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배달되나요?
비가 추적내리던 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으로 차를 몰았다. 그 당시 차에서 주로 일을 했었기 때문에 밥을 먹거나 노트북 작업을 해야 할 때, 근처 도서관이나 식당으로 향했다. 김포의 새로 생긴 도서관이었다. 맨 위층에는 자그마한 카페가 있었다. 노트북을 열고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 날도 달리 갈곳이 없어 도서관으로 향한 것이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고, 코로나 초기단계였다. 우산이 없었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웬일로 자리가 많지? 의아해하며) 비를 맞으며 도서관 문 앞으로 향했다. 어라,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다시 힘주어 열어보다가 문에 적혀있는 팻말을 그제서야 확인한다. 코로나로 인한 공공도서관은 일제히 폐쇄한다는 문구. 그랬다. 감염병 위기의 상황에서 공공기관, 학교 등은 제일 먼저 문을 닫아야만 했던 것이다. 도서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 근처 도보로 10여 분거리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지금도 있지만 사용을 못하고 있다. 약 3년 전에도 나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첫째 아이와는 즐거운 데이트 코스로,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입덧을 달래보고자 산책용으로, 시간 때우기로, 그리고 책을 접하면서 태교 등의 이유로 작은 도서관을 즐겼다. 사은품으로 받은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가 있었는데, 가방에 10권이 넘는 책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라 나는 이 장바구니를 꽤나 유용하게 이용했다.
작은 도서관에도 책은 많았다. 신간서적을 맨 처음 둘러보고 손에 잡히는 게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코너 쪽으로 향한다. 자기계발이나 자녀교육, 에세이 등등.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게 생긴다. 지난 번에도 항시 같은 자리에 있었을 텐데, 매번 갈 때마다 새로웠다. 보고 싶은 책들을 속속 골라내고 한 페이지 두페이지 읽다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는 녀석들도 있다.
딸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무렵,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다. 이런 저런 인증의 절차가 복잡했다. 작은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로 회원가입을 하고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디 생성과 인증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던 것이다. 나도 이런데,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사람은 인증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다른 것보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도서관 이용은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는 만큼 절차가 단순하고 간편해졌으면 좋겠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침내 인증을 성공했다. 그 날은 겨울의 한 가운데였고, 아이는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강원도 원주에 살고 있는 고모네는 늘 우리에게 옷을 물려주었다. 빨간색 코트도 사촌 언니가 입다가 너무 예쁘고 새것 같아서 아이에게 물려준 것이다. 아이는 그 옷을 좋아했고 나도 빨간 코트가 맘에 들었다.
우리는 그 날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다. 요즘 도서관에서는 바로 발급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출입자체가 안되지만 말이다) 의자에 앉아서 도서관 직원이 사진을 찍는다. 빨간색 코트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어 넘긴 채,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어색하니 표정이 굳어있다. 활짝 웃을 정도는 아니지만 살짝 미소라도 머금을 수 있게 격려해준다. 난생 처음 만드는 자신의 카드를 아이는 두 손으로 받았다. 주민등록증 이전에 5살에 처음으로 도서관 카드를 만든 날이었다.
이후 아이는 지갑에 고이 도서관카드를 보관했다.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가끔 엄마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날에 도서관카드를 챙겼다. 이렇듯 도서관 카드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에 불씨를 당겨준 것 같았다. 작은 도서관이지만 함께 가는 길 내내 행복했고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이 좋았다. 강아지풀,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그 길을 우리는 자주 손을 잡고 걸어다녔다.
아이에게 도서관 카드의 의미란?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이 있다. 도서관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빌 게이츠와 오프라 윈프리다. 빌 게이츠는 어릴 적 동네도서관을 다니면서 몸에 베인 책 읽는 습관을 성공의 비결로 내세웠다. 오프라 윈프리는 어릴 적 많은 어려움과 역경, 고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강연가로 우뚝 섰는데 그 비결이 책 속에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 카드를 가지는 것을 굉장히 큰 소중한 가치로 여겼던 것이다. 이 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 도서관과 친숙한 작가가 있다. 내 마음에 책이라는 불씨를 당겨준 작가이기도 하다. 바로 김병완 작가이다.
