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일본11: 시코쿠 다카마츠(高松), 이마바리(今治)
일본 3대 해성 중 가장 아름다운 성을 손꼽히는 이마바리성(今治城).
필자는 혼슈, 규슈, 홋카이도 등 일본 4대 섬과 오키나와 중 마지막으로 시코쿠를 찾으면서 전국시대 및 에도시대 성과 천수각에 대해서 연구했다. 시코쿠에는 일본이 국보로 지정한 5개의 천수각은 없다.
하지만 중요문화재로 지정한 7개의 천수각 중 무려 4개가 있다. 일본에서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이 12개의 천수각을 ‘12천수(天守)’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바다와 인접하여 쌓아 천연의 요새로 지어진 일본의 3대 수성(水城) 또는 해성(海城) 중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입구부터 등산해서 오른 우와지마성의 천수각과 석벽.
이런 준비를 거쳐 중요문화재인 4개의 천수각, 해성 2개, 오즈성(大洲城) 등 시코쿠 7개 성을 방문했다. 2000년부터 중국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대륙 전역과 곳곳을 취재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또한 시코쿠에서 보낸 8일의 넉넉한 일정과 JR 레일패스를 톡톡히 이용한 덕분이었다. 이 중 에히메현의 우와지마성(宇和島城)과 카가와현의 다카마츠성(高松城)은 어렵게 찾아갔다.
우와지마를 찾은 날 아침에 마루가메에서 JR 특급열차를 타고 이마바리(今治)로 간 뒤 이마바리성을 관람했다.
우와지마성은 일본 중요문화재이자 ‘12천수’ 중 하나다.
다시 JR 특급열차를 타고 마츠야마에 가서 열차를 갈아탄 뒤 우와지마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에는 기차역에서 우와지마성까지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그런데 막상 우와지마성에 도착하니, 지도에 나타난 최종 지점이 성 아래 입구였다. 그 곳에서 천수각 등 중심 건물군인 혼마루는 해발 100m 안팎이었기에 등산을 해야 했다.
다행히 입구 옆에는 메고 온 백팩을 맡기는 무료 보관함이 있었다. 또한 혼마루까지는 길과 계단이 잘 닦여져 있었다. 어렵게 산을 올라가서 본 천수각은 또 다른 감흥을 주었다.
쇼도시마의 올리브공원은 실사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의 촬영지다.
다카마츠성은 이보다 이틀 앞서 찾았다. 마츠야마에서 JR 특급열차를 타서 마루가메에 도착해 마루가메성을 관람했다. 그리고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와 전철을 타고 다카마츠를 갔다.
기차역에서 서둘러 여객터미널로 가서, 쇼도시마(小豆島)로 출발하는 페리를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짧은 시간과 버스로 이동하는 동선을 고려해서 쇼도시마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서 올리브공원(オリーブ公園)과 엔젤로드(エンジェルロード)만 둘러봤다. 그런 뒤 다시 1시간 동안 페리를 타서 쇼도시마에서 다카마츠로 나왔다.
천수각에서 내려다 본 다카마츠성의 수문은 바닷물과 해자를 연결한다.
다카마츠성에 도착했을 때는 입장을 마감하기 15분 전이었다. 다카마츠성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가신으로 시작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 됐던 이코마 치카마사(生駒親正)가 1587년부터 쌓았다.
치카마사는 여러 공을 세워 사누키(讃岐)에 12만 석의 영지를 하사받은 다이묘이었다. 사누키는 다카마츠가 있는 카가와현의 옛 이름이다.
비록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반대하는 서군이었으나, 아들이 동군에 가담했고 치카마사는 은거했다. 그 덕분에 이코마 가문은 영지를 지켰다.
지금은 사라진 천수각 터와 바닷물로 채운 해자(垓字).
1640년 이코마 가문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에도막부는 마쓰다이라 요리시게(松平頼重)를 새 다이묘로 임명했다. 그 뒤 220여년 동안 다카마츠성은 마쓰다이라 가문이 사용했다.
다카마츠성 내 건축물을 완성한 것도 마쓰다이라 가문이었다. 1869년 판적봉환에 따라 일본 모든 다이묘의 영지는 천황에게 반납됐다.
