지 손님에게도 웃음을 건네는 이곳에서 저는 오늘도 한편에 가지런히 앉아 일상을 여행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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