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과 亟의 기원
1582년 한 이방인이 마카오에 도착했다. 이 이방인의 중국식 이름은 이마두(利瑪竇), 호는 서방에서 온 현사(賢士)라는 뜻의 서태(西泰)이다. 이 사람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로마교황청 소속 선교사 마테오 리치다. 그는 나이 31살 때인 1582년에 마카오에 도착 헸다. 그곳에서 중국어와 한문을 배웠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좀 더 내륙인 중국 조경(肇庆)이라는 도시로 옮겨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마테오를 만난 중국인들은 그가 전하는 성경의 내용보다 더 호기심을 보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온 세계지도였다. 그 지도에는 땅이 동그랗게 그려져 있었다. 지도를 본 중국인들은 경악했다.
<곤여만국전도>
당시 중국인들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설을 믿고 있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생각이 당연시되었던 시대에 땅이 둥글게 그려진 지도를 보았으니 충격과 의심이 교차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은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가 저 하늘에 떠있는 별들 중의 하나이며, 심지어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처음 접했을 때와 유사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우주관은 고대 중국의 창조신화에서 엿볼 수 있다.
태초의 우주는 달걀 같았다. 알 속은 어두웠고 음양이 뒤섞여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를 젓가락으로 휘저어 섞어 놓은 것 같은 혼돈이었다.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지 않았고,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았으며,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한데 섞여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소용돌이 속에서 작은 덩어리 하나가 생겨나더니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속에서 혹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와 사람의 얼굴로 변해가더니 뒤를 이어 몸통에서 팔다리가 분화되어 나오며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는 점점 커져서 곧 거인이 되었다. 거인은 태중의 아이처럼, 알속의 병아리처럼, 혼돈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몸을 웅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다시 1만 8천 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인은 갑자기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거인이 큰 소리로 하품을 하며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켜자 순간 알이 크게 출렁이며 금이갔다. 그때 거인을 잉태하고 있던 응축된 음양의 기운들이 알을 터치고 나왔다. 가볍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고,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가라앉았다. 비로소 하늘과 땅이 나뉘기 시작한 것이다.
거인은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섰다. 납작한 발바닥으로 대지를 굳건히 밟고, 둥근 머리로는 하늘을 떠받들었다. 이 모습은 그리스로마신화의 아틀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아틀라스는 신들의 전쟁에서 제우스의 반대편에 섰다가 그 벌로 평생 동안 지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다. 참고로 사람의 두개골을 직접 지탱하고 있는 환추(C1)는, 그 모습이 마치 아틀라스( Atlas)가 하늘을 떠받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Atlas vertebrae).
거인은 날마다 키가 1장(3m)씩 커졌고 더불어 하늘은 1장(3미터)씩 높아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마침내 하늘은 까마득히 높아져서 가물가물(玄)하였고, 땅은 지극히 낮아져서(低) 서로 구만리나 멀어졌다. 이제 하늘은 단단히 굳어서 반고의 정수리 모양으로 변했고, 땅은 거인의 네모난 발바닥에 눌려 평평한 사각형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다시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초월적인 힘을 가진 거인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어느 날 노쇠해진 거인은 천지를 진동하며 쓰러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쓰러진 거인의 몸이 흩어지며 다시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큰 목소리는 우레가 되고,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었다. 손과 발은 산이 되고, 몸은 논밭이 되었으며 피는 흘러서 강물이 되었고 힘줄은 길이 되었다. 머리털과 수염은 빛나는 별이 되고, 몸에 난 털은 초목이 되었으며, 이와 뼈는 쇠붙이와 돌로, 골수는 보석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가 흘린 땀은 비와 호수가 되었다.
고대 중국의 창조신화에서 혼돈의 알을 깨고 나와 천지를 개벽시키고, 죽어서는 다시 자연의 모습으로 화생한 거인, 그 이름은 반고(盤古)이다.
반고 신화는 중국의 삼국 시대, 오나라의 문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오나라가 소수민족의 신화를 차용하여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 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인도와 서아시아 신화가 중국으로 유입되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인 상나라의 갑골문(BC 1300년 경)에서도 반고 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문자가 등장한다.
천자문의 첫 글자 天(하늘 천)이 그것이다. 갑골문에서 보듯이 두 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서있는 큰 사람의 모습이다. 특히 머리를 크게 그려 강조하였다. 그 모습을 大(큰 대)와 비교하면, 마치 반고가 지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天(천)의 처음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이다. 이후 머리 꼭대기 부위에 가로획을 그어 '정수리'를 가리켰다. 하늘과 맞닿는, 직립한 인간의 정수리를 하늘과 동일시한 것이다. 고대에 정수리의 병을 천질(天疾)이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고 신화는, 천지인이 본래 하나였으며, 인간의 몸이 곧 자연이며, 그 머리가 하늘이라는 천지인 합일 사상을 담고있다. 이러한 인간중심의 사고가 그대로 녹아있는 글자가 天(하늘 천)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자원에서 분화한 兀(우뚝할 올)과 元(으뜸 원)은 천지 사이에서 인간이 만물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편 반고가 천지 사이에 우뚝 서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 亟(빠를 극)이다. 갑골문에서 보듯이 땅을 굳건히 밟고 선 반고가 그 머리로 하늘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亟(극)의 원래의미는 인간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공간의 '끝'을 의미한다. 좁게는 머리끝과 발끝을 가리키고, 넓게는 반고의 정수리가 맞닿는, 육안으로 보이는 천정을 가리키고, 아래로는 반고의 발바닥 아래 곧 땅바닥을 가리킨다. 이로부터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을 의미하는 궁극이란 뜻이 나왔다.
예를 들면, 남극(南極), 북극(北極)이라고 할 때의 極(다할 극)은, 사람의 정수리(亟) 위에 있는 나무(木), 곧 목조건물의 기둥 꼭대기에 올리는 용마루를 가리키고, 殛(죽일 극)은 사람의 일생에서 그 끝인(亟) 죽음(歹)을 의미한다.
후에 금문에서 口(입 구)와, 攴(칠 복)의 생략체)인 又(우)를 더해 지금의 亟(극)이 되었다. 금문은 갑골문과는 다른 뜻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이를 육서에서는 전주(轉注)라 한다. 전주란 글자를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글자의 의미를 굴리거나(轉) 끌어와서(注) 다른 뜻으로 쓰는 조자방식을 말한다.
亟(빠를 극)의 금문은 '빠르다' 또는 '긴급하다'를 뜻한다. 口와 又는 큰 소리를 지르며(口) 매질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포로나 죄인을 심문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亟(빠를 극)은 숨기고 있는 어떤 사실을 들춰내기 위해서 몹시 급하게 다그치며 궁극(亟)으로 몰아가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마음이(心) 급해지기(亟) 마련이다. 더불어 마음이 급해지면 말이나 행동이 가벼워지고 조심성이 없어지는데, 이를 㥛(경망할 극)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䩯(중해질 극)은 긴급한(亟) 변화나 개혁(革)을 요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병의 상태가 심각하여 빨리(亟) 고치지 않으면(革) 위중해질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