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백방으로 아가씨 찾아서 헤맸는데 캐나다에는 없더라고. 아가씨들이 여기 온 지 오래됐으면 여기 식으로 다 변해서 한국 여자 같지 않고 온 지 얼마 안 된 아가씨들은 또 우리 연규 같은 놈 싫다고 하고 시골구석에서 컨비니언스나 하고 살기는 싫다더군. 그래서 결국 연규가 한국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연애를 했어요. 내가 나가는 교회 집사님이 소개를 했는데.. 애가 이뻐, “
김동현 씨는 본인이 연애라도 하는 듯 쑥스러워했다. '며느리 될 아이'는 한국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밝고 생활력도 강해서 자기가 돈 벌어서 전문대학을 나왔다. 연규가 여러 번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연애를 했는데 한국말을 잘 못하던 녀석이 그 애를 만난 후로 한국 드라마 보면서 한국말을 공부했다. 제법 한국 사람 말하는 것 같이 한다. 며느리 될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연규가 영어를 잘하니까 별문제 없을 거 같고 그래도 시골 동네 들어와서 살아 준다니까 고맙고 하루라도 빨리 데리고 오려고 서둘고 있다며 기분 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에 나가서 결혼식 하고 며느리 데리고 들어올 건데 영주권 수속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한국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 서류랑 여기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뭔지 알려줘. 한국 갔다 오면서 떼 가지고 올 테니까. 영주권 받아야 OHIP(온타리오주 건강 보험)도 될 테고 그래야 병원비 걱정 안 하고 애 갖지. 연규가 벌써 서른 살이 넘었어. 애 낳아야 연규도 맘 잡고 살지.”
김동현 씨 부탁을 무시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김동현 씨가 묻는 것에 자세하게 답변을 해줬다. 결혼식 사진을 비롯해서 필요한 동사무소 서류 목록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어디 가서 어떻게 발급받는지 설명했다. 서류 준비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토론토에 있는 영사관에 가서 신청하면 토론토에서도 모두 발급받을 수 있다. 다만 이왕에 한국에서 발급받아 오는 것이니 며느리 될 사람 <범죄기록 자료 회보서, 실효된 형 포함>으로 발급받아 오면 편하다. 경찰서에 본인이 직접 가야 한다.
“알았어요. 그래도 알던 사람이 좋긴 좋네. 이렇게 돈 한 푼 안 받고 자세하게 설명 다해주고. 그러니까.. 동사무소 가서 며늘애 기본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혼인관계 증명서 갖고 오라는 말이죠? 혼인관계 증명서에는 연규랑 혼인 신고해서 부부라는 내용이 나와야겠네?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사돈들 이름이랑 연규 이름이 나온다는 얘기고. 결혼식 하고 찍은 사진 같은.. 결혼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신원조회? 범죄기록 회보서? 경찰서 가서 발급받으라고? 실효형 포함?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효형 포함으로 발급받으라는 얘기고.. 이건 무조건 경찰서에 본인이 가야 발급해준다는 거죠? 알았어요. 연규 서류는 수입 증빙도 해야 한다는 거죠? 작년에 세금 보고는 했어요. 한국 가서 결혼식 하고 서류 떼서 연규랑 며느리를 사무실로 보낼 테니 영주권 신청 서둘러줘요. “
꼼꼼하게 서류 목록을 되짚는 김동현 씨 목소리에 활기가 있어 듣기 좋았다. 어릴 때 몇 번 본 적 있는 연규. 말썽 부리던 얘기만 들어서 그런지 절대로 어른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아이가 다 자라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김동현 씨가 그렇게 자랑을 늘어놓던 신부를 데리고 내 사무실에 오겠거니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했던 날짜보다 한참 지나고 겨울이 올 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연규가 어릴 때 몇 번 봤던 나에게 본인 배우자의 영주권 수속을 맡긴다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대행사를 찾아갔으려나? 궁금한 마음에 김동현 씨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올 때 되면 오겠지 안 오면 말고..
어느 날 갑자기 전화도 없이 연규가 왔다. 연규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었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급하게 혼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숫기 없는 아이였으니 오랜만에 만난 아줌마와 마주 앉아 실장님이라 부르기 쑥스러워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제가 서둘러 영주권 수속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재촉을 하실 테고.... 다른 데 가서 수속을 맡길까 생각도 했지만.. 아버지가 왜 실장님한테 부탁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어서 차라리 실장님께 모든 걸 솔직하게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왔어요. 지금 제 상황이 누군가를 믿기 힘들어요. 실장님이 아버지랑 아는 사이고 제가 어릴 때 본 적이 있는 분이라서 더 부담스럽기는 해도 그만큼 제 상황을 이해하고 잘 도와주실 것 같아서 왔어요. 왜 결혼식 마치고 곧바로 오지 않았는지 궁금하셨죠…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아버지랑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주신다고 약속해주세요. “
연규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고 침울했기 때문에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심각한 일이 있구나.
“제가 어떻게 와이프를 만났는지는 아버지한테 들으셨죠? 올봄에 한국 가서 결혼식을 했어요. 신혼여행 다녀오고 캐나다로 돌아올 때쯤 서류 리스트를 와이프한테 줬어요. 서류를 다 준비했다고 해서 비행기 타고 왔죠. 제가 그때 서류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캐나다 와서 와이프한테 서류 달라고 했어요. 실장님께 같이 오려고 했죠. 그런데 다른 건 다 있는데 신원조회 서류가 없는 거예요. 왜 없는지 물었더니.. 깜박했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서류는 본인이 직접 경찰서 가야 한다는 얘기를 아버지가 하셨던 게 생각났어요.
비행기 타고 한국에 다녀오기도 어렵고 어째야 하나 하고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지났어요. 그때는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아기 가지려면 OHIP 이 필요하다고 서둘라고 했지만 저도 그렇고 와이프도 그렇고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서 자꾸 미뤘어요. 영사관에 가서 위임장 써서 한국으로 보내면 다른 사람이 그 위임장 가지고 경찰서 가서 대신 신원조회 발급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와이프한테 얘기하고 위임장 써서 한국에 보내라고 했어요. 근데 자꾸 한국에 위임장 받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장모님이나 와이프 동생에게 부탁하면 될 텐데 자꾸 싫다는 거예요. 처음엔 한국의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 부탁을 하기 싫은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서류를 발급받아 여기까지 보내주는 회사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와이프한테 얘기했더니 비용이 비싸다는 둥.. 자꾸 이해가 안 되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눈치가 이상해서 추궁을 했더니 결국 털어놨어요. … 범죄기록이 있데요. 그것도 두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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