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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행 기차에서 사춘기와 만나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사춘기 딸과 함께한 기찻길 다짐

by 은하수반짝

‘기차를 탈까, 차를 렌트할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오래 했던 고민이었다. 유럽 소도시를 차로 달리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낭만이 넘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 들판과 지붕, 길모퉁이마다 불쑥 나타나는 동화 같은 마을. 마음 내키면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빵집에 들러 따끈한 프레첼을 먹는 장면까지 그려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짧은 일정에 많은 도시를 돌아야 하는 여정이었고, 낯선 도로에서 장시간 네비게이션과 씨름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등골에 땀이 흘렀다. 결국 내린 결론은 분명했다.
렌트 말고 기차를 타자. 그게 에너지와 혼란을 아끼는 길이리라.”


기차 여행은 훨씬 만족스러웠다. 기차 칸은 깨끗했고 좌석도 푹신했다. 4인 테이블 석에 마주 앉은 우리는 간식을 나눠 먹고, 다음 도시에서의 일정을 상의했다. 아이들은 활동지를 꺼내 여행의 기록을 채웠다. 무엇보다 오후 네 시 이후 기차 이동은 단잠을 청하며 아침부터 쌓인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었다. 물론 주변에는 큰 목소리로 수다를 떠는 현지인도 있었지만,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자유로운 풍경 앞에서 금세 그조차도 여행의 일부가 되곤 했다.

테이블 석이 없을 땐 둘씩 나눠 앉았다. 그 덕에 사춘기의 문턱에 선 딸과 오붓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녀는 나와 숲길 산책이나 카페 데이트를 즐겼는데 요즘은 저녁밥만 먹으면 이어폰 꽂고 혼자 자전거를 타러 나가기 바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는 그녀가 꼼짝없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음악 들어? 엄마도 같이 듣자.”
“좀 시끄러울 텐데, 엄마 취향 아니야. 괜찮겠어?”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온 건 ‘이 세계 아이돌(줄여서 ‘이세돌’)’이라는 버츄얼 그룹의 ‘ELEVAT’였다. 중독성이 있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딸은 ‘이세돌’에 대한 정보를 재잘거렸다. 이번 고척 경기장에서 열린 공연에 2만 3천 명이 모였다나, 무엇보다 멤버들의 유투브 방송이 재미있다고 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눈앞에 있지도 않은, 만화 같은 얼굴의 아이돌에게 왜 내 딸은 그렇게 열광할까.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매력이 조금씩 보였다.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 방송에서 게스트와 대화하고 팬들과도 친근하게 소통하며 ‘옆집 언니’처럼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스타는 언젠나 베일에 가려있지만 가상의 존재들은 변치 않고 약속을 지키며 팬들의 바람대로 살아간다. 딸아이는 그 속에서 현실이 주지 못하는 위로와 꿈을 얻고 있었다. 우린 이세돌의 ‘Misty rainbow’를 들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두 손을 잡고 모두의 꿈을 향해 나가자 함께하자.

뛰어봐 오래전 네 꿈을 찾아서 숨결이 닿을 때까지

만약 너 자신이 의심되면, 지켜 줄게


기차는 오스트리아의 초록 들판을 가로질러 체코로 향하고 있었다. 진녹색 물결처럼 출렁이는 초원은 마치 누군가 정성껏 빗어놓은 머릿결 같았다. 그 사이사이엔 붉은 지붕을 얹은 마을과 첨탑 높은 성당이 석양에 반짝였다. 언덕 위 고성은 긴 세월을 버텨온 듯 웅장했고, 숲은 저녁 바람에 부드럽게 일렁였다.
“다솔아, 저기 봐. 풍경이 완전 그림이다. 음악이랑도 잘 어울리네?”
“그치, 엄마. 릴파 목소리 은근히 분위기 있잖아.”

사춘기는 몸과 마음이 폭풍처럼 자라는 두 번째 성장기다.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달라지고, 부모는 그 변화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한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을 대할 때 마음에 새겼던 원칙들을 아이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줄이고, 대신 짧고 유머러스하게 말하기.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고, 맛있는 간식으로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목까지 차오르는 잔소리는 꾹 삼키고, 칭찬 거리를 찾아내기. 무엇보다 믿어주고, 때로는 속아주기. 쉽지 않지만, 이제부터는 허벅지 찔러가며 인내하고 존중해야 할 시기가 왔다.


사춘기 아이에게는 마음을 일깨우는 좋은 자극이 필요하다. 닮고 싶은 어른, 세상을 넓히는 책과 체험들이야말로 아이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새롭게 빚어내고, 생각의 근육을 자라게 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나는 바랐다. 딸아이가 클림트의 황금빛 그림 앞에서, 모차르트의 단단한 선율 속에서, 괴테와 헤세의 깊은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잠시라도 마음이 흔들리기를. 그 울림이 아이의 내면 어딘가에 작은 씨앗으로 남아 언젠가 자신만의 빛으로 피어나기를.



다행히 이번에는 늘 하던 “왜 여기까지 걸어야 해?”, “교과서 사진으로 보면 되잖아”, “집에 가고 싶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생글거리며 작품 앞에 서서 열심히 눈을 맞추고,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그 순간을 간직하려 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에 작은 변화의 결이 스며든 듯 보여, 나는 고맙고 뭉클했다.


창밖 풍경이 저녁 빛에 물들 무렵, 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 손에는 세월의 힘, 부부의 애씀 그리고 깊은 감사가 어려 있었다. 어릴 적 모양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손을 꼭 쥐고 말했다. 낯 간지럽지만 유럽의 감성을 빌어 말이다.
“이렇게 예쁘게 커 줘서 고마워. 너는 뭘 하든 잘 해낼 거야.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인 거 알지?”


중학생이 되면 무시와 짜증이 일상의 기본값이 되는 날들이 찾아올 것이다. 공부와 외모, 사회성까지 서열 매기는 한국에서 청소년들은 버거운 싸움을 치른다. 짜증의 화살이 나에게도 날아오겠지. 그 순간이 두렵지만, 아이가 너무 지쳐 세상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질 때, 비난하지 않고, 그저 곁에서 묵묵히 들어주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성인으로 나아가기 전 마지막 큰 관문 앞에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다짐을 되새길 때, 기차 창밖으로 풍경이 흐르고 있었다. 츠노이모를 지나 보헤미아 평원으로 향하는 길, 포도밭 사이로 작은 마을의 첨탑이 하늘을 찔렀다. 철길 옆을 따라 흐르던 디예 강 지류는 노을을 담아 은빛으로 반짝였고, 멀리 체스케 부데요비체의 종탑이 저녁 종소리를 예고하듯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시 속삭였다.
“그래, 어떤 날이 와도… 나는 너의 편이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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