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너무 친절해서 20240219
아이스크림을 파는 점포를 찾았을 때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물건만 진열된 채 아무도 없습니다. 실내를 둘러보다 그냥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앞을 지나치다가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안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무인점포입니다. 뉴스에서 무인점포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우리 집 근처에 생길 줄이야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물건을 챙기고 자신이 직접 계산한다기에 궁금해서 다시 들렸습니다.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서 값을 입력하려는데 마음같이 되지 않습니다. 이용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잠시 씨름을 하다가 결국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나와야 했습니다. 다음에 또 지나가다 보니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인가 했는데 손님입니다. 재빨리 물건을 몇 개 집어 들고 계산대 앞에 섰습니다. 다시 안내서를 읽으며 물건을 입력시켜 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류입니다.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답답했나 봅니다. 굼뜨기는 했지만 도움을 받아 물건을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음에 갔을 때입니다. 계산하려는데 진열대 뒤에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주인입니다. 친절하게 기계의 사용 방법을 설명하면서 계산을 도와주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그 후에도 얼마 동안 볼 수 있었습니다. 무인점포이지만 물건을 정돈하는 동안 사용 방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듯했습니다. 내가 갈 때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다가왔습니다. 전과 같은 설명을 하면서 계산을 해줍니다. 처음에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지만, 점차 마음이 식어졌습니다. 나중에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는 도움의 손길이 없어도 됩니다. 무인점포라고 해서 남의 신경을 쓰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노인이라는 이유로 받지 않아도 되는 친절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낯선 키오스크에 대해 벽을 허물었지만, 그 이후로 점차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무인기가 있는 곳이 많습니다. 식당을 비롯하여 카페도 있습니다. 주문을 종업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합니다. 나는 처음 가는 곳에서는 작동 방법이 달라 어리둥절한 일이 있습니다. 시도를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종업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사용 방법을 익히려고 합니다. 다시 찾을 때를 생각합니다. 그 길 건너 편의점 주인은 다소 느긋한 성격인가 봅니다. 처음엔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가 낯선 기계에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읽고서야 다가와 설명합니다. 무심한 듯 필요한 도움만 주니 다음에도 편한 마음으로 찾게 됩니다. 아내가 자주 가던 동네 빵집의 주인이 바뀌면서 발길을 끊었습니다. 개업으로 손님을 끌고 싶었을까요. 친절이 지나쳐 못 가겠답니다.
나는 옷을 사러 갈 때면 신경이 쓰입니다. 매장에 들어서자, 종업원의 깍듯한 인사와 밝은 미소가 좋기는 한데, 마음에 걸립니다. 그것으로만 끝나면 좋겠는데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곁에 붙어 다닙니다. 이것저것 눈으로 보다가 하나를 손에 집으면 이때다 싶었는지 제품의 좋은 점을 늘어놓습니다. 따라서 내 모습과 연관 짓습니다.
“색깔이 얼굴에 잘 맞아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쏟아냅니다. 천천히 하나하나 살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싶은데 여의찮습니다. 집는 것마다 어울린다고 하니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할지 혼동이 됩니다. 결국 쫓겨나듯 스스로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몇 번의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 의류점에 갈 때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졸졸 따라다닐까, 아니면 먼발치에서 기다려줄까. 때로는 가까이 다가오는 종업원에게 미리 귀띔해 줄 때도 있습니다. 천천히 혼자 둘러보고 마음에 들면 이야기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친절이 좋기는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귀찮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성격 탓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사교적이지 못합니다. 어쩌면 사무적이라고 해야 합니다. 겨우 해야 할 말만 하는 성격입니다. 무뚝뚝하다고 해야 할까, 마음과는 달리 상냥하다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이런 성격을 아는 아내는 나의 길잡이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씀드릴 거예요.”
말하기 싫어하는 나를 대신합니다.
오늘은 아내의 신발을 하나 사려고 매장에 들렀습니다. 따라오던 종업원이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소곤소곤 말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게 맘에 들어할 때까지 말입니다. 키오스크의 사용 방법도 부지런히 익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