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기록의 흔적(痕迹) 흉터흔, 자취적 20240417

by 지금은

양평 용문사에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을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고 하기도 하고,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자랐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이야기니 그 시간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세월을 견디며 노목의 웅장한 모습을 보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찾아갔습니다. 우선 단풍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웅장함에 하품하듯 입을 벌렸습니다. 다음은 수확량에 놀랐습니다. 은행을 한 해에 10여 가마니 이상을 수확한다고 했습니다. 친구 대여섯 명이 팔을 벌려 기둥을 둘러쌌지만 이도 모자랐습니다. 스님의 말로는 1000년의 연륜을 지녔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이야기를 지닌 나무들이 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정이품 소나무가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10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인근의 인천대공원에는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용문사 은행나무나 정이품 소나무와는 달리 이 나무는 유래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지만 5·600백 년을 예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영험한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액운이 있거나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면 나무에 제물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렸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나무를 심는다. 내가 알고 있는 나무 심는 날은 4월 5일입니다. 잊히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식목일날 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빠짐없이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헐벗은 산을 살리기 위해 온 국민이 나무 심기에 참여했습니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작은 손이기에 회초리만 한 나무를 심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손수 심은 나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용문사나 장수동의 은행나무 정도라면 나를 반기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 볼 수 없다는 게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어느 땐가 흔적을 찾아볼 요량으로 살펴보았지만, 그루터기는 물론 뿌리조차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다른 나무들이 차지했습니다. 은행나무를 심었으면 좋았을 걸 했지만 지난 일입니다.


심은 나무는 미루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빨리 자라지만 수명이 길지 않습니다. 어느새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친구들과 함께 심은 나무들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잘려 성냥공장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식목일의 의미가 사라진 듯합니다. 전국적인 식목 행사가 없습니다. 나무 심는 날도 꼭 4월 5일 전후여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식목 행사를 한다면 날짜를 앞으로 당겨야 한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여 3월 초순으로 정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심은 나무의 기억이 있습니다. 섬에서 살 때입니다. 아이들이 키가 크는 데는 농구가 도움을 준다기에, 골대를 마련해 주려고 많은 은행나무 중에 하나를 솎아 학교 운동장 곁에 심었습니다. 나무가 커서 파내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에 밑동을 잘라 옮겨 심고 골망을 달아주었습니다. 웬일이지요? 살 거라는 희망을 품지 않았는데 봄이 되자 새잎이 돋았습니다. 그러다 말겠다고 했는데 다음다음 해도 연이어 가지를 뻗으며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꺾꽂이가 됨을 알았습니다. 삼십여 년이 지난 후 찾아가 보니 나 홀로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용문사 은행나무처럼 천만년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섬을 떠나올 때 보건소 앞뜰에 있는 작은 석류나무 두 그루를 얻어가지고 와 화분에 심었습니다. 해가 지나자 너무 자라 집안에 두기가 불편해 아파트 화단에 옮겨 심었습니다. 잘 자라서 이사할 때는 아까운 감이 들었습니다. 이후 이웃 마을이고 보니 가끔 앞을 지나칩니다. 한 그루가 몸집을 불리고 내 키의 두 배나 커졌습니다. 언제나 하고 애태우던 열매도 여러 개 열렸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입니다. 절망 속의 용기입니다. 나무 이야기만을 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국민의 삶도 담겨있다는 생각 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암울했고 어두워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 우리는 산림녹화를 이루어낸 것처럼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를 이룩했습니다. 가장 불쌍한 빈곤 국가에서 벗어나 선진 국가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흔적의 이야기를 하면서 숲에 관한 책을 한 권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프로방스 지방의 어느 고원지대. 사람들의 분별없는 욕망으로 폐허가 된 마을들, 나무를 마구 베어 내어 모진 바람만 불어대는 버림받은 땅, 이 황량한 곳에 매일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양치기의 외롭고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숲이 다시 살아나고 맑은 강물이 흐르며 새들이 지저귀는 생명의 땅으로 되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알게 모르게 이와 비슷한 좋은 흔적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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