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은 106호 빈소 상황을 점검하러 사무실을 나선다. 코너를 돌아 걸어가는데 얼핏 봐도 30명이 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재인이 가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재인은 잠깐 멈춰 선다. 학생들은 106호 빈소 안에 한꺼번에 다 들어가지 못해 조금씩 나누어 조문하기 시작한다.
한 학생은 가방에서 두꺼운 봉투를 꺼내 부의데스크 앞으로 간다. 봉투 뒷면에 펜으로 ‘가론고등학교 2학년 4반’이라고 작성한 후 부의함에 조심히 넣는다. 빈소 중앙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다들, 우리 영준이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상주의 인사말이 들린다.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담임선생으로 보이는 남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영준이 아버님, 어머님…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상주가 선생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닙니다… 선생님 그동안 영준이 신경 많이 써주신 거 잘 압니다. 친구들도 영준이 챙겨줘서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쪽에서 식사하시고 가세요.”
재인은 조금 뒤 빈소 옆 식당 쪽으로 들어가서 남은 음식 양을 체크하고 나온다. 사무실로 돌아온 재인은 옆자리 민석 쪽으로 의자를 당긴다.
“팀장님, 106호는 음식 추가 주문을 더 해야 할 거 같아요.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이 오셨어요. 조금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러 갔는데 교복 입은 학생들도 조문을 많이 왔더라고요.”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어제 차려진 빈소인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고인이 심한 우울증이 있었나 보더라고. 어린 학생이라 참 안타까워.”
“아… 몰랐어요.”
“자식이 앞서 간 경우에는 유가족들한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특히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죽은 경우에... 남은 가족들 마음은... 나도 딸을 키우고 있지만 참…”
“맞아요…”
재인은 며칠 전 준영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
재인은 준영과 손을 잡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제법 선선해진 가을 날씨였다.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재인아, 내가 연락하는 걸로 계속 힘들게 해서 미안해…”
“...”
“나도 안 그래야지라고 하면서도 매번 너랑 연락이 조금이라도 안 되면 불안해져…”
“응, 오빠 마음 알아. 나도 그 부분은 오빠한테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아…”
“미안해…”
준영은 바닥을 내려다본다. 재인이 다시 말한다.
“그런데 나랑 연락이 바로 안 돼도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면 안 돼? 날 신경 써주는 건 알지만… 오빠가 그럴 때마다 갑자기 화를 내면 나도 조금 당황스러워…”
“미안해, 재인아…”
준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벤치에 등을 기대앉는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재인아… 나도 잘 알고 있어. 고치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어려워… 이건 내가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인데 말이야… 사실은 우리 어머니가… 우울증이 있으셨어… 내 앞에서는 웃고 계실 때가 많았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날따라 학교에 가기 싫더라고… 아침에 식사하는데 어머니 표정이 뭔가 묘했어… 웃고는 계신데 슬퍼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는 건가 싶다가도 입가에는 미소가 있으시고…”
준영이가 큰 숨을 들이쉰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더 걱정돼서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집에 전화를 걸었어…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연락했는데… 받지 않으셨어… 그리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5교시 수업 중에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어… 아버지께서 급하게 전화가 오셨다고… 에움대학병원으로 오라셨다는 말씀만 전해주셨어…”
준영이 눈물을 흘린다. 재인은 그런 준영을 말없이 안아준다. 준영은 그녀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가끔 나는 아직도 이렇게 눈물이 나… 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살아가… 난 지금도 자살유가족 자조모임에 이따금씩 참석하거든… 어머니가 왜 그 선택을 하셨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나는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했어… 그저 내가 어머니께 했던 모든 말들을 떠올려보게 될 뿐이야… 혹시 나의 어떤 말이 어머니께 상처가 되신 건 아닐까… 혹시 그때 어떤 내 행동이 어머니를 힘들게 한 건 아니었을까… 그때 어머니랑… 그때 어머니랑 내가 시간을 더 보냈다면 그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까… 그날… 연락이 되지 않던 그날… 내가 학교에 가지 않고 어머니랑 함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재인이 준영에게 말한다.
