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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Dec 15. 2022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야

며칠 전 한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저희들이 오지 않을 때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나는 진지한 사람이라 성실히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 사람을 요새는 TMI*라고 하고,

나는 TMI*한 사람이 맞다.


정말로 알고 싶은거야?

너희들이 왔다갔다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교장선생님까지 결재를 맡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계획을 세우고

약품과 소모품의 예산을 계획해.

안전공제 등 너희들이 졸업하고 3년이 지나도록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


가벼운 의료행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보건교사 역량 강화연수'에

강사로 왔던 응급실 의사선생님은

보건선생님들의 열띤 질문에

강의시간이 끝나도 집에 가지 못하셨단다.


흔하디 흔한 타이레놀 1알을 줘도

너희가 혹시 한약을 먹어서

간이 약해져 있진 않은지,

내 앞에선 아닌 척 하지만

부모님 몰래 작은 일탈을 하느라

어른인 척 지난 밤 음주 한잔 하고 오진 않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주는 거야.

아참 음주예방교육도 내가 하는거 알지?

가끔은 꼭 술까지 마셔야 할만큼 힘들었냐고 물어주고,

그 한마디에 갑자기 눈물이라도 우르르 쏟아지면,

얼른 들어가서 다 울고 나오라고

보건실 한편을 비워줘.


보건, 성, 위생, 건강, 안전 등등

보건에 숟가락이 가려다가 만 것 같은 공문도...

공문 알지? 공식문서.

학교는 기관은 공문으로 일하는 거야.

교감선생님이 주시면,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행정실 선생님이 해주셔야 되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대부분은 꾹참고 하는 데까지는 해.  

연말 국정감사 기간이면,

이미 보고한 수도 없는 결과들을

새삼 3년치 5년치를 찾아서

또 보고하기도 하고 말이야.


전국민 나이스 서비스의 건강기록부를 담당하고 있고,

오늘도 나는 너희들의 PAPS 내용을 당겨다가

신체발달 상황과, 건강검진 결과를 기록하고,

졸업 후 언제든

너희들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해놓았어.

2명의 위탁 학생 기록이 빠져있길래

일일이 연락해서

빈칸이 없도록 채우는데 하루가 걸렸구나.


너희들이 쉬고간 이부자리는

돌돌이를 들고가서

기다란 머리카락과 부스러기들을 치우고

알콜을 칙칙 뿌려서 소독을 해.

너희 진짜 머리카락 왜그리 많이 빠지니?


이불은 매번 빨기는 어려워서

연 4회 세탁소에 맡기고 있어.

얘들아, 제발 쉬고갈 때 이불은 개주지 않을래?

선생님이 너무너무 바쁜데

몸만 쏙 빠져나가서 엉망이 된 이부자리를 보면

속이 너무 상해.


너희들이 베고간 베겟잇은

1회용 부직포를 써보다가

지구한테 미안해서 수시로 집에 가져가서

우리집 세탁물과 같이 빨아다가

늘 새걸로 갈아주고 있어.


약품 사냐고?

응 약품 사지, 약품 사는 건

한 학기에 한번 정도니까 큰 일이 아니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까스활명수같은 게 떨어지면 어떡하냐구?

재주문이나, 추경예산을 잡으면

행정실 선생님들이 귀찮아 하시니까,

그냥 내 돈으로

우리동네 약국에서 사다가 채워놓기도 해.


비타민?

비타민 공짜로 먹어서 좋겠다구?

어우야.. 선생님은 비타민 별로 안좋아해.

그리고 선생님은 따로 먹는 거 있어.

시크릿쥬쥬 비타민은

너희들 주고 싶어서 주문한 거야.

난 이거 먹어


아침안먹고 약달라고 할 때 주는 참크래커?

그것도 내가 사다놓은 거야.

보건실에 늘 넘치는 사탕은 뭐냐고?

선생님은 참 좋겠다고?

얘들아...정말!

사탕도 내가 사다놓은 거야.

그래서 살쪘냐고?

지금 선생님 놀리는 거야?

선생님 삐진다!!!

아니아니, 너희들이 그걸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게 좋아서.

너희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서.

너희들이 있어서 내가 선생님이 된 거니까,

그게 고마워서.

무슨 짓을 하든

어른들이 하는 나쁜 짓과는 비교가 안되니까

난 너희들이 하는 미운 행동들도

그렇게 밉지 않아.


야야 그리고 너 2학년 되면 보건수업 하는 거 알지?

일주일에 1시간씩 보건수업도 있다.

그거 내가 들어가잖아.

너 내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기다.

너 얼굴 기억했어.


나의 존재가치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쓰지 않은 것이 백가지는 될 것 같다.

그러나 한번 종알거려본다.

나는 간호사이고, 보건교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가장 능력이 출중한 대한민국 보건교사다.


학생의 귀에는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보건선생님께 함부로 질문하는 거 아니다.




*TMI : too much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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