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
상승장에는 선매수 후매도, 하락장에는 선매도 후매수 법칙이 있다.
아니다. 그런 법칙 따윈 없다.
언제 상승장이 끝날 지, 언제 하락장이 시작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매수 후매도를 결정하고 처음 며칠 동안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주중 오후에도 집을 보러 왔고, 주말이면 서너 팀이 줄줄이 집을 보러 왔다.
우리 집은 신도심에 위치한 7년 차 된 33평 아파트로 타워형 20층에 뻥 뚫린 영구 뷰를 가지고 있었다.
남서향이어서 해가 질 때 노을이 참 예뻤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마다 뷰를 칭찬했고, 그럴 때면 어쩐지 뿌듯하기도 했다.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중년부부, 신혼집을 찾는 예비부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끊임없이 집을 보러 왔다.
그리고 집은 자주 보러 오는데,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던 어느 날.
역병이 돌았다
코로나였다
처음에는 별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다. 희망에 불과했다.
뉴스가 온통 코로나로 도배되더니,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다.
주식이 끝도 없이 떨어졌다. 부동산도 어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갔다.
하필 내 집을 팔아야 하는 시기에 손님들 발 길이 뚝 끊겼다.
"소장님~ 요즘 집 구하는 손님 없나요? 저희 집 팔아야 하는데 어떡해요오~"
"내가 진짜 노력하고 있어~ 자기 집 팔아주려고 손님 오면 제일 먼저 데려가잖아~ 기다려봐봐~"
이 사건 이후 나는 '절대 믿으면 안 되는 리스트'에 '부동산'을 추가했다.
하루하루 피가 말렸다. 집은 나가지 않는데, 계약한 집 잔금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지어 있던 사람들이 부동산엔 없었다.
결국 잔금 치르는 날까지 집은 팔리지 않았다.
원래는 매도금을 받아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집이 팔리지 않았으니 돈도 없었다.
막을 돈이 없으니 급한대로 신용대출을 알아보고
사정을 들은 가족들이 고맙게도 선뜻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 도움이 아니었으면 부동산 경매라는 타이틀로 다음 글을 써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대출과 가족의 도움으로 매수한 집 잔금을 치를 수 있었다.
등기를 쳤으니 이사 준비를 했다.
빈 집이 더 잘 팔린다 하기에 얼른 짐을 빼자 싶었다.
그런데 매수한 집이 문제였다.
이사나가고 나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이것저것 손볼 게 많았다.
도배와 싱크대와 팬트리 시트지 작업, 아일랜드 샌딩 작업과 화장실 수전 교체, 조명과 콘센트를 바꿨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내 인생에 두 번째 이사는 없다고 다짐했기에 통장을 박박 긁었다.
오래 살 집이라 생각하고 꼼꼼하게 고쳐 이사를 했다.
기존 집은 다행히 단기 월세를 찾는 사람이 있어서 월세를 내주며 매수자를 기다릴 수 있었다.
여기저기 빌린 돈에 이 집 저 집 이자를 내며 버틴 지 한 달, 두 달.
시간은 흘러 흘러 정확히 6개월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드디어 매수자가 나타났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였다.
기대보다 가격을 낮춰 팔고도,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팔고 나서 몇 달 만에 집값이 훅 오를 줄은 그땐 몰랐다.
두 달만 더 기다렸다면 몇 천은 더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사정이 급했으니 기다릴 여유란 없었다.
모든 일을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면 바보 같은 일 투성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다.
속이 무척 쓰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것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몇 달간 어깨를 짓누르던 채무를 다 갚고 나서야
우리 부부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잘 이사했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이제 다 끝났다. 이제 새로 이사한 집에서 아이 잘 키우며
초등학교도 보내고, 중학교도 보내고, 우리 가족 으쌰으쌰 잘 살 일만 남았네 싶었다.
이사한 집은 좋았다. 6평의 여유공간이 우리에게 안락함을 선사했다.
집안 살림살이들이 수납장과 팬트리에 다 들어가고 나니 집이 한결 깔끔해졌다.
여섯살 아이도 좋다며 우리집 이사했다며 자랑을 일삼았다.
그렇게 이 집에 정착하여 오래오래 아주 오오오래 살 줄만 알았던 어느 날.
이사한 지 정확히 9개월째 되던 때였다.
남편이 발령을 받았다. 서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