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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08. 2023

#28 여행

소설 연재


바베큐장에서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가 들린다. 재인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글램핑장을 찾았다.


“재인아, 엄마 너무 행복하다.”

“저도요. 그리고 삼겹살이 진짜 맛있어요.”


아빠는 계속 불판 앞에서 연기와 싸움하고 있다. 재인과 엄마는 옆에 놓인 차돌박이 된장찌개도 한 숟가락씩 떠서 먹는다.


아빠가 흐뭇한 듯 재인을 쳐다본다.

“우리 재인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아빠 엄마 여행도 다 데리고 다니고.”


엄마도 맞장구 친다.

“맞아. 올 초부터 이렇게 매달 한 번씩 가족끼리 여행 다니니까 엄마는 너무 행복해.”


재인이 쑥러워하며 말한다.

“저도 이제 하는 일도 많이 적응됐고, 또 이렇게 시간 보내고 싶더라고요.


아빠도 서서 큰 집게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며 말한다.


“그래도 네가 다 컸다고 친구들이랑만 놀지 않고 우리랑도 한 번씩 놀아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고맙다, 재인아. 매달 여행 가자고 제안한 건 제인이 너니까 너 덕분이 맞아. 아빠도 늘 생각만 했지 실천은 못했는데. 사는 게 뭐 있냐. 이렇게 가족들끼리 시간 보내고 웃고 떠들면 되는 거지.”

저도 이렇게 오면 너무 좋아요.”


저녁을 든든히 먹고 아빠는 옆에서 모닥불을 지핀다. 불길이 점점 타오르고 재인과 엄마도 식탁에서 나와 모닥불 근처에 놓인 캠핑용 의자에 앉는다. 재인은 방에 들어가 마시멜로 한 봉지와 꼬지를 들고 나온다.


“우리 이거 같이 먹어봐요. 구워 먹으면 진짜 맛있어요.”


재인은 직접 마시멜로를 꼬에 꽂는다. 아빠와 엄마에게 하나씩 전해주고 셋은 모닥불 속으로 마시멜로를 집어넣는다.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진 마시멜로를 입안에 넣으니 달달한 향과 맛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어머, 이거 너무 맛있다. 딱 엄마 스타일이네.”

“어우, 이거 아빠 입에는 너무 달다.”

“아빠가 뭘 모르시네. 그게 바로 마시멜로 먹는 맛이죠.”


어둠이 더 낮게 깔리고 아빠는 일찍 코를 골며 잠에 든다. 재인과 엄마는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 이제 가을이랑 겨울에는 더 예쁜 곳들이 많을 텐데 또 가고 싶으신 곳 없어요?”

“그러게, 다음 달에는 또 어디 가볼까. 근데 엄마는 어디 꼭 안 가도 재인이 너랑 아빠랑 같이 시간 보내는 게 좋은 거야.”

“그건 그래요. 엄마 근데 준영 오빠는 마음에 상처가 좀 큰 거 같아요.

“왜?”


엄마는 고개를 돌려 재인을 본다.


“그게… 저도 얼마 전에 들었는데, 준영 오빠 어머니께서 병원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 나도 아빠한테는 그냥 준영이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고만 들었는데.”

“오빠 어머니께서 우울증이 심하셨대요. 오빠 고등학생 때 안 좋은 선택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아이고, 그랬구나… 준영이가 마음고생이 많았겠다… 준영이 아버지도 마찬가지실 거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마음은 아프지만, 제가 준영오빠의 그 상처를 잘 다뤄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재인은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엄마는 조금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래. 각자 다 짊어지고 는 상처들은 있겠지만 그 경우는 또 조금 다를 수 있겠다. 그런데 또 준영이가 살아온 세월을 보면 아마 또 나름대로 강한 힘이 있기도 할 거야. 고등학생 때 그런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지금 자기 몫 잘하고 살잖아. 대견하지.”

“그건 그렇지만…”

“사실 엄마도 우리 딸이 힘든 연애나 결혼은 안 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서로 알아보는 단계니까 한 번 잘 만나봐. 그런데 준영이가 가진 어떤 상처가 재인이 네가 견딜 수 없는 정도로 영향을 준다면 참으면서까지 만날 필요는 없어.”



***



일요일 저녁 재인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다. 사망 프로필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한다. 이용자수가 급증하고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비밀 게시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녀는 찬찬히 내용을 확인해 본다.


제목: 그것을 알아보자 PD 박준철입니다.

안녕하세요. 그것을 알아보자 PD 박준철입니다. 사망 프로필 서비스에 대해 취재하고 싶습니다. 지난 방송들을 준비하면서도 글을 남겼는데 답이 없으셔서 다시 게시글 남깁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제목: 바람생명 보험회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바람생명 보험회사 마케팅 팀장 이지영입니다. 협업 제안 메일 드립니다. 현재 저희 회사에서는 모바일 어플을 통해 무료 운세 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습니다. 내년에는 저희 고객들에게 사망 프로필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싶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찾아뵙고 설명드리겠습니다. 답신 부탁드립니다.


제목: 서비스 중단해 주세요.

사망 프로필 서비스 중단해 주세요. 제 동생은 당신이 보낸 이메일을 받고 죽기 전날까지 계속 두려움에 떨다가 세상 떠났습니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서비스를 운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하세요. 사람이 죽는 걸로 돈 벌면 기분 좋습니까.


제목: 매각 제안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벤처캐피털 출신 전업투자자 김현승입니다. 사망 프로필 서비스 30억 원에 매각 제안 드립니다. 직접 한 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아래 연락처로 회신 부탁드립니다.


재인은 마우스에서 손을 뗀다. 이내 휴대폰을 켜서 ‘그것을 알아보자’ 다시 보기 화면에 접속한다. 그동안 신경은 쓰였지만 억지로 시청하지 않고 버텨왔다. 하지만 더 이상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내용을 확인해 본다. 추가 편성된 방송에는 각계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다.


한 경찰은 “요즘 젊은 청년들이 사망 프로필 서비스에서 알림을 받고 무모한 행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알림을 받지 않았으니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위험한 도전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실제로 큰 사고들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고 말한다.


한 대학 신학과 교수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만 살아가는 겁니다. 그뿐입니다. 인간은 생명의 주권자가 아닙니다.”라말한다.


한 사찰의 스님은 “불교에서 죽음은 육신과 의식의 완전한 소멸입니다. 하지만 윤회를 전제로 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은 없습니다. 죽음은 결국 내생으로의 입구입니다. 죽는 날짜를 미리 안다고 해서 갑자기 준비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삶의 방식을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고 말한다.


한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오랜 투병으로 인한 죽음보다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사망이 남은 자들에게는 더 강한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그런데 만일 당사자가 미리 자신의 죽는 날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설사 자신이 원해서 죽는 날짜를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막상 그 날짜가 다가오는 시간 동안 엄청난 두려움을 느낄 겁니다. 특히나 원래 지병이 있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그 정도는 더 심할 겁니다. 본인이 죽는 날짜만 알 뿐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시간은 견디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일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재인은 영상을 멈춘다. 한숨을 조용히 내쉬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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