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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18. 2024

계란이 삶아지는 동안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14

나의 아침은 거의 삶은 계란이다. 코로나 시기부터 지금껏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보면 확실히 간편하면서도 착하게 건강한 먹거리 중 하나다. 나에게 계란 삶는 순서를 지키는 건 아주 간단하지만, 굳건하다. 별로 그렇지 못한 사람인데, 계란을 삶으면서 조금은 나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 예상하지 않았던 변수에도 흔들림이 없다. 인덕션 앞에만 서면 무의식 속에서 그 순서가 나열된다. 공간에 밴 습관이 몸을 통해 펼쳐지는 순간이다.  


((삶아지는 계란이 나에게 묻는다....'그래, 몸이 기억하는 게 습관인 알았지? 그렇게 습관은 몸에 배는 줄 알았지? 그런데 몸의 반응은 공간에 따라 달라. 사무실에 있을 때와 너 침실에 있을 때의 습관이 꼭 같니? 그 차이가 너의 무의식 속에서 이중적인 너를 스스로 이해 못 하는, 일종의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거야. 그걸 피하려고 외면하는데 익숙해졌을 뿐이지. 너의 진짜 습관은 공간마다 너의 몸을 빌려 드러나는 것일 뿐!'))


먼저 냉장고에 있던 계란 한 두 알을 미리 꺼내 놓는다. 며칠밤을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 대기하던 계란. 몸을 바짝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끓는 물에 집어넣어 지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 그러면 바로 쭈욱 하고 금이 간다. 속은 냉랭한데 바깥만 갑자기 뜨거워지면 어쩔 수 없을 거다. 가을, 겨울에는 특히 더 속이 밖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삶아지는 계란이 나에게 묻는다....'어느 공간이나 그 공간을 먼저 사용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질서와 규칙이 존재해. 그것들을 네 것으로 그대로 또는 수정해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 공간에서 너의 습관이 되는 거였어. 거꾸로 너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불편한 타인이 될 수 있는 존재고!'))


금이 간 계란 안에서는 노른자를 감싸 안고 있던 흰자가 허연 거품을 뿜어 내면서 냄비 안을 가득 채운다. 거품 때문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잘 익어가는 계란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누룽지인지, 북어대가리인지 흐려진 본질에 아침부터 상상으로 믿을 뿐이다. 게다가 다 빠져나온 흰자 때문에 노른자가 반숙의 맛이 아니라 물(에 오랫동안 씻은) 맛이 강하게 고유의 맛이 반감되는 게 가장 큰 손해다. 


((삶아지는 계란이 나에게 묻는다....'살다 보면, 먹고살아내다 보면 본질을 잃었다 싶을 때가 있지 않니? 꽤나 자주일걸! 정의와 사명감이라고 외칠 수도 없는 상태까지 지나쳐 버린 경우 말이야. 본질은 기본선이다. 인간성을 잃지 않을 기본선. 결국, 그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야, 흐려지는 본질을 반복해서 그어주는 수밖에 없어. 쓰던 지우던 구체적인 방법 역시 네가 결정하고 실천해야 하는 거라고!')) 


두부를 덮이는 데 사용하지 못하고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덤이 된다. 일어나 양치를 하러 가기 전, 냉장고에서 인덕션 옆으로 계란을 꺼내 놓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아무리 작은 거라도 시작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양치하고 따뜻한 물 한잔 끓여 마시는 동안 물이 끓기 시작하면 계란을 집게로 천천히 넣는다. 손가락으로 집어넣으면 뜨거워져 계란을 마지막에 던지듯 놓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삶아지는 계란이 나에게 묻는다....'몇 날 며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놓고 발표날 다른 시스템에 파일을 집어넣는 꼴이야. 자동 저장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 311페이지에서 파일을 날려 먹는 경우지. 여유가 넘치고 쉼이 있는 휴가를 떠나겠다고 다짐한 공항에서 여권을 챙기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는 때처럼. 너무 잦은 악마의 출현은 디테일을 놓치는 습관에 있어!'))  


