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베나레스라는 나라에 한 노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의 집 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하루는 다른 집에 물을 길어다 주고 반 페니(페니는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의 돈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돈을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성벽의 기왓장 아래 틈에다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는 성의 북문 근처에 살면서 남문 인근에 살고 있는 한 가난한 여인과 가끔 어울리곤 했습니다.
하루는 그 여인이 노동자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시내에서 축제가 열려요. 당신이 돈만 있다면 가서 즐길 수 있을 텐데."
"돈이야 있지."
노동자가 말했습니다.
"얼마 나요?"
"반 페니."
"어디 있어요?"
"여기서 열두 요자나(약 19km) 떨어진 북쪽 성벽의 한 기왓장 밑에 나의 전재산이 있지.
당신도 혹시 돈이 있소?"
"있고 말고요."
여인이 말했습니다.
"얼마나?"
"반 페니"
"그렇다면 당신의 반 페니와 내 반 페니를 합치면 우리는 한 페니를 가졌구려.
한 페니면 화환도 사고, 향수도 사고, 술도 마시고, 오락도 즐길 수 있겠소."
"어서 가서 그 반 페니를 가져오세요"
여인이 재촉했습니다.
"걱정 마시오. 내가 서둘러 가서 가져 오리다."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신바람이 나서 자기 보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의 가슴은 여자와 즐길 생각으로 마냥 부풀어 있었습니다.
때는 한여름이었습니다.
대낮의 대지는 뜨겁게 달구어져 그가 디디고 가는 길바닥은
마치 이글거리는 석탄불을 깔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코끼리처럼 튼튼한 그 노동자는 여섯 요자나를 단숨에 걸어서
어느새 왕의 궁성 옆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종려나무 잎을 둘둘 말아 장식으로 귀에 꽂고
넝마처럼 해어진 더러운 옷을 입고
음탕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뜨거운 지옥불 같은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베나레스는 우다야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는 무척 자비롭고 백성에 대한 연민이 큰 군주였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람을 쐬고 있던 우다야 왕의 눈에 이 노동자의 모습이 띄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급하게 걸어가는 것일까.'
궁금해진 왕은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물었습니다.
"대지는 활활 불타는 석탄으로 변하고 땅바닥은 불붙은 숯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너는 음탕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고 있다.
너는 뜨거운 열기가 아랑곳없다는 말이냐?
도대체 이 열기가 너를 태우지 않는다는 말이냐?"
"예 전하. 열기 따위는 저를 태울 수 없습니다.
욕망이 저를 태웁니다.
열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 그것들이 저를 태웁니다.
바깥 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자기가 길을 가는 이유를 알려 주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 여자가 저를 이 길로 내 보내며 한 말,
'가서 반 페니를 가져와요. 그래서 우리 둘이 즐깁시다'라는 말이
저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말을 되새길수록 욕정의 불이 저를 태웁니다.
돈을 가져가면 그녀와 즐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저를 흐뭇하게 하여 노래가 절로 나온 것이옵니다."
"네가 북문에 감춰두었다는 보물은 한 라크(십만 페니)쯤 되느냐?"
"아닙니다. 전하."
"그럼 반 라크 정도 된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전하."
이렇게 묻고 또 물어서
마침내 그 사내의 보물이 겨우 반 페니라는 것을 알게 된 왕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 이 사람아. 이렇게 더운데 거기까지 갈 것 없네. 내가 반 페니를 주지."
그러나 사내는 왕이 주는 반 페니와 자신이 성벽에 숨겨 놓은 반 페니를 모두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우다야 왕은 사내의 걸음을 멈춰주려고 점점 금액을 올렸습니다.
왕이 주겠다는 돈이 무려 1크로아(1천만 페니)에 이르렀는데도
그는 여전히 반 페니를 가지러 가는 걸음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왕은 노동자에게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 노동자는 반 페니를 가지러 북문으로 가는 길을 멈추기로 동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나레스를 반으로 나눌 때에도 그는 반 페니를 감추어 둔 북쪽 땅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노동자는 '반 페니 임금'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두 임금이 아름다운 공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한참을 즐기다가 우다야 왕은 '반 페니 왕'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우다야 왕의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며 '반 페니 왕'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우다야 왕을 죽이고 베나레스 전체의 왕이 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자 금방 자책감이 '반 페니 왕'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다야 왕을 깨워 방금 자신의 마음을 스쳐간 불측한 생각을 고백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우다야 왕은 '반 페니 왕'에게 베나레스 전체를 주고
자신은 '반 페니 왕'의 부왕副王이 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반 페니 왕'이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왕국이 소용없습니다.
전하, 전하의 왕국을 도로 거두십시오.
저는 출가하겠습니다.
저는 욕망의 뿌리를 보았습니다.
그 뿌리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세속의 욕망은 자라납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욕망에 찬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읊었습니다.
"욕망이여, 나는 그대의 뿌리를 보았노라.
그대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제 나는 그대에게 생각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대도 내 속에 자리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욕망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큰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리석고 쓸데없는 욕망을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반 페니 왕'이 되었던 노동자는 속세를 버리고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이 우화는 불교의 옛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우다야 왕'은 전생의 석가모니이고 '반 페니 왕'은 전생의 아난다 존자(석가모니의 수제자)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