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에 일어난 재인은 곧바로 노트북을 켠다. 사망 프로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용자수가 급증해서 1만 명에 육박한다. 전날 ‘그것을 알아보자’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다룬 탓일까. 자유게시판에 업로드된 글들도 넘쳐난다. 유명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사망 프로필과 관련한 기사도 떠있다. ‘그것을 알아보자’에서는 어제 못 다룬 내용을 추가 편성하여 다음 주에 이어서 방송한다는 예고편도 올라와 있다.
재인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이 화면 저 화면 들락날락하다 마우스를 멈춘다. 그리고 옷가지를 챙겨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을 몸에 뿌리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깨끗하게 씻고 나와서는 곧바로 머리를 말리고 출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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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아래 초록 묘목들이 가득한 수목장에 사람들이 여럿 서 있다. 수목장은 시체를 화장한 뒤 분골을 나무 근처에 묻거나 뿌리는 친환경 장례 방식이다. 스위스에서 처음 도입된 방식으로 매장이나 납골방식과 달리, 사후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장묘 방법이다.
추모목으로는 소나무가 대표적이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띠기 때문에 많은 유가족들이 수목장 나무로 소나무를 선택한다. 수목장을 진행할 때에는 분골이 흙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땅의 깊이를 30cm 이상 파서 묻는다.
재인은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여러 장례절차를 접하고 또 안내한다. 크게 매장, 수목장, 납골당 안치 방법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대부분 땅에 묻는 매장 방식을 택했지만 요즘은 납골당 안치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고인이 죽기 전 유언으로 그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진행된다.
그녀는 이 일을 하면서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 있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기억되는 것이다. 겉보기에 화려한 죽음이 사실 더 초라하고 비참할 때가 있고, 조촐하고 소박해 보이는 죽음이지만 그 어떤 죽음보다 화려할 때도 있다.
매장을 하든 수목장을 하든 또는 납골당에 안치를 하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승에 남은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가면서 고인을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한다면, 그 고인은 그 사람의 기억을 통해 영원한 존재로 남는 것이다.
이제 깊게 파인 구덩이 위에 유가족들이 유골을 뿌린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파냈던 흙을 한 줌씩 얹는다. 마지막으로 평평하게 표면을 발로 꼭꼭 눌러 밟은 뒤 그 위에 주변 풀잎을 주워 올린다.재인은 상주에게 고인의 정보가 담긴 명패를 전달한다. 상주는 그 명패를 건네받아 묘목에 건다.
‘故 김진복
1954. 12. 24. ~ 2022. 09. 27.
함께한 시간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재인이 마지막 절차 안내를 진행한다.
“이제 가족분들은 잠시 눈을 감고 아버님께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들을 마음으로 건네시길 바랍니다.”
가족들은 묘목 앞에 서서 다 같이 고개를 숙인다. 보통 발인 절차의 마지막 즈음에는 큰 울음소리가 나지 않는다. 3일 내내 울다 지친 것일 수도 혹은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일 수도. 오늘도 작게 흐느끼는 소리만 잔잔하게 바람에 흩날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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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32세 윤진영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린다. 진영은 사무실에서 한참 일하는 중이다. 그녀는 이메일함을 열어 본다.
‘당신은 3일 뒤 2022년 9월 30일 죽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는 날짜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3일 동안 죽음을 준비하세요.’
진영은 휴대폰을 책상에 엎어두고 하고 있던 서류 작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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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깜깜한 집에 돌아온 진영은 전등 스위치를 켠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적막만 흐른다. 곧바로 방에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나온다. 부엌 선반에서 라면 한 봉지를 꺼내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인다.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켜고 다 끓은 라면을 식탁으로 가져와 허기를 채운다.
식사를 마친 후 식기는 그대로 식탁에 둔 채 소파에 앉는다. 이내 휴대폰 화면을 열어 ‘바람잡이’ 사이트에 접속한다. 일명 ‘바람피우는 것들 잡아 죽이기’의 약칭이다. 이곳에는 바람피운 아내나 남편 혹은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에 대한 사연, 복수하는 방법, 성공 후기 그리고 실패 후기에 관한 글들이 다양하게 올라온다.
진영은 6개월 전 남편이 같은 직장 후배와 바람을 피우는 사실을 알게 됐다. 1년 전부터 점차 출장이 늘어나고 같이 있을 때도 휴대폰을 숨기는가 하면 진영과 잠자리를 하지 않은지도 꽤 됐다. 진영은 몰래 사설탐정에 의뢰해서 6개월 전 남편이 후배와 숙박업소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된 영상을 받았다.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진영은 ‘바람잡이’ 사이트를 통해 상대방이 발뺌할 수 없게 증거를 철저히 수집하라는 노하우를 얻어 이혼을 준비 중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진영에게 남은 시간은 단 3일뿐이다. 이혼을 한들 안 한들 큰 의미가 없어졌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바람잡이’ 회원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익명 메신저에 한 줄 입력한다.
‘저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바람피운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답글들이 주르륵 쉴 새 없이 달린다.
‘어머, 어떡해요.’
‘속상하시겠어요.’
‘제가 다 억울하네요.’
‘남편 카드 가지고 계시면 백화점 명품관에 진열된 물건들 싹 다 사버려요.’
‘그걸 잘라버릴 수도 없고… 참…’
‘급소나 한 대 차버려요.’
‘혹시 자녀가 있으시면, 그냥 눈 감아주세요. 남은 자식도 생각해야죠.’
메시지가 끊임없이 달린다.
‘혹시 증거자료 있으시면 남편 회사에 뿌려버리세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피하지. 복수하는 시간도 아깝네요.’
‘제가 복수를 해봤는데요, 뭘 해도 속이 시원하지는 않아요.’
‘복수하는 데 아까운 시간 쓰지 마세요. 본인 위해서 남은 시간 쓰세요.’
‘음경을 골절시켜 버리세요.’
‘실제로 불륜하는 놈들 중에 음경골절돼서 새벽에 응급실 오는 놈들이 꽤 있대요. 이래 골절되나 저래 골절되나 지 팔자죠.’
‘만약… 저라면 그냥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 보낼 거 같아요. 바람피운 놈한테 시간 쓰는 것조차 아깝네요.’
진영은 메시지를 읽다가 포털 사이트에 ‘음경골절’을 검색해 본다. 내용을 찬찬히 읽는다.
‘음경에는 뼈가 없다. 발기는 음경의 발기해면체에 혈액이 차면서 단단해지는 현상이다. 이렇게 발기된 음경에 다른 방향으로 압력이 가해져서 음경해면체의 백막이 찢어지는 현상이 음경골절이다. 사실상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지는 것인데, 이때 '뚝'하고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서 음경골절이라는 명칭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