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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 혜진 Jan 09. 2019

3-4.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경찰서에서 발급하는 실효형 포함된 신원조회와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 본인이 직접 작성한 사건에 대한 진술서를 제출해야 한다. 진술서는 사실에 입각해서 이민관이 이해하기 쉽도록 작성할 것.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핑계를 댄다거나 공공기관의 결정 및 판결 사항을 부정하는 내용은 삼갈 것. 가능하면 사실대로 솔직하게 반성문이라고 생각하고 작성하는 것이 좋음. 


이것이 진술서를 작성할 때 참고할 사항이라고 안내했다. 연규는 그날 단 한 번도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 후로 사무실에 오지도 않았다. 요청하는 서류는 이메일과 우편으로 보내왔다.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연규와 통화를 했을 뿐이다. 진술서와 관련된 안내를 위해서 연규 배우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녀가 보내온 검찰의 수사 기록과 판결문은 적나라했다. 전화 넘어 그녀의 목소리는 나이에 비해서 어른스럽고 차분했다.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서둘지 않고 천천히  간혹 한숨도 쉬고 잠시 침묵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실장님에 대한 얘기는 아버님께 먼저 들었어요. 아버님이 실장님께 영주권 수속을 의뢰하라고 하셔서 연규 씨도 실장님께 갔던 것 같아요. 이런 일을 하게 해서 죄송해요. 연규 씨가 실장님 믿고 다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진술서라는 것을 써야 한다고요. 써야 한다면 써야죠.  그런데 뭐라고 쓸까요? “


차분하게 연규에게 안내했던 내용을 되풀이해 안내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반성문 쓰듯이…” 그녀가 내 말을 가로채서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실장님, 연규 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한국말도 어눌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연규 씨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제가 캐나다로 와야 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 게 가장 좋기도 했어요. 엄마 아버지 그 동네 그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날 수 있고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고 "   

연규의 아내는 ‘그렇게’에 살짝 힘을 주어 말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이었을까.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까.   


“ 연규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미 연규 씨를 좋아하게 됐어요. 저를 그곳에서 구출해줄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요. 저라고 그런 일이 좋아서 했겠어요. 가난한 집 자식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예요. 공부를 잘하거나 뭔가 특출한 능력이 있어서 출세해서 ‘그곳’을 탈출하거나 아니면 일단 도망가고 봐야 하는데 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버텼어요. 


저도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한건 아니에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식당 설거지도 해보고 전단지도 돌려봤어요. 그런데 돈 되는 일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딱히 재능이 있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몸이 튼튼해서 막노동을 할만한 체력도 아니고... 그러다가 아는 분 통해서 마사지 업소를 돌면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주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게 시작이었죠.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순간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또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진술서에는 제가 연규 씨한테 얘기한 것처럼 경찰들이 실적 때문에 일을 꾸민 거라고 쓸 거예요. 실장님은 캐나다에서는 몸 파는 일은 범죄가 아니니 거짓말해서 문제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실대로 솔직하게 쓰는 게 좋고 내 불우했던 과거 ,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선처를 바란다고 쓰는 것이 이민관을 설득하기 좋다고 하셨지만 …. 연규 씨에게 그럴 수가 없어요. 


연규 씨가 저를 한국으로부터 구해줬으니 의리는 지켜야죠. 제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알게 되면 연규 씨가 얼마나 괴롭겠어요. 처음에는 캐나다 영주권만 받으면 연규 씨랑 헤어질까도 생각했어요. 평생 약점 잡힌 사람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이제 영주권 못 받아도 괜찮아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돼요. 그것도 제 팔자죠. 대신 연규 씨가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연규 씨가 절 버리면 그때 떠날 거예요. 제가 먼저 떠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진술서를 실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안 써도 이해해주세요. 제가 이런 얘기를 다 하는 것은 제가 쓴 진술서를 보고 나서 다시 써오라고 하거나 다른  요구하지 않고 넘어가 달라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처음에는 실장님께도 연규 씨에게 말한 것처럼 똑같이 얘기하고 우겨볼까 생각해봤지만  솔직하게 얘기하고 부탁드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 이번 일은 신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시부모님 따라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제 진심을 하나님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실장님 부탁드릴게요."   


