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으로 퇴사한 후, 나는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인 ‘두 번째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갭이어로 주어진 시간은 때론 ‘양날의 검’ 같았다. 무한한 자유가 있는 만큼 무거운 책임이 느껴졌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연간 계획에 따라 월별, 주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하루를 보냈지만, 지금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따라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결정되었다. 다시 일하기 위해서는 ‘진짜 나’로 사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준을 지켜야 했다.
<두 번째 갭이어 동안 지켜야 할 두 가지>
1. 최소 1년 동안 일을 쉴 것
2. 현재를 살 것
앞으로 1년간 일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1년간 일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으로 1년을 생각한 건 그마저도 정해놓지 않으면 불안감에 시달리다 서둘러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두려웠다. 1년이나 커리어에 공백이 생기고 나면 누가 나를 불러주긴 할까. 생계도 걱정되었다.
그러나 충분히 회복하지 않은 채 다시 일을 시작해서는 안 됐다. 에너지가 충전된 것처럼 보여도 얼마나 빨리 다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10년간 일한 덕에 1년 정도는 수입이 없어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불안할 때마다 마법의 주문을 외듯 ‘언제 또 이렇게 쉴 수 있겠어.’라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1년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일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던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현재’를 산다는 것
고민 끝에 퇴사하기로 결심했을 때, 갑자기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시력이 회복되기까지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영영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날 오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언제쯤 다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판정을 받은 절망적인 나의 상황과 완벽하게 대비되었다. 한산한 길거리를 봄 햇살이 가득 비췄다. 그걸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아파서?
아니었다.
번아웃으로 결국 몸까지 상한 채 퇴사하는 내가 한심해서?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온전히 그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날이 너무 좋았다.
내가 그걸 느끼고 있었다.
곧 피어날 벚꽃이 꽃망울을 가득 머금었고 적당한 바람이 주위를 감쌌다. 평일 오후 3시. 원래대로라면 사무실 한구석 작은 책상에 앉아 눈 빠지게 모니터를 보며 일해야 했다. 해가 비추는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아, 오늘 눈이 왔구나.’하고 알아채는, 그런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내가 가진 모든 몸의 감각, 마음속 감정들이 그 순간을 느끼고 있었다.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비록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입원할 필요가 없었고 두 발로 걸어 나왔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일이었다. 역설적으로 그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재를 산다는 게 이런 거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