그로 인해 다카마츠성은 폐성이 됐고, 1884년에는 노후화를 이유로 천수각이 해체됐다. 따라서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은 성의 모퉁이인 망루와 조수 간만에 따른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 등이다.
이 길은 이마바리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2개의 길 중 하나다.
옛 모습을 보기 힘든 다카마츠성과 달리 이마바리성은 복원된 혼마루를 비롯해 모든 윤곽을 간직하고 있다. 이마바리성은 1602년 토도 타카토라(藤堂高虎, 1556~1630)가 쌓기 시작했다.
타카토라는 에히메현의 옛 이름인 이요의 다이묘이었다. 말단 무장에서 주군을 무려 9번이나 바꾸면서 성공했다.
임진왜란에 참전해서 영화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에 등장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에 참여했다. 따라서 이에야스로부터 20만석의 영지를 받았다.
천수각 앞에 세워져 있는 토도 타카토라의 동상.
타카토라는 평생 20개에 달하는 성을 쌓을 만큼 축성의 달인이었다. 비록 1608년에 에도막부의 명령으로 츠시(津市)로 전봉되었지만, 전공을 계속 세워 32만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그 뒤 토도 가문은 츠시에서 메이지유신까지 번성했다. 타카토라가 떠난 뒤 후임으로 마츠다이라 사다후사(松平定房)가 왔다. 갓 완성된 이마바리성은 마츠다이라 가문의 차지가 됐다.
이마바리성은 다른 해성보다 방어를 위한 해자(垓字)의 길이와 넓이가 가장 길고 넓다. 또한 해자와 바다 중간에 항구로 사용한 내해(內海)를 두었다.
현재의 천수각은 콘크리트로 새로 지어졌다.
본래 해성은 바다에 인접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기 편리하도록 하려 했다. 이를 통해서 성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물자 수송이 바다를 통해 이용할 수 있게 조성한 것이다.
모든 해성을 쌓은 다이묘가 수군(水軍) 무장으로 활약한 공통점도 있다. 이마바리성은 이런 목적이 극대화 됐다. 단순히 해자에 바닷물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내해를 따로 두어 항구를 건설했다.
물론 다른 해성 앞에도 항구가 있었지만, 이마바리성의 내해 항구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게다가 오늘날까지 사용할 정도로 잘 계획됐다.
천수각의 6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자와 내해의 항구.
이마바리성의 다른 특징은 석벽과 해자를 일직선으로 계획해서 쌓은 점이다. 석벽은 긴 쪽이 600m에 달했고, 해자의 폭은 모두 50m로 일정했다.
하지만 다른 일본 성이 그러하듯, 이마바리성도 판적봉환 이후 폐성이 됐고 건축물은 해체됐다. 현재의 혼마루,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 등은 1980년부터 모두 콘크리트로 복원한 것이다.
천수각은 타카토라가 전봉되면서 해체하여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천수각을 다시 지은 기록이 없다. 따라서 복원된 천수각은 위치와 형태가 옛 것과 다르다.
옆쪽 해자 앞에서 바라본 이마바리성 석벽과 천수각.
그러나 성곽과 해자, 다른 건축물은 원형과 큰 차이가 없어 나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3대 해성 중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힌다.
다만 천수각 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전시물을 전혀 기록하지 못했다. 2층부터 4층까지 이마바리성의 역사와 타카토라를 이해하는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6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경도 멋졌다. 이렇게 이마바리성을 구경한 뒤 걸어서 기차역으로 되돌아갔다. 그 덕분에 옆쪽 해자 앞에서 이마바리성 석벽과 천수각의 다른 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나카바쿠슈의 크래프트 맥주. ⓒ 이마바리 마치나카바쿠슈 SNS
뿐만 아니라 이마바리 마치나카바쿠슈(今治街中麥酒)를 방문할 수 있었다. 마치나카바쿠슈는 2020년에 문을 연 크래프트(Craft) 맥주전문점이다.
크래프트는 수공예나 수공예 작업을 하는 장인을 의미한다. 일본은 크래프트의 역사가 오래되어 작은 도시와 마을에도 전문점이 있다.
마치나카바쿠슈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지만, 2021년과 2022년 일본지역맥주협회에서 주최한 심사회에서 2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좋은 맥주를 생산한다. 특히 복숭아의 단맛과 향기가 퍼지는 복숭아 위트 에일이 아주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