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케시
쇼핑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어제 아주 큰 다짐과 기쁜 마음으로 구매한 요가매트와 바지를 시험해 봤다. 코르크 재질이라 매우 가볍고 폭신하고 안 미끄러짐. 구부러진 부분이 평평하게 펴지지 않는 게 단점이지만 얇고 가벼워 아주 마음에 든다. 아침 스트레칭은 역시나 에너지를 주지만 지난 며칠간의 피로를 풀기에는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래도 하루정도는 그냥 푹 쉬어야겠다.
리시케시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빨간색 지역 Tapovan, 노란색 지역 Upper Tapovan, 파란색과 빨간색 사이 강 주변 지역 Laxman Jhula. 모레부터 지내게 될 요가원은 숙소에서 타포반 지역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야 나오는 라슈만줄라지역에 있다. 오늘은 산책 삼아 요가원에 가서 잔금을 치르고 근처 구경을 다녀오기로 했다.
힘겨운 몸으로 더위를 뚫고 강가에 다다랐는데…… 웬걸 다리가 공사 중이다. 구글맵에서 자꾸 돌아가라고 한 게 이래서 그랬구나. 공사인부에게 물어보자 ‘아래로 100m 걸어가서 보트를 타고 건너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채은이는 위험할 것 같다며 다음에 릭샤를 타고 다녀오자 한다. 오케이. 옆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고 서점을 구경했다.
한 무리의 검은 소가 지나간다. 옆에 있던 남자는 어떤 이름인 듯 한 말로 소를 불러 세운다. 무리에서 제일 선두에 있던 소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멈춰서 남자의 손길을 받는다. 남자가 말하길 동네에서 자주 인사하는 친구란다. 항상 여자친구랑 같이 다닌다고. 귀엽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똥을 주의해야 하는 건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오늘도 끝나지 않는 쇼핑시간. 채은이는 전통의상 Sari(사리)를 구매하고 싶어 한다. 5m 정도 되는 크고 두꺼운 천을 이리저리 휘감아 입고 다니는 인도 전통의상인데 거리에 아주머니들 중 대부분은 이걸 입고 다닌다. 사진 속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는 여성분은 직원이 아니고 지나가던 행인이다. 남자사장님이 모양을 잘 못 만들어주자 답답했는지 들어와서 도와준다.
사진에 보이는 당나귀는 사실 송아지다. 자연스럽게 가게로 들어오더니 사장님이 구석에 모셔둔 짜파띠를 받아먹는다. 두어 개 챙겨 먹더니 사장님의 따귀를 한방 맞고 다른 가게로 쫓겨난다. 온도차이 너무 심해.
나도 가방을 하나 더 구매했다. 다이소에서 산 5000원짜리 접이식 가방은 끈이 불편하고 의상과 어울리지 않아 처리하려던 찰나 인상 좋은 가게 주인에게 선물했다(?). 작은 가게니까 흥정하지 말아 달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정가로 선물용 가방까지 몇 개 샀는데, 가방 교환을 빌미로 흥정을 좀 할 걸 그랬다. 채은이는 100년도 넘은 빈티지 천을 몇 개 구매했다.
탈리(Thali). 우리나라로 치면 정식 같은 개념인데 가게마다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보통 짜파띠 두장에 밥, 달(Dal 콩 스튜)과 소스하나, 채소요리 하나, 요거트가 나온다. 짜파띠는 가게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직접 구워내는 것이 재미있다.
수상하디 수상한 초록의 괴수는 팔락 빠니르(Palak Paneer- 시금치 치즈커드)라는 음식이다. 한국에 있는 인도식당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이지만 본토의 그것은 더욱 수상하고 축축한 질감을 갖는다. 맛은 한국의 팔락 빠니르에 비해 더 시금치 같고 달지 않고 약간 싱겁다. 탈리가 김치찌개정식이라면 단품커리는 김치찌개전골이다. 두 명이 배부르게 먹을 만큼 나오고 공깃밥은 따로 받는다. 여기 시금치커리는 굉장히 맛있는 편이다. 삭삭 긁어먹음.
벨 뿌리(Bhel Puri). 지난 편에 언급한 빠니 뿌리와 같은 뿌리가족 중 하나다. 다른 뿌리들은 딱딱한 과자에 소스나 요거트를 채운 핑거푸드인데 반해 벨 뿌리는 토마토, 양파, 고수와 작은 과자들을 시즈닝에 버무려먹는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 재료를 푹푹 떠 넣고 현란하게 흔들어 섞은 뒤 박스를 접어 만든 숟가락을 함께 준다. 예상외로 짭쪼롬하고 굉장히 맛있음. 인도 거리음식은 위생만 허락된다면 매 끼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강가까지 내려왔다. 사진에 보이는 지역이 강 건너 락슈만줄라, 모레 들어가게 될 지역이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려던 참에 아까 공사장 인부가 언급한 보트가 보인다. 예상보다 견고한 배를 보고 건너가기로 결정했다.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들어찬 배 한대가 바쁘게 강을 오간다. 1인당 40루피(=640원)에 표를 구매하고 20분 정도를 기다려 배에 올랐다. 오다가다 가게 문 앞에 고추 몇 개와 레몬을 엮어 줄에 매달아 놓은 것을 많이 봤는데 이 배에도 걸려있네. 후에 야채가게 사장님한테 여쭤보니 ‘악운을 피하는 부적’이라 설명해 줬다. 매주 토요일에 새로 달고 항상 고추 7개와 레몬 한 개를 이용한다고 한다. 개수에 대한 의미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물어봐야겠다. 나와 채은이는 이번주 토요일에 재료를 사 와 하나 만들어볼 생각이다. 인도의 레몬은 라임이나 깔라만시처럼 아주 작고 푸른 모습을 보인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넜을 때 우리는 이미 지쳐있었다. 여기에 또 멈추지 않는 쇼핑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것 같다. 산간지역이라 델리에 비해 조금 선선하다 해도 여전히 섭씨 35도의 땡볕더위. 습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다.
구경을 다닌 가게마다 천이며 나무수저며 모두 먼지가 가득히 쌓여있었는데 한편으로 신기했다. 이렇게 잔뜩 쌓아두고 몇 십 년씩 장사하면 한국에선 진작에 곰팡이에게 모두 습격당했을 텐데… 공기 중에 물이 없는 이곳의 건조하고 더운 날씨는 물건의 수명을 늘려준다. 먼지만 조금 털어내고 녹만 제거하면 100년 된 가방도 사용 가능하다.
요가원에 들러 매니저에게 인사하고 남은 금액을 전달하고는 바로 타포반지역으로 넘어왔다.
더위를 한 김 식히고 오는 길에 산 수분 가득 오이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가져온 고추장. 껍질이 단단해 깎아 먹었다. 조만간 과도를 하나 구매해야겠다. 아삭아삭.
그대로 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