시간을 설정한다. 7분이면 노른자가 흘러나올 정도의 반숙이다. 8분에서 30초 정도를 더 익히면 노른자가 흘러나오지 않고 촉촉한 반숙이 된다. 그 보다 더 오래 삶으면 완숙이 된다. 이 시간들은 이런저런 시도를 먼저, 오랫동안 반복해 본 많은 생활 속 선배들이 알려주고 있지만, 나만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최종적인 나의 결론이다. 언제나 이게 중요하다.  


같은 시간이어도 그와 나를 둘러싼 물리적, 심리적 환경은 크건, 작건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 차이에 대한 자기 이해 없이 무조건 좋다고, 크다고, 멋지다고 따라 하는 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나의 일상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이런 잘못된 자의식을 갖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노른자가 흘러나올 정도의 반숙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반숙은 우리 집 인덕션에서 딱 7분 동안 익는다. 


((삶아지는 계란이 나에게 묻는다....'토론에서 내가 이겼다면 내가 정말 옳은 걸까? 설득을 당한 상대는 완전히 틀린 거고. 그럼, 네가 졌다면 넌 엉망진창인 사람인 거고? 둘 다 옳고,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네가 가진 신념이 어느 선부터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어? 네 입맛에 맞는다고 모든 이들에게 맛집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너의 기준이 네 것일 뿐이야!)) 


7분. 이 시간은 나의 하루 최소 운동량이다. 내 몸이 물리적 환경에, 나의 의식이 일들에, 사람들에 부대끼며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는 날이더라도 이미 그날을 시작하기 전, 7분은 나를 위해 운동을  할 수 있다. 아마 내가 아침마다 계란을 삶는 심층적 의미인 것 같다. 싱크대 위에 손가락만 살짝 올려놓고 뒤꿈치 들기 1분, 싱크대를 잡고 완전히 앉았다 일어나기 1분, 반만 앉았다 일어나기 1분, 45도 뒤쪽으로 다리 들어 올리기 1분, 팔 굽혀 펴기 1분. 그리고 나머지 2분은 플랭크. 


인덕션 타이머의 선명한 붉은색 숫자가 7, 6, 5로 바뀌면서 동작의 시작과 끝을 극명하게 알려준다. 동작을 하는 동안 끓어오르는 물속에 흰색(때로는 살구색) 계란이 냄비 바닥과 벽면에 돌돌돌 하며 미세하게 부딪히는 게 더 경쾌해진다. 이러다 보면 그 동작을 몇 회를 했는지는 결코 중요해지지 않는다. 어제까지 동작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횟수가 오늘의 나를 나약하고, 무능하고, 표리가 부동한 존재로 순간 만들어 버리는 불쾌함이 생기지를 않는다. 


((삶아지는 계란이 나에게 묻는다....'몸을 단련하면서 마음을 내팽개쳐버리는 꼴을 항상 경계해야 해. 자존감이 체력에만 매달려 언제나 원 뿔러스 원 세트처럼 동반 하락하지 않으려면. 몸이 마음을 끌고 갈 때도 마음에 몸이 끌려 갈 때도 다 너니까. 낙엽이 다 떨어져도, 은행잎이 몽땅 떨어져도, 밤송이가 영글어 후드득 다 떠나버릴수록 더 잔잔하게 깊어지는 나무뿌리처럼!))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직접 계란을 삶기 전에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지혜로운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나도 상황에 따라 더 급해지고, 많이 방만해지고, 오히려 애매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좀 익숙해지면 거만한 마음이 올라오고, 당연한 듯 덜 감사하고, 다 괜찮은 듯 표현하면서 옹졸해지는 나를. 


내가 나이 잘 먹어간다는 테는 얼마나 지혜로운가에서 드러나는 게 분명하다.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잘려나가야 드러난다. 나도 잘려 나가야만 테가 드러난다면, 이제라도 나무가 되어야 할까 보다. 온몸으로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 다 맞으면서 그 자리에 묶여 어쩌지 못하는. 잘려 나가기 전에 지혜의 테가 스며 나오는 사람으로 살아내는 혜안을 내일도 삶아질 계란을 들여다보면서 여전히 물어 봐야겠다. 


너처럼 잘 삶아지려면, 어떻게 하면 나의 삶도 지혜롭게 잘 살아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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