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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03. 2024

소심해도 친절하고 대범해도 친절해야 하는 이유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16

8대의 런닝머신이 주르륵 이어져 있는 창가. 자주 올라가는 왼쪽 두 번째 러닝 머신 앞에는 자그마한 TV가 한대 있다. 그렇게 TV는 두번째와 세번째 사이에 걸쳐 있는 식으로 총 3대가 있다. 보통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볼륨은 0으로 해두고 화면만 본다. 일부러 뉴스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을. 그날은 일부러 볼륨을 조금 높여야만 했다. 5살 동생에게는 서툰 한국어 인사말을 하는 8살 언니가 꽤나 어른스럽게 보는 화면이 가득했기 때문에. 


러닝 머신에 먼저 올랐던 누군가가 맞춰 채널. 그대로 켰을 때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예쁜 자매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를 찾아가는 프로그램. 나는 왠지 모르게 그런 프로그램에 자꾸 눈이 머문다. 5년 전부터 포천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서른 일곱의 아빠. 서른 둘의 엄마와 어린 자매는 7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다시 2시간 넘는 지하철과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썰렁한 바람에 먼지만 일어나는 공단 어디쯤에 내렸다. 


물어 물어 아빠가 근무하는 공장을 찾았지만 아빠는 없었다. 일하고 있는 외국인 아빠 동료들 명과 눈을 맞추며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습니다. 아빠 00 이를 찾습니다'라는 말을 한국어로 반복해서 물어보는 8살 언니. 그렇게 언니는 동생과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엄마를 이끌다시피 해서 아빠가 쉬고 있다는 근처 낚시터를 찾는다. 아마 방송국님들의 연출이지 싶었다. 


공장 인근 낚시터. 그곳은 네팔, 스리랑카,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유일한 쉼터인 듯 했다. 이벤트 경품 추첨을 한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고 주인공 아빠를 포함해 그날 비번인 사람들은 거기 가 있었다. 영상 통화를 5살 동생의 가장 소원이 자전거 타는 거라는 알게 아빠는 마침 2등 경품이 분홍색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고 응모를 거였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가 자전거보다 1등 세탁기가 더 좋은 거 아니냐는 말에도 무조건 자전거가 제일 좋다고 한 이유다. 


공장 대표와 낚시터 주인이 합작한 몰래카메라였다. 물론 방송국님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였을테고. 방송작가의 시나리오 대로 당연히 자전거 경품은 아빠와 가장 친한 동료에게로 돌아간다. 아쉬움 진한 표정이지만 주인공 아빠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축하 박수를 치는 순간, 낚시터 데크 한편에 있던 커다란 세탁기 종이 박스 덮개를 뚫고 두 자매가 불쑥 올라온다. 나를 포함 TV속 누구나 예상되었지만 혼자만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아빠는 순간 얼음이 된 채 큰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박스 안에 갇힌 듯한 자매가 얼른 박스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이에 십 몇초간 계속. 문제는 나였다. 뻔한 연출, 뻔한 장면, 뻔하게 예상되는 상황인데 주인공 아빠를 보면서 나도 터져 버린거다. 정말 갑자기. 러닝머신 위에서. 참아야지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간 나나한테 놀랐다. 8개의 러닝 머신 위에는 말고 건너, 다시 건너에 비슷한 시각에 자주 보는 분들이 걷고 달리고 있었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는 사이들. 


어쩔 수 없이 내 얼굴 상태를 가리려면 속도를 높히는 수 밖에 없었다. 러닝 머신 속도를 7에서 10으로 올렸다. 띡띡띡띡띡, 아주 급하게. 눈물이 땀인냥. 일부러 더 헉, 헉 호흡을 크게 내뱉으면서. 다행이 장면이 바뀌었다. 어둑한 조명에 화면상에서도 눅눅하게 느껴지는 침대위에 걸터 앉은 부부. 직접 구워서 동그랗게 싸가지고 커다란 고향식 빵을 아내가 조금 잘라 주인공 아빠입에 넣어줬다. 그러자 커다란 덩치의 아빠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얼굴을 카메라 바깥으로 피했다. 


이런. 다시 시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심장은 터질 듯 한데도 나도 다시 눈물이 흘렀다. 다행히 몇분전보다 땀이 더 많이 흘렀지만, 눈속에 올리브유를 잔뜩 뿌려놓은 듯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윈도 브러시가 고장나 폭우가 내리는 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언젠가의 기억처럼. 땀과 섞여 양쪽으로 지나쳐 입속으로 짭조름한 눈물이 스며드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일부러 눈동자를 자주 깜빡였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마치 황토방에 오래 있다가 습식 사우나에 방금 들어온 얼굴처럼 변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밥먹으면서 아내하고 따님한테 그러니 원래 그러듯 놀린다. 그런데 그 눈빛들은 꽤나 오래전부터 같은 편이 된 듯 하다. 눈물하면 서러운 두 사람 사이에서 그렇게 태어나서 먹고 사느라 시종일관 진지 모드였던 내가 단박에 명랑해지고 쉽게 눈물 흘리는 요즘을 더 사랑해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안 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울 정도의 연기력은 없지만. 


얼마 전 저녁밥을 먹던 열아홉 따님이 무심코 물었었다. 아빠는 얼마동안이나 자기를 안보고 살 수 있느냐고. 갑자기 물어본 질문에 얼른 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나는 한 달 정도?'라고 따님이 먼저 말한다. 뻥인거 다 안다. 따님의 마음속에는 이미 계획이 다 있다는 것을. 지금하고 있는 공부 결과가 어느 정도 나오면 그걸 들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러 바다를 건너가려고 한다는 것을. 물론 플랜 A가 그렇다. 류시화 시인이 말했듯이 플랜 A까지만 인간이 계획하는 것이고, 플랜 B부터는 신이 계획하는 것이라고 해도 떠나보내는 건 매한가지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을 떠나 보내야만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기도 한다. 안다. 내가 그렇게 떠나온 것처럼. 35년전에 일곱 먹은 아들을 혼자 타지로 보낸 경호씨, 순자씨. 당신들의 마음이 이 마음이었을까 하고 요즘 많이 느낀다.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듯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하는 순자씨의 마음을. 그러다 보면 산책을 하면서도 우연히 스치는 모르는 타인들도 꽤나 많이 만나지 못하고 살지도 모른다. 


뻔하지만 뻔하게 마음이 아린 게 사랑이다. 보고 싶을 때 단박에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걸 살다 보면 자주 느낀다. 같이 갔다가 출장때문에 하루 일찍 먼저 올라와 혼자 들어오던 어둑한 집에서의 (지인네에 맡겨둔 타닥이가 달려나와 반기는 소리조차 없던) 짧은 하룻밤의 긴 허전함처럼. 어느 누구 하나 마음은 물론 몸 어디에라도 깊은 사연이 담긴 크고 작은 상처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인종도 성별도 국적도 관계없이. 그것만 생각해 보더라도 소심해도 친절하고 대범해도 좀더 친절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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