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일도 꾸역꾸역 출근하겠지
작년 이맘때 익숙한 것을 버렸다.
아니다.
오늘은 직설적인 글이 더 속이 후련할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익숙했던 업무와 정들었던 동료들을 버리고 나 혼자 정규직으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관두고 나왔다.
그곳에서의 마지막날
모든 업무를 일찍 마무리하고 회사 앞 공원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 산책을 나갔었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공원 등나무 벤치가 있는 천막아래 서서 장대같이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천막의 기둥에 거울이 하나 붙어있었다.
그 속에 비친 슬픈 내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빗속에서 들었던 브라운아이즈소울의 '너를'을 잊지 못한다.
이 회사로 이직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아직도 근무 중 옛 동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달랜다.
이곳의 공기도 싫다. 숨이 막힌다.
미련한 사람들에 주먹구구식인 시스템.
대기업 계약직에서 중견기업 정규직으로의 이직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에 구석기시대로 뚝 떨어진 기분이다.
불만에 가득 차 욕하고 울고 싸우고 짜증 내고 피곤하고 지치고 아팠다
그리고 참고 참았다.
‘대리’만 달고 관두자를 되새겼다.
그렇게 ‘대리’가 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을 할 기회가 왔다. 좋은 이직 자리였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랑 같은 기분이다.
왜 슬픈지 모르겠다.
그렇게 욕을 했던, 절대 타협할 수 없었던 것들이 왜 갑자기 편안하고 익숙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익숙함을 다시 버릴 생각을 했지만, 왠지 이번에는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익숙함이란 참 무섭다.
익숙함은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익숙함 자체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 내리던 공원의 거울 속 내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을 살면서 얼마나 자주 마주쳐야 하는 것일까.
두려워진다.
결국 삶이든, 일이든, 관계든.
모두 마지막이란 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까.
'대리'만 달고 관두자며 앞만 보고 달렸던 그 시간 속의 내가 부러워진다.
모르겠다.
왜 슬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