“오빠… 오빠 잘못이 아니잖아…”
“내 잘못일 수도 있지…”
“아니야… 오빠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난 어머니께 화도 나… 왜 그 선택을 하셔서 아버지랑 나까지 그 시간에 멈춰버리게 하신 건지… 차라리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면 나도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지켜볼 수 있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리면 가족들은 그 죽음 자체를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해…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는 존재가 맞는 건지 아닌지까지도 헷갈려… 게다가 그때는 내가 어려서 어머니 입관하실 때 아버지께서 나를 못 들어오게 하셨어… 충격받을까 봐… 그래서 나는 어머니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했어…”
준영은 감정을 추스르고 조금 담담하게 말한다.
“어떤 방법으로 돌아가셨는지, 마지막 모습이 어떠셨는지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그냥 상상만 해볼 뿐이야… 그런데 상상하는 건 제한이 없잖아… 그래서 상상하는 게 오히려 더 무서워… 차라리 내가 그 장면들을 직접 목격했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지금은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아…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면 그때와 비슷한 감정들이 올라오곤 해… 미안해 재인아…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연락이 잘 안 되면 무서워… 안 좋은 생각이 들고… 내가 아직도 그 시간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나 봐…”
***
띠링.
69세 최복정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린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10월 12일 뇌사 판정을 받고 2022년 10월 15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복정은 몇 달 전 사망 프로필 서비스를 접하게 됐다.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복정은 아들에게 부탁해서 이 서비스에 가입했고 오늘 드디어 이메일 알림을 받게 됐다. 그녀는 그날 저녁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정훈아, 엄마 이제 너네 아버지 보러 갈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때 가입한 곳에서 나 3일 뒤에 죽는다고 연락이 왔어.”
“아유, 어머니 그걸 믿으세요? 그때 하도 어머니가 가입해 달라고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이 가입해 드린 건데… 별 의미 없어요 그거.”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해.”
아들은 볼멘소리로 투덜댄다.
“어머니,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그래도, 혹시나 알림 내용처럼 내가 죽으면 내 장기기증하는데 네가 동의해 주면 좋겠다.”
“싫어요.”
아들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는다. 다음날 아들은 복정의 집으로 퇴근한다. 오랜만에 아들과 오붓하게 식사를 한다.
“이렇게 같이 식사하니까 좋네.”
“어머니, 앞으로 저한테 그 서비스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지 마세요. 속상하다고요.”
“그런데 그 알림이 맞다고는 하더라. 우리 나이 때가 되면 다들 죽는 걸 한 번씩은 생각해 봐. 자식들한테 피해 안 주고 가야지라는 생각도 하고… 그리고 우리 또래들 중에 그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이 꽤 돼. 너네처럼 젊은 사람들보다 죽음이 가까운 우리들은 더 관심이 많아.”
“그만하시라고요.”
복정은 반찬을 집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그래, 이 이야기하면 너 속상할 거 알아. 그렇지만 죽는 게 사실이라면 엄마도 준비는 해야 하잖니. 아무튼 엄마 죽고 나서 혹시라도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 아들인 네가 동의해 주면 좋겠다. 어머니는 예전에 이미 장기기증 신청을 해놓기는 했는데 가족이 반대하면 아무리 내가 장기기증하고 싶다고 해도 못한다고 하더라.”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식사나 어서 마저 하세요.”
***
며칠 뒤 복정은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시내버스에 치이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녀는 뇌사판정을 받고 병실에 누워있다. 그 앞의 간이 의자에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앉아 있다. 병실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들어오고 아들은 안내를 받아 따라간다. 상담실 안에서 아들과 코디네이터의 대화가 이어진다.
“네… 동의하겠습니다… 어머니 뜻이시기도 하고…”
“어려운 결정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저를 찾아오셨을 때 너무 화만 내서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어머니 도움으로 다른 누군가의 삶이 이어진다면… 좋은 거겠죠… 사실 지금도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뜻이라 따르는 거지… 솔직한 심정으로 아들인 제 입장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 몸에 칼을 대서 장기를 적출한다는 게… 참… 속상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어머니 뜻이신걸요…”
***
장기이식을 앞두고 수술 준비실에 누워있는 어머니 앞에 아들과 며느리가 서있다. 아들은 허리를 숙여 어머니를 꼭 끌어 앉는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며느리도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남편을 안아준다.
“어머니… 저는 아직도 이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원하셨던 일이니까…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