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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기는 처음이라서

그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by 정희정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마 나도 어렸을 적 엄마,아빠가 나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것이다.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흐릿한 느낌과 분위기는 든다. 우리는 읽힘을 듣기만 했지 누군가에게 읽어준 적은 없다. 실과를 배우던 시절 책 읽기 연습을 하면 어떨까 싶다. 체육교과목을 배우던 시절, 바느질하는 방법을 배우고 책 읽어주기를 흉내내 보면 어떨까. 짝꿍에게도 앞자리 뒷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간식만 나눠 먹을게 아니라 책도 나누어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한번도 책 읽어준 적도 없는데 연습해보지 않았는데, 수업시간에 배우지도 않았는데. 해본 적이 없는데. 엄마가 되면 자연스레 책과 친해져야 하는 걸까? 시중에는 1살 부터 단계별, 연령별로 추천도서와 그림책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다. 옹알이를 하고 엄마, 맘마로 시작하는 아이의 언어를 따라흘러 가면 어느덧 아이의 언어성장 발달은 어떤지, 제대로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잘(?) 읽어주고 말상대가 되어주는 지 테스트를 하는 시기가 온다. 멀리 있지도 않다. 길을 가다가도 대형마트에 풍선을 들고 엄마와 아이들을 유혹한다. 평가지를 들고서..


아이는 풍선을 좋아했고 엄마는 아이의 성장이 제대로 되어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의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전화가 걸려오면 받는다. 다른집 아이는 언어가 어떻고 나의 아이는 지금 연령대에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여러곳에서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된다. 이 나이대에는 자연관찰도 필요하고, 수와 관련된 그림책 이야기책이 필요하고요. 아이가 지금 연령대에서는 이 정도 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부족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버퍼링 필터링 없이 듣고 있다. 끈질김에 설득당하고 아이의 발달을 책임지는 부모로서 이러한 부분은 채워줘야 할 것 같아 카드할부를 긁어댄다.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지않을 까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여동생 또한 그럴 것이다. 나는절대, 집에서 나의 원칙에 따라 아이는 이렇게 키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아요. 라고 당당히 말하는 소신있는 홈스쿨링 엄마는 손에 꼽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팔랑귀였고 나의 주관은 그당시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다르지만.


첫아이가 어릴 적, 3~4살 쯤 되었을까? 아이친구 엄마와 강의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엄마와의 소통과 아이와의 교감 대화라는 주제였는데, 엄마의 마음을 우선 열어주는 시간이 나에겐 참 가치있었다. 이래서 강의도 강연도 듣는거구나 싶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강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동화구연을 배웠겠지? 그림책 속에 나오는 동물들 목소리를 흉내를 기가 막히게 잘 내었다. 나는? 나도? 나도 그렇게 배워야 하나? 감칠나게 읽어주어야 할까?


책을 읽어준다는 건 그림책에 나의 목소리를 얹는 것이다. 굳이 애써가며 동화구연 선생님을 따라하듯 배워가면서까지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 나의 경험이고 내가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깨달은 것이다. 물론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책 읽어주는 영상이나 유투브, 동화구연 장면을 보면서 따라하고 익히면 좋다. 하지만 나는 그저 힘을 빼고 그대로 읽어주었다. 재미나는 장면이 나오면 웃기게 읽어주기도 했고 글밥이 많은 날은 힘을 빼가면서 읽어주었다. 아이는 웃기게 읽으면 깔깔깔 좋아했다. 스스럼없이 읽어주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내 목소리만 있으면 되니까

그림책에 살포시 내 목소리를 얹어본다. 둘째 아이에게 파도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철썩철썩도좋다.