내가 맨 처음 작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책이라는 신세계에 이렇게 빠질 수 있었을까? 그는 삼성이라는 큰 대기업을 관두고 무작정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가장이라는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서관에서 약 3년 동안 책에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책 읽는 방법도 모르고 두꺼운 책을 소화하기에도 꽤나 힘들고 어려웠다고 그의 책에서는 말한다. 책을 읽고 읽다보니 쓰고 싶어졌고, 그는 마침내 하나의 책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를 포함해 여러권의 책을 저술하기에 이른다. 나에게 책이라는 문을 두드릴 수 있게 해준 김병완 작가 역시 도서관이라는 보물창고의 커다란 연결고리였다.
집 근처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고 또 새로지어진 도서관도 있었다. 20여 분을 차로 달리면 오래된 커다란 도서관도 있었다. 나는 아이 유치원이 그 근처라서 기회 삼아 자주 들르기도 했다. 아이가 하원하면 김포의 통진도서관 근처 떡볶이집에서 매운 떡복이를 후후 불어가며 먹기도 했다. 예전 도서관과 차이가 있다면 요즘 도서관에는 지하 매점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늘 지하 매점이 있었다. 라면을 주문해 먹기도 하고 간식을 먹기도 했다.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냄새 때문일까? 최근 도서관에는 매점이 사라졌다. 앞으로 더욱 그럴 것 같다.
지금 우리 곁에서 도서관이 사라지고 있다.
책을 빌리러 가고 책을 보러 갔다. 아이에게 도서관이라는 환경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 역시 책을 마음껏 빌려보는 공간이 좋았다. 한번 가면 10~20권 가까이 되는 책을 빌려오기도 했다. 자주 갈 수 없으니 빌릴수 있는 최대 권수를 빌려오는 것이다. 성인코너에서 빌리고 아이와 함께 어린이 코너에 가서 책을 고르고 빌리기도 했다. 그 곳에서 다양한 책들을 접했고 베스트셀러 이외의 책들도 많이 접했다. 운명과도 같은 책을 만나기도 했다. 책이라고 두껍다고 해서, 어렵다고 해서, 휘황찬란하고 어려운 어휘들을 쓴다고 해서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책은 각자의 매력이 있다. 읽기 쉬운 책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사실 두꺼운 책이나 공자, 맹자 등의 책에는 접하기 어렵지만, 내가 읽기 좋으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그 날, 그 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이곳 저곳의 도서관에 남아있다. 함께 앉았던 자리, 책을 고르던 시간들이 소록소록 생각난다. 지금은 문이 닫힌 도서관.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 책을 빌릴 수 없다. 임신하고 출산했을 때 집 바깥으로 외출이 어려운 시기에 이용한 좋은 서비스가 있었다. 생애 첫 도서관 은 아이를 출산하고 집에서 몸조리하던 시절, 나에게 꿀 같이 달콤한 도서관책 배달 서비스였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을 검색하고 지역별 도서관을 확인하고 택배를 요청하면 집으로 배달되었다. 따근한 새책같은 깨끗한 책들도 있었고 손때가 묻은 책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책의 상태가 좋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과 시기에 도서관에서 그런 서비스를 확충하면 어떨까? 식당영업을 단축하면서 포장과 배달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요즘, 책 배달 서비스를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온 국민이 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단지 문을 닫아놓고 폐쇄할 것이 아니라, 다른 대책을 마련하고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
서점에 가고 싶어서 아이들을 집에서 보육하느라 못가는 가정이 많고, 서점에서 다양한 책을 사고 보고 싶어도 경제적 상황으로 매번 사지 못하는 가정이 수없이 많다. 어차피 긴급보육과도 같은 지금, 집에서 아이들과 책을 마음껏 읽히고 읽어주고 책으로 시간을 보내는 값진 시간과 경험으로 대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을 닫아건 대신에 도서관에서 시민들에게 도서관에서 책을 배달해준다고 마음껏 홍보도 하고 마음껏 책을 빌리고 아이들은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금의 상황이 장기전이 되었고 언제 문을 열지 알수 없으며, 학교나 어린이집도 휴원, 휴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이라도 실컷 각 가정으로 충분히 많이 배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도서관. 도서관이 이제는 직접 집으로 찾아와야 할 때다. 책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우리들의 가정에도 살포시 한 권 한권 소복히 쌓여내려앉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