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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안 Oct 09. 2023

#29 종료

소설 연재


“안녕하세요. 실습생 김진한입니다.”

“안녕하세요. 실습생 윤혜영입니다.”


사무실에 두 대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미영이 소개한다.


“여기 두 학생은 아람대학교 장례지도학과 졸업반 학생들이에요. 앞으로 한 달간 우리 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함께 생활하게 될 겁니다. 재인씨와 태진씨 후배들이니까 잘 챙겨줘요.”


재인과 태진이 웃으며 대답한다. 이어서 민석도 인사를 건넨다. 미영이 실습생들 자리를 안내한다.


“오늘 오전에 입관 일정 있으니까 선배님들 따라다니면서 절차 잘 배워요. 도움이 될 거예요.”


조금 뒤 재인과 태진은 실습생들을 데리고 입관실로 이동한다. 둘은 염습을 하면서 절차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한다. 실습생들은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옆에 서서 지켜본다. 재인이 손을 움직이며 입을 연다.


“이렇게 사고사로 돌아가신 분의 경우 부검이 진행되기 때문에 시체에 절개된 부위들이 있어요. 물론 부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꿰매기는 하지만 그 부위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염습과정에서 세심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의가 피로 물드는 사고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염습할 때 그 부분에서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유가족들이 보고 상처받지 않도록 잘 가려줘야 해요.”


염습이 끝나고 유가족들을 불러 입관절차를 진행한다. 이번에는 태진이 입을 연다.


“자, 이제 자녀 분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하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야기 또 기뻤던 이야기와 사랑했던 이야기. 자녀 분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한 분씩 목소리를 들려주시면서 고별인사 하시길 바랍니다.”


고인의 어머니가 꺼이꺼이 눈물을 토해낸다.


“현영아…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어… 그 짐승 같은… 허어억… 으으으윽… 얼마나 무서웠어… 우리 딸 어떡해… 현영아… 아아아… 너 억울한 거 엄마가 꼭 풀어주고 따라갈게… 너… 억울한 거… 엄마가… 다 풀어줄게… 현영아…”


고인의 아버지가 아내를 토닥인다.

“당신… 그만 울어… 당신이 이러면 현영이가 더 슬플 거야…”


아버지는 고인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한다.

“현영아…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고… 사랑한다…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어라… 남은 일 우리한테 맡겨라… 아빠가 그놈 꼭 죄 값 치르게 할 테니…”


유족들의 고별인사가 끝나고 입관식이 마무리된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실습생 진한이 헛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태진이 진한에게 말을 건넨다.


“진한씨, 괜찮아요? 긴장을 많이 했나 보네.”

“아니에요. 죄송해요.”


재인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말한다.


“그럴 수 있어요. 나도 처음 입관식 들어갈 때 많이 힘들었어요. 일단 사무실까지 걸어갈 수 있겠어요?”

“저 여기 조금만 있다가 가도 될까요?”


태진이 재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재인씨, 그럼 혜영씨 데리고 먼저 사무실로 가요. 나는 여기서 진한씨랑 조금 있다가 돌아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재인과 혜영은 사무실 쪽으로 향하고 태진과 진한은 입관실 앞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는다. 태진은 진한의 등을 만져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설명 안 해도 되니까, 숨 천천히 내쉬어요.”


시간이 흐르고 진한의 안색이 조금 돌아온다. 태진이 말한다.


“많이 힘들죠. 처음에 시신 보면 다 그래요. 아마 학교에서는 거의 모형으로 봤을 텐데 실제로 보니까 또 다르죠?”

“네… 저는 잘 해낼 줄 알았는데…”

“죽은 사람을 보는데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은 게 더 이상하죠. 당연한 거예요. 저도 사고사로 들어오신 분의 경우는 염습할 때 여전히 많이 힘들어요.”


진한은 태진을 본다. 태진이 다시 말한다.


“저는 아직까지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진한씨가 유별난 거 아니니까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는 사실 아버지가 이 직업을 많이 반대하세요. 장례지도학과로 진학할 때도 아버지랑 갈등이 엄청 심했어요… 아버지는 지금도 제가 이 일을 하는 걸 포기하길 바라세요… 그래서… 더 잘 해내고 싶었는데… 실습 첫날부터 이럴 줄 몰랐어요… 앞으로 나아지겠죠?”

“그럼요. 하다 보면 적응도 되고 익숙해지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지금부터 너무 걱정하지 마요.”



***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재인은 준영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는 직장에서와는 달리 애교 섞인 말투로 통화한다.


“오빠, 나 이제 퇴근해. 응… 응… 오빠는 오늘 일찍 퇴근했네? 응. 그랬구나. 응. 응. 오늘은 실습생들 처음 온 날이라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일해서 그런지 피곤하네. 응. 아니야. 응. 그래도 나 처음 일할 때도 생각나고 괜찮았어. 응. 응. 나도 집 가자마자 씻고 바로 자려고. 응. 알겠어. 응. 나도 사랑해.”


집 현관문이 열린다.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서 와라. 고생했다 오늘도.”

“배고프지? 바로 저녁 먹자.”

“아, 엄마 저 오늘은 저녁 안 먹고 그냥 씻고 바로 잘게요. 조금 피곤해서요.”


엄마는 주방에서 국자를 든 채 뒤 돌아본다.

“조금이라도 먹지. 배 고프지 않아?”


아빠가 이어서 말한다.

“그래, 피곤할 때는 잠이 보약이다. 어서 씻고 자라.”


재인은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노트북을 켠다. 무언가 몰두하며 작성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조금 뒤 재인은 옷가지를 챙겨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노트북에는 사망 프로필의 공지사항 화면이 보인다.


‘<서비스 종료 안내>

안녕하세요. 사망 프로필 운영자입니다.

사망 프로필 서비스가 2022년 10월 31일 종료됩니다.

본 서비스로 인하여 여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죄송합니다.

아직 알림을 받지 못하신 이용자분들께서는 아래 링크를 통해 계좌번호를 입력해 주시면 빠른 시일 내에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이용해 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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