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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30. 2022

불안을 데리고 삽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요


H 어학원 현장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토플 공부에 더 박차를 가했다. 처음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3시간씩 수업을 듣다가 정규반을 마친 두 달 뒤부터는 평일 저녁 수업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새벽에 일어나 회사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고 출근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서는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아침부터 불쾌한 기분을 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오전 7시 35분쯤 항상 향하는 회사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7시 30분에 오픈하는 이곳은 회사 근처 카페들 중에서 회사와의 거리도 가까웠지만 무엇보다 오픈 시간이 제일 빨랐다. 문을 열고 오픈 준비를 하느라 어수선한 직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점심시간이면 발 디딜 틈 없는 이곳에 지금 이 순간 손님이라곤 나 혼자 뿐이다. 자리를 서둘러 맡을 필요도 없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혼자 앉을 수 있는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행여 일찍 출근한 직장 동료의 눈에 띌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안 보이는 곳에 자리해야 한다.


오픈한 지 10분 정도 지나면 베이커리가 들어온다. 향긋한 빵 냄새가 내 배를 집중 공격한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나는 빵 냄새에 홀린 듯 다시 주문 카운터로 향해 제일 좋아하는 크루아상 하나를 시켰다. 이 집 크로와상은 유난히 버터 향이 풍성하고 빵이 쫀득하다. 아마 갓 구워온 빵을 아직 따끈할 때 주문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공부하는 시간만 따지면 카페 문을 나서는 오전 8시 반까지 겨우 4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집중이 된다 싶으면 문제집을 덮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시간은 내게 정말 귀했다.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간 덕분에 내가 꿈에 매일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의지로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기분은 유튜브에서 보던 그 어떤 동기부여 영상보다도 강력했다.






열심히 일한 뒤에는 어김없이 학원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학원 건물 구석에 있는 분식집으로 향했다. 대충 빵으로 때웠다간 금방 허기 가져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조건 밥을 먹어야 했다. 학원 내 분식집은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동선도 가깝고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은데 무엇보다 음식이 빨리 나왔다. 


학원 안에 있으니 강남역에 놀러 나온 회사 동료를 마주칠 일도 없었다. 나는 주로 비빔밥이나 제육볶음,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회사 점심과 별 다를 바 없는 메뉴인데도 이상하게 더 맛있게 느껴졌다.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켜놓고 보았다. 귀로 흘려듣더라도 언젠가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항상 틀어놓았던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수업이 있는 날에는 강의실로,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학원 건물에 마련된 스터디 공간으로 향했다. 스터디 공간에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자극도 되고 무엇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공부하다가 오후 9시 반쯤 눈이 풀리기 시작하면 가방을 챙겼다. 조금 아쉽지만 체력이 바닥났다는 신호가 오면 무리하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무너지지 않고 꾸준히 계속할 수 있다.


강남대로의 밤은 낮만큼이나 반짝거렸다. 밤을 즐기는 사람들, 반짝거리는 간판, 아직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켜놓은 사무실 형광등이 강남역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도 머지않아 이 밤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빛을 가슴에 품고 컴컴한 밤을 헤치며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했다.






추석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찾아왔다. 그러다 금세 해가 바뀌었고 설 연휴를 보내자 봄이 얼굴을 내밀었다. 계절이 세 번 바뀌었고 두 번의 연휴를 보냈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나와 내 성적만 그대로였다. 그동안 나는 5번의 시험을 더 치렀다. 내게 허용된 시간을 긁어모아 공부했지만 여전히 목표한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심리 상담도 받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시험 상황이 원래 불안을 유발하는 환경이라서 시험을 여러 번 치를수록 불안에 노출될 것이고, 그러면서 불안을 다루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사회불안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로 노출 치료라는 것이 있는데, 내담자가 불안을 느끼는 환경에 점진적으로 노출되면서 그 상황이 걱정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새롭게 인지해가는 훈련법이라고 하셨다. 불안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왜곡된 인지를 교정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토플 공부를 시작한 후 지금껏 내가 경험해온 것들이 불안을 치료하는 방법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의도적으로 불안을 유발하는 시험이라는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스터디에 지원해 참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매번 시험장에만 입실하면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불안한 생각은 늘 똑같았다.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나올까 봐, 스피킹 문제가 어려워 말 한마디도 못 할까 봐, 너무 긴장해서 공부한 것도 기억나지 않을까 봐, 그래서 이 시험을 또다시 봐야 할까 봐 무서웠다.


상담을 하러 가면 나는 선생님께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이번 시험에서도 저는 어김없이 불안해졌습니다. 

이제 그만 불안해하고 싶어요. 불안한 마음이 올라오면 여전히 너무 힘이 듭니다. 

왜 저는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대답은 같았다.


"재이 씨, 불안은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극복하는 존재도 아니에요.

불안은 재이 씨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불안이 올라오면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불안을 데리고 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평생 불안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인가? 나는 사람들 앞에서 불안해하지도 떨지도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즐기며 실패가 무섭다고 도망치지 않고 끝내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암 덩어리처럼 내 몸에 붙어 있는 불안을 떼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무의식 중에 나는 불안을 암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내게 고통만 주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 그러니 치료든 수술이든 뭐라도 해서 내 몸에서 없애고 싶은 존재. 나는 불안이 없는 상태가 건강한 상태라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픈 사람이고, 내 몸에서 불안을 잘라낸 뒤 회복 기간을 거쳐 하루빨리 완치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불안은 그렇게 미워할 정도로 나쁜 존재도, 깨끗하게 잘라서 버릴 수 있는 암적인 존재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조심하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나름의 사랑의 메시지였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불안은 나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평상시에는 조용하게 살다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순간에만 나타나는 불안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동반자였다. 인생의 동반자인 만큼 나는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했다.


사람마다 불안의 증상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떨리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난다. 내 불안 증상을 관찰해보았다. 내 경우에는 시험처럼 불안을 유발하는 행사의 전날 밤 생각이 많아져서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시험장에서 나만 한 문제도 풀지 못해 불안해하는 꿈을 꾼다. 행사 당일에는 뭘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된다. 행사 시간이 다가오면 점차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한다. 주변 소리가 마치 확성기를 튼 듯이 내 귀에만 크게 들린다.


불안을 동반자로 인정하는 첫 단계로 나는 이 증상들을 모두 품어주기로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해서 보낸 신호이니 나 또한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다칠까 봐 그랬구나. 나는 괜찮아. 신호를 보내줘서 고마워. 걱정해준 만큼 잘해볼게.'라고 내가 불안에 말을 걸면 일을 마칠 때까지 잠잠히 있어 줄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공부를 하면서 불안을 데리고 사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이상해서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더는 자책하지 않게 됐다. 작은 도전과 성취를 통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니 앞으로 불안을 잘 데리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좀 더 새롭고 큰 도전을 시도해볼 때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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