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규는 사분사분 얘기를 하다가 한동안 말을 안 했다. 나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리는 그 어색한 상황이 불편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시도했다.
“ 흔한 일이야.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그렇게 분위기를 잡고 그래. 최근에 있었던 일만 아니면 영주권 받는데 문제는 없어. 걱정하지 마. 어떤 범죄기록이 언제쯤 있었는지.. 얘기해봐".
나는 다소 과장되다 싶을 정도로 경쾌하게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성매매래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무엇인가 소리를 낼뻔했지만 차마 그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우리 둘 다 침묵했다.
“와이프도 그런 내용이 신원조회 서류에 나오는지 몰랐데요. 그런 서류가 있는지도 몰랐겠죠. 경찰서 가서 그 서류를 발급받았는데 그런 내용이 줄줄 나오니까 겁이 났나 봐요. 나한테 말도 못 하고 이미 결혼식까지 다 마친 상황이었으니 뭘 어쩌지도 못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었는지, 모른 척하고 캐나다로 온 거죠. 아무한테 말도 못 하고 해결 방법도 없고 하니 혼자 속만 썩은 것 같아요. “
이번에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자칫 위로를 한답시고 무슨 말이라도 하게 되면 오히려 분위기가 더 이상 해질 것 같아 입을 닫았다. 속으로는 ‘ 어머머머.. 이를 어째..’ 했던 것 같다.
“제 와이프 불쌍한 여자예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는데 아버지가 변변한 직장도 없이 허송세월 하면서 술 마시고 폭행까지 했데요. 어머니는 자꾸 집 나가서 동생하고 둘이 힘들게 살았나 봐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대요. 남들 다하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부터 식당 술집. 안 해본 일이 없나 봐요.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부모님이 편의점 한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하더라고요. 가장 길게 해 본 아르바이트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면서..”
한숨을 두어 번 쉬던 연규는 한참 동안 창밖의 하늘을 쳐다봤다.
“아는 사람이 소개해서 강남 오피스텔에 성 매매하는데 가서 청소하고 밥도 해주는 일을 했데요. 어느 날 청소를 하려고 기다리는 동안 경찰이 왔데요. 그래서 잡혀갔고... 경찰관이 성 매매했다고 인정하면 봐준다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인정했더니 그렇게 된 거죠. 그것 말고도 한 개가 더 있대요. 마사지 업소에서 마사지만 했는데 그때도 재수 없게 경찰한테 걸렸대요. 그래서 범죄기록 두 개가 신원조회 서류에 있데요. ….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는 기가 막혀서 말을 할 수도 없었어요. 아니 처음에는 성매매가 뭔지 몰라서 무슨 말인가 했어요. 실장님도 아시지만 제가 어릴 때 캐나다에 왔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 못해요. 한국 떠나오던 그 나이에 사용하던 말, 그 수준에서 멈춘 건데 와이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해서 살면서 많이 늘었죠. 그래서 모르는 단어도 많아요. 와이프한테 성매매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을 못하더군요. 그래서 구글링을 해봤어요. 어쨌든, 와이프는 경찰들이 자기들 실적 올리려고 사건을 키웠고 그 함정에 빠진 거라는데.. 그게 말이 되나 싶기도 했어요. 캐나다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잖아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
연규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지만 힘든 얘기를 다 마쳤다는 안도 때문인지 목소리가 차분하고 부드러워졌다.
“ 제가 결혼 전에 한국에 와이프 만나러 갈 때 와이프가 저한테 참 잘해줬어요. 캐나다 이민 와서 지금까지 제가 누구한테 그런 대접받아본 적이 없어요. 캐나다는 인종 차별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여기 사람들 대 놓고 인종 차별 안 해요. 너무 점잖아서 천박하게 인종 차별을 하지는 않죠. 그런데 대놓고 안 한다고 인종 차별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인종 차별이 아니라도 시골이라서 텃세도 있었을 테고.. 어린 나이에 … 백인들만 바글바글한 시골 학교에서 제가 어땠는지 아세요? 외롭다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지금은 우리 동네도 인도 사람, 중동 사람, 중국 사람, 다 이사 와서 살고 있지만 저희가 이사 갔을 때만 해도 백인들만 살았어요. 학교에 가면 유태인이 몇 명 있었지만 걔들도 캐나다에 와서 산지 오래됐으니 백인이나 다름없고 얼굴 노랗고 영어 못하는 애는 저뿐이었어요. 제가 이민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영어도 잘못할 때..