작정한 듯 ‘부탁’을 하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볼 수 없더라도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진술서에는 나쁜 경찰들의 함정에 빠져 하지도 않은 성매매를 했다고 억지 자백을 한 불쌍하고 어리숙한 여자의 얘기가 있었다. 성매매 업소의 청소와 빨랫감을 수거해서 빨래하고  돌려주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빨랫감을 가지러 갔을 때 사장이 다른 아가씨가 오기 전까지 잠시 손님방에 들어가서 대화 상대가 되어주라는 말을 듣고 손님방에 들어갔다. 그때 경찰이 들이닥쳤고 본인은 업소 사장과 경찰의 편의에 의해서 매춘부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경찰이 “매춘했다고 하면 풀어 주겠다”라는 제안을 했고 한시라도 빨리 경찰서를 나가고 싶은 마음에 경찰의 제안대로 진술했다. 그러니 나는 억울하다.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연규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캐나다가 얼마나 환상적인 나라인지 이웃 사람들은 영어도 못하는 자신에게 얼마나 천사같이 친절한지 그래서 캐나다에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 캐나다에서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여자의 얘기가  A4 종이로 여섯 장이나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어쭙잖은 번역으로 다 전달되지 않을 만큼 절절했다. 그녀의 진술서를 보면서 고민을 했다. 한국 경찰이 실적 때문에 죄 없는 무고한 시민에게 누명을 씌웠다니, 캐나다 이민관이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경제대국이며 밤늦게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치안이 훌륭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겉으로 보이는 한국의 모습과 이 사건을 이민관이 잘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 거짓 진술로 판단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연규 아내의 기도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래. 믿어보자. 


구구절절한 그녀의 진술서를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고 그녀의 억울한 사연에 약간의 ‘양념’을 쳤다.  그리고 평소에 하지 않는 기도를 간절히 했다. 내 기도와 연규 와이프의 기도를 같은 분이 듣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기도가 그분께 전달되었는지 사면 복권은 무사히 통과되었고 시간이 흘러 영주권 서류 심사도 마무리되었다. 김동현 씨는  며느리의 영주권 수속이 예상보다  늦어진  것이 장실장의 실력 부족이나 게으름 탓은 아닌지 원망 섞인 전화를 몇 번 했다. 그래도 오픈 워크 퍼밋을 받아준 덕에 영주권 없이도 OHIP(온타리오주 의료 보험, 캐나다의 대부분의 주는 병원비를 내지 않는다. )으로 병원비 걱정 없이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며 감사를 겸한 자랑도 늘어놓았다.     


“ 한시름 놨네. 며늘애가 뭐든지 잘하고 이뻐요. 자식보다 손자가 이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내 자식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이뻐할 겨를이 없었는데 손녀는 얼마나 이쁜지.. 장실장도 얼른 애들 결혼시켜서 손자 봐. “    


김동현 씨는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며느리와 손녀 자랑을 했다. 연규 부부가 사이는 좋은지 넌지시 물었더니 연규가 마누라 복은 있는지 며느리가 연규한테 지극정성이다. 연규도 마음 잡고 잘 산다고 했다. 다행이다. 나는 연규와 약속을 지켰다. 연규가 어릴 때 이민 동기 가족 모임에서 저보다 한참 어린 우리 아이들을 살갑게 돌봐주고  같이 놀아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쳐두자.  드디어 요식 행위나 다름없는 이민국 인터뷰 요청 이메일을 받았다.  연규 아버지 김동현 씨 부부는 아들 부부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처럼 ‘연금이나 타 먹으면서’ 따뜻한 플로리다로 쉬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김연규 부부의 서류 번역을 했던 젊은 직원이 김연규 배우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김연규를 사랑했을까 하는 질문을 내놓았다. 나는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사랑이 뭘까? 당사자가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이겠지.  사랑이 아니면 아닌 대로  서로 위로하면서 살면 되고 그러다 보면 사랑도 하겠지. 강도나 테러리스트였다면 우리가 그 사랑을 의심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매춘부의 사랑도 사랑일 거야. 더 절실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겠지. 그래도 너무 힘들게 지키려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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