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3a) 배낭 하나 메고 또다시 동남아로
새벽 4시가 넘어 잠든 탓에 잠을 깨니 10시 가까이 되었다.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데 일어나기가 싫다. 침대에서 뒹굴다가 11시가 넘어 식사를 하러 나왔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 무척 더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늘에 있으면 선선하다. 햇빛은 아주 따갑다. 온도는 우리나라 9월 초 정도 되는 것 같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나트랑(Nha Trang)은 베트남 중남부에 위치한 해안도시로서 다낭에서 남쪽으로 5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나트랑은 다낭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사랑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베트남의 도시는 다낭이지만, 다낭은 11월부터 우기에 들어간다. 이에 비해 나트랑은 이때가 건기이므로, 겨울 여행으로는 나트랑이 좋다.
호텔은 골목 안에 있는데, 주위가 온통 마사지숍, 식당, 작은 식품점, 편의점 등이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쌀국수를 먹었다. 역시 쌀국수는 베트남이다. "퍼 가"(닭 국수)라 주문하니 종업원이 알았다며 웃는다.
식사를 마친 후 골목을 나갔다. 도로가 있고 도로를 건너면 바로 해변이다. 해변이 상당히 길다. 다낭의 미케 해변과 비슷한 느낌이다. 해변을 따라 조금 산보를 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하루 푹 쉬어야겠다. 들어오면서 썰어둔 망고 한 팩을 샀다.
망고나 먹으며 삼성화재배 바둑 동영상이나 봐야겠다. 어제 출전한 6명의 선수는 사실 신진서 한 명을 제외하곤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4명이나 승리를 하였다. 오늘 출전하는 6명은 모두 정예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 줄줄이 패배한다. 결국 1승 5패 처참한 결과로 끝났다. 별재미 없다.
오후 4시가 넘어 날이 선선해진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햇빛이 약해져 해변 산책로를 걷기에 딱 좋다. 가지고 있는 베트남 돈이 거의 없어 돈을 찾아야 한다. ATM 기계가 보이길래 트레블 월렛으로 돈을 인출하려 하는데 아무리 해도 안된다. 갑자기 불안해진다. 현금 가진 것은 700불인데 이걸로 한 달 이상을 버틸 순 없다. 다시 다른 ATM 기계를 찾아갔더니 다행히 그곳은 된다. 6백만 동을 인출했다. 든든하다. 그래봤자 3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시가지에 들어온 김에 시가지 풍경을 구경하며 잠시 걸었다. 제법 번화하다. 이곳에서 제일 많은 가게가 마사지숍이다. 나는 마사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집사람은 동남아에 오면 꼭 몇 번씩은 꼭 마사지를 받는다. 여기뿐만 아니다. 동남아 웬만한 도시는 어디를 가더라도 제일 많은 업소가 마사지숍이다.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는 이곳 도시들에서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기장 쉬운 직업이 마사지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도로를 건너 해변으로 건너갔다. 해변이 아주 좋다. 깨끗하고 산책길도 아주 쾌적하다. 야자수를 비롯한 열대 나무가 많아 햇빛을 받지 않고 산책을 할 수 있다. 배가 고프다. 식당은 도로 건너편에 있다. 여기서 제일 큰 스트레스는 도로를 건너는 일이다.
요즘은 베트남도 웬만한 도시에는 다 신호등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신호등을 본 적이 없다. 횡단보도가 있긴 하지만 차나 오토바이 모두 횡단보도 따윈 전혀 신경도 안 쓴다. 여긴 보행자에 대한 배려란 눈곱만큼도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차나 오토바이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인다. 차들이 달려와서는 걸어가는 앞쪽 혹은 뒤쪽으로 쏜살같이 피해 달린다.
낮에 쌀국수를 먹었으니 저녁은 파인애플 볶은밥을 먹었다. 파인애플을 반으로 갈라 속을 파내고 그 안에 파인애플 과육과 함께 볶은밥을 담아준다. 파인애플이 볶은밥과 아주 잘 어울린다. 향기로운 파인애플 향이 밥과 조화를 이루어 입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살살 녹는다.
오후 6시가 되자 완전히 깜깜한 밤이다.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해변을 비춘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부는 해변길 산책은 기분이 그만이다. 적당한 노천카페를 찾아 백사장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를 잡았다. 맥주 한 잔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술을 가급적 줄이기로 했다. 과일주스를 주문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휴대폰의 음악을 켠다.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멍 때리고 앉아있으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페이스북을 살펴보고 있자니 어떤 사람이 쓴 <바벨 2세>에 대한 글이 보인다. 작품의 개요, 평가 및 내용 등에 대해 상당히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쓴 긴 글이었다. 그런데, 기본정보에 약간의 오류가 보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람은 아마 <바벨 2세> 애니메이션 드라마(혹은 원작 만화)를 전혀 보지 않고 그 글을 쓴 것이 틀림없다.
주인공의 이름부터 시작하여 주인공과 맞서는 악당, 이야기의 기본 설정,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사실과 부합하는 것이 전혀 없다. 완전히 허무맹랑한 글을 써놓았다. 문득 이 사람이 무엇에 근거해서 이런 엉터리 글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제일 의심이 가는 것이 챗GPT이다. 아니면 또 다른 이와 유사한 류의 인공지능 정보원을 이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인터넷을 검색하면 챗GPT가 만들어낸 엉터리 정보가 넘친다. 페이스북도 슬슬 이런 엉터리 정보의 공격을 받는 것 같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최고이다. 태블릿 PC를 꺼냈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