어느 날 목욕하다가.. 때 타월로 살을 박박 밀었던 적이 있어요. 그 이태리타월이라는 거 있잖아요. 엄마가 이민 올 때 캐나다에는 없다면서 잔뜩 사 왔었죠. 핑크색도 있고 연두색도 있고 어떤 건 빨간색도 있고… 그게 색깔은 곱고 이쁜데 꽤 거칠잖아요. 그걸로 피부를 벗겨 내면 나도 친구들처럼 백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힘주어 밀면 따가워요. 며칠 후에 피부에 딱지가 생기더라고요. 딱지가 떨어지면 또 밀고 또 밀고…어느 날 엄마가 눈치를 채고 왜 그러는지 물으셨는데 제가 울면서 백인이 되고 싶다고 그랬나 봐요.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나 때문에 엄마랑 아버지랑 자주 싸웠어요. 엄마가 이러려고 캐나다까지 왔냐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도 여러 번 했는데...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무섭고 싫었어요.
이상한 일이지만 외로워도 캐나다가 더 좋았어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이태리타월을 감춰서 더 이상 때를 밀지는 못했어요. 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었던 것 같아요. … 저 말썽 많이 부린 거 아시죠?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나 모범생들은 저랑 안 놀아 줬는데 그나마 저를 끼워준 애들은... 다 좋은 애들이에요. 다만 시골에서 할 일 없이 심심하니까 몰려다니면서 재밌는 일을 찾아서 놀았을 뿐이에요. 여기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할 일이 없잖아요. 다 컸는데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닐 수도 없고 커뮤니티 센터 같은데 가봐야 시시한 것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애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재미있는 일을 찾은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내 친구들도 나처럼 외로운 애들 아녔을까 싶어요. 큰 도시 가서 살면 덜 외로울 줄 알았어요. 토론토 가서 학교 다니고 일도 하면서 한국인 친구들도 사귀어 봤고 연애도 해봤는데 그래도 항상 외롭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에서 와이프 만나고 난 후에 외롭다는 마음이 사라졌어요. 외롭지 않아서 좋았어요. 결혼 전에도 한국에 있는 와이프 생각하면 기분 좋고 결혼해서 같이 사는 상상하면 행복했어요. 결혼해서 사는 동안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어요. 한 달 전까지는요…”
연규는 잠시 침묵했다가 혼잣말처럼 다시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만날 때마다 저한테 너무 잘 대해 줬어요. 다른 한국 여자들도 만나 봤는데 내가 캐나다 시민권자고 결혼하면 캐나다에 살 거라고 하면 다들 신기해했어요. 나랑 결혼해서 캐나다에 오면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죠. 그래서 한국 여자들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와이프는 다른 여자들하고는 달랐어요. 항상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수수하고 생각도 깊었어요. 제가 먼저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이 여자가 나를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결혼해서 사는 게 목적이지 사랑해서 결혼해야 한다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요. 부모님이 살아보면 다 똑같다고 했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혼 전 와이프를 만나러 한국에 갔는데 돌아오는 날 공항버스 터미널에서 손을 흔들면서 울더라고요. 우는 여자를 혼자 두고 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뭐라고, 헤어 지기 싫어서 우는 여자가 있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비행기에 태워서 같이 오고 싶었어요.
살면서 말썽만 피우고 아무 곳에서도 인정 못 받고 살았는데 제 인생에 처음으로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여자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서둘러 결혼을 했어요. 저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아빠도 좋아하시니까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와이프 범죄 기록 얘기 들으면서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나다에 오고 싶었구나.. 절실했겠구나… 와이프가 성매매를 했다는 것보다 그게 더 힘들었어요. 나를 좋아한 게 아니고 이용했구나 싶어서.. 한동안 미워 죽겠더라고요..... 그런데 너도 외로웠겠구나 싶어서… 또 막 불쌍해지기도 했어요..”
