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1 타켁으로 가는 16시간의 버스 여행
오늘 낮 12시에 타켁으로 출발한다. 방비엥에서 밴을 타고 비엔티안으로 간 후 그곳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고 11시간 정도를 달려 밤 2시경에 타켁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숙소는 일부러 예약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예약한 숙소로 찾아가기보다는 정거장에서 가까운 숙소에 머무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제 숙소 직원에게 타켁까지의 차비를 주고는 구두로 여행 스케줄을 들었을 뿐 차표는 물론 확인 서류 한 장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뭔가 확인서 같은 것을 하나 써 달라고 하여 받았다. 12시 조금 넘어 툭툭이 픽업을 와 타고 비엔티안행 밴이 출발하는 곳으로 갔다. 이번에는 제일 좋은 자리인 운전수 바로 뒷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조금 넘게 달려 비엔티안으로 들어왔다. 운전수가 좁은 길에 차를 세우니 사람들은 내릴 준비를 한다. 운전수도 내린다. 여긴 항상 이런 식이다. 종점에 도착했는지, 아니면 어디 가는 사람 내리라든지 하는 아무 말도 없이 운전사는 그냥 차를 세우고는 내려버린다. 그리고 차뒤 트렁크에 실은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아마 이 차 승객 가운데 타켁에 가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일 것이다. 다른 승객에 의지할 수 없고, 나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짐을 내리고 있는 기사에게 나는 타켁으로 간다고 했더니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운전사는 내 배낭을 둘러메더니 따라오라면서 앞서 걸어간다. 골목길을 몇 번 돌아서는 앞에 보이는 작은 호텔을 가리키면서 그리로 가라 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가버린다. 황당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호텔로 가서 직원에게 타켁으로 간다고 하니 표를 보자고 한다. 방비엥 호텔에서 받은 쪽지를 보여 주니 타켁행 버스는 오후 6시에 출발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뭔가 엉성해 보이는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신기하단 생각도 든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이곳은 메콩강 옆에 있는 여행자 거리인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메콩강으로 가 보았다. 불과 2~3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거리지만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쬐니 걷기가 쉽지 않다. 이제야 열대의 나라에 온 실감이 난다.
메콩강 옆에는 매일 거대한 야시장이 선다. 지금은 한낮이리 빈 가판대만이 널려있을 뿐이다. 이곳은 작년에 온 적이 있다. 메콩강 제방 위로 올라갔다. 눈앞에 드넓은 잡초의 벌판이 펼쳐진다. 작년에는 제방 근처까지 물이 출렁거렸는데, 물이 많이 줄은 것 같다. 잡초의 벌판 까마득한 저쪽 끝에 가는 물줄기가 보일 뿐이다. 이곳의 강폭은 수 킬로미터는 될 것 같다.
햇빛이 너무 따가워 걸어 다니기가 힘들다. 다시 호텔 쪽으로 오다 보니 길 오른쪽에 큰 절이 보인다. 들어가 보았다. 상당히 큰 규모의 절로서, 전각들이 황금색으로 번쩍인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모두 불교국가이지만 라오스는 특히 절이 많은 것 같다. 대도시에는 거리 구석구석에 절이 있으며, 아무리 작은 시골 마을에 가더라도 절은 반드시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갔던 무앙응오이에도 작은 절이 있었다.
6시 가까이 되자 밴이 픽업을 왔다. 나를 포함해 10여 명의 사람이 밴을 탔다. 동양인은 나뿐이다. 밴은 우리를 비엔티엔 버스터미널로 데려간다. 가는 도중 프랑스의 개선문을 닮은 큰 문이 보인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로서 비엔티안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맞이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 프랑스의 건축물을 모방하였다니 좀 아이러니한 생각도 든다. 프랑스 개선문의 크기에 근접할 정도로 상당히 규모가 크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운전수는 우리를 데리고 매표소로 들어가더니 표를 끊어 나누어 주고는 가버린다. 상당히 큰 터미널이다. 버스 발차 홈이 40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버스는 오후 8시에 출발하며,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내일 새벽 4시경에 도착할 텐데 숙소를 쉽게 잡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7시가 좀 지나서부터 버스 탑승을 허용하였다. 보통 슬리핑 버스는 좌석이 2층으로 되어있는데 이 버스는 구조 자체가 2층 버스로 되어있다. 그래서 좌석의 높이에 상당한 여유가 있다. 낮아서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는 다른 슬리핑 버스에 비해서는 확실히 낫다. 그런데 맙소사!! 좌석이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두 개씩 있는데, 그 두 개의 좌석이 한 공간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트윈 배드가 아니라 "더블 배드"라는 말이다. 모르는 그 누구와 더블 배드에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8시간 버스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문 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다른 자리는 속속 차는데, 내 옆자리에는 누구도 오지 않는다.
"그래, 제발 아무도 오지 말아라. 혼자서 넓은 자리 차지하고 편하게 가자!!"
만약 누가 온다면 몸집이 작은 라오스 여자나 아니면 금발의 서양 미녀가 와도 좋다. 덩치 작은 라오스 청년도 괜찮다. 최악은 스킨 헤드에 문신을 한 거구의 서양 중년 남자이다. 출발 5분 전까지 자리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정말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가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웬걸 키 큰 백인 청년이 버스에 오르더니 내 옆자리로 와 눕는다. 최악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이 청년과 8시간을 함께 누워 여행을 해야 한다.
나는 몸이 닿지 않도록 가능한 한 창문 쪽으로 몸을 붙였다. 그 청년도 최대한 왼쪽으로 몸을 붙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행히 서로의 몸이 닿는 일은 없었지만, 나나 그 둘 모두 편치 않은 자리였다. 라오스 버스를 타다 보면 제일 화나는 일이 휴게소에 들르지 않는 일이다. 거의 10시간을 달리면서도 승객들이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지 않는다. 기사들은 중간중간에 손님들이 타고 내릴 때 용변을 본다. 그런데 그때 승객들도 내려 용변을 보려 하면 내리지 못하도록 한사코 막는다. 이 버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버스들이 모두 그렇다.
중간에 소변을 보려고 내리려고 하니 못 내리게 한다. 화가 치밀어 그러면 버스 안에서 그냥 소변을 보겠다고 하니 그제야 내리도록 한다. 태블릿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졸리면 조금씩 잠을 자다 보니까 타켁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 내리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숙소를 찾아야 한다. 터미널 옆은 큰 전통시장인데 아직 시간이 일러 열지는 않았다. 주위에 호텔이라 이름 붙은 제법 큰 숙소를 하나 발견하였다.
그래 이곳에 들어가 샤워도 하고 잠시 눈도 붙이자. 밖에서 보니 제법 그럴듯한 건물이었으나, 막상 안에 들어가니 냄새도 나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