글밥이 많지 않은 책이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불가사리도 있다. 귀여운 소라도 보인다. 알록달록 예쁜 색감의 그림들로 가득하다. 가벼운 의성어, 의태어도 나온다. 가볍게 시작한다. 아이가 내 눈을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읽는 부분을 보지 않아도 좋다. 그냥 가볍게 색을 보고 그림을 본다. 아이가 펜을 잡고 있으면 그림책을 내어준다. 슥슥슥 낙서를 하면 그대로 둔다. 이 책은 아이에게 장난감이고 스케치북이다. 아이에게는 놀이도 되고 가벼운 장난감도 된다.

가벼운책을많이접한이후에 글밥이많은책으로 넘어가도된다. 책읽어주기는 생각보다 힘들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렵다기보다 힘들다. 하루에 몇 권씩 정해놓고 읽어주는 건 더 어렵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경험이 있는 부모들은 안다. 책 읽어주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보든 안보든 아이가 책을 고르든 부모가 책을 고르든 책을 읽어주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놀이를 할 때, 밥을 먹다가, 먹은 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하원하고 쉴 때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아이도 쉬고 싶고 놀고 싶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집에 왔는데 또다른 책을 꺼내면 아이는 싫어한다. 나도 싫다.

그런데 유독 집중하는 시간이 있다. 그건 바로 잠자리 드는 시간이다. 잠자리에 눕는 시간이다. 이제 자자~ 불만 딱 끄면 바로 잠드는 아이는 아마 없을 거다. 이때 필요한 아이템이 수면등이다. 수면등을 벽수면등, 벽조명이 제일 좋다. 키티모양, 구름모양, 달모양, 해모양 모두 다 좋다.. 나는 아이가 3~4살 무렵 키티모양의 벽수면등을 샀는데 10살이 된 지금까지도 아주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책을 읽어주려면 은은한 수면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밝은 형광등 조명은 아직 잘 시간이 안 되었음을 의미하고 책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은은한 불빛의 주광색 수면등은 하루의 일과를 차분히 정리하게 도와주고 아이와 함께 이불을 덮고 그림책을 펼치면 아이도 나도 그림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읽어주기의 일등공신이다.


나의 첫 출간책 <책먹는 아이로 키우는 법>에서 다룬 책에는 이런 내용의 구절이 나온다. 아이가 한 살이면 하루에 한권의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세 살이면 세 권의 책을 읽어주라는 문구가 나온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은 일단 하면 되고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시작하고 같은 책을 계속 읽어주고 그러다보면 아이는 또 다른책을 가지고 온다. 읽다보면 내발음이 귀에 들어오고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책을 읽다 보면 발음이교정될 때도 있다. 이쯤되면 이 내용이지 외워지기도한다 나도모르게.지금 첫째아이는 10살이니 10권? 묵묵히 진득하니 무엇이 되었든 아이에게 읽어주었더니 8~9살이 되던 무렵에는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책에서 학습만화, 흥미만화로 넘어가는 단계라 대화도 내용도 많아졌는데, 아이는 어느 순간 혼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소심한 아이였고 가족들에게만 쾌활하고 웃긴 아이였다. 내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어색했다. 학교다닐 때도 그랬고 이후 직장에 다닐때도 그랬다.그랬던 내가 조금씩 내 아이 앞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목소리를 거부감 없이 들어주는 아이가 있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어서 또 고맙다.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남편에게 책 읽어주라는 강요와 부탁에도 남편은 읽어주는 게 어색하고 불편한지 딱 한번 화가난 무뚝뚝한 말투로 읽어주고는 끝이었다. 그림책을 보고 읽어주는 건 누구나가 다 할 수 있고, 또 얼마나 중요하고 지금 이순간 소중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한 번이 어렵지, 또 한 번, 또 한번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책읽어주기라고 생각한다. 피곤하지만 유일하게 아이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잠들기 전 책읽어주는 시간이다. 많이 안아주려고 한다. 잔소리를 많이 하기보단 그림책으로 내 목소리를 더 많이 들려주어야겠다. 아이는 훗날 기억할 거다. 엄마가 나를 안아주고 책읽어주었던 그 때 그 느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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