연규는 남의 얘기하듯 담담했다. 이민 수속 대행 업무를 20년 가까이하는 동안 가장 안타깝지만 당황스럽기도 하고 난감하면서도 슬픈 순간이었다.
“실장님.. 저는.. 와이프가 캐나다 영주권은 받게 해주고 싶어요. 어차피 결혼하기 전 일이고 누구나 이 사람 저 사람 연애하다가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서 결혼하잖아요. 캐나다 애들은 동거하고 애 낳고 살다가 다른 사람 만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또 살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거랑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오히려 옛날에 만났던 사람 마음속에 두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저도 결혼 전에 안 해본 짓 없이 다 해봤으니 와이프 보고 죄가 있느니 없느니 말할 자격도 없어요. 어쩌면 와이프가 한국 경찰 함정에 빠졌다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이 아니고, 진짜 그랬을 거예요. 와이프 말이 한국은 그런 면에서는 아직 후진국이래요. 요즘 한국 뉴스 보면 공무원이 돈 받고 일 봐주고 경찰들도 죄 없는 사람들 죄 뒤집어 씌우는 일이 허다하잖아요. 와이프도 그런데 걸린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럴 거야!’
“여전히 와이프는 저한테 잘해요. 지은 죄가 있다고 생각해서 절절매는 것 일수도 있어요. 그러지 말라고 해도 계속 절절매는 것처럼 보여요. 그게 더 싫어서 화가 나기도 하는데 화를 못 내겠어요. 제가 화를 내면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닌가 하고 속상해할까 봐 화를 못 내겠어요. 저도 잘난 것 없고 외로운 사람끼리 만났으니 서로 외롭지 않게 위로하면서 살면 되잖아요?”
담담하게 얘기하던 연규가 한참 동안 침묵했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이 상황 모르세요. 우리가 둘 다 게을러서 영주권 수속을 서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이 상황을 알면 부모님들은 당장 이혼하라고 하실지도 몰라요. 아휴, 한국 부모님...”
연규는 잠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창박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국 부모님’ 몸은 캐나다에 살고 있으면서 고지식하고 꽉 막힌 부모님이 답답했을까.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이민자 가정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연규는 모르나 보다. “이 나이 먹어보니 부모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 하고 꼰대처럼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제 부모님인데 그동안 부모님 속 그만큼 썩였으면 됐어요. 더 이상 부모님 속 썩이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은 모르셨으면 좋겠어요. 제 와이프를 한국으로 보내기 싫어요. 나중에 이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와이프가 캐나다에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어떤 마음으로 저랑 결혼을 했든 저를 따라서 여기까지 온 여자예요. 최근에 배우자 초청 영주권 승인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범죄가 있는 경우는 복권 신청도 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일반적인 케이스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범죄기록 있으면 영주권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캐나다는 성매매 한 사람 중에 성을 산사람은 범죄자지만 성을 판 사람은 범죄가 아니라더군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인정해서라고… 그러니 제 와이프는 영주권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맞나요?”
연규는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 와이프 영주권 받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부모님들이 왜 다른 사람들보다 영주권 수속이 늦어지는지 물어보시면 실장님이 알아서 핑계 좀 대주세요. 와이프가 영주권을 받을 수 없게 되면.. 그때도 실장님이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설명해주세요. …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영주권을 받게 해주고 싶지만 어느 날 갑자기 와이프랑 헤어지겠다고 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마음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와이프가 영주권은 받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마음이 바뀌더라도 실장님은 제 와이프를 도와주세요. 착한 여자예요. 제가 살면서 행복했던 기억은 대부분 그 여자랑 같이 했던 순간이었고 제가 이 여자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 때문에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제가 이 여자 말고 다른 사람 때문에 이렇게 가슴 아픈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없더라고요. 지금은 화도 나지만 가슴이 아파요. 그러니까 실장님이 이 여자 좀 도와주세요. ” 열서너 살 때 몇 번 만난 기억이 전부인 숫기 없던 연규가 서른셋 어른이 되어 나에게 어른으로서 약속을 요구했다. 그렇게 연규는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고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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