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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9. 2023

햇살

사진: 일팔청춘 따님

토요일 오전 10시 13분. 집 안에서 베란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넘치는 봄이다. 앞동과 옆동 사이로 멀찍이 큰 도시로 이어진 산이 연초록으로 변하고 있다. 창가에 기대어 햇살을 어깨로 받아 본다. 옆에서 타닥이 가 내 허벅지에 엉덩이를 탁 붙히고 앉아 햇살을 새하얀 등으로 마음껏 받아 들인다. 허벅지가 따듯하게 간질간질하다. 구구거리는 비둘기 서너마리가 난간에 부드럽게 내려 앉는다. 짝인 듯 두마리가 서로 부리를 쪼아 준다. 그러다 타닥이를 슬쩍 내려다 본다. 사회성 떨어지는 타닥이는 두 발로 유리창을 뚫고 나갈 기세로 크르렁 거리며 짓어댄다. 난 사자인 줄. 구구거린 세월이 넘치는 지 비둘기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저 지들 입맞춤에만 신나다 보란듯이 태양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본능으로 크르렁 거렸지만 우리집 9년차. 타닥이도 아는 것 같다. 유리밖이라는 걸.  


오늘은 토요일 한 가득 타닥이와 둘만 남았다. 참 오랜만에 둘이다. 아내님도 따님도 없다. 둘 다 좋아하는 이들과 마음껏 봄을 나누러 나갔다. 너란 봄, 봄, 봄봄봄. 어느 노랫가사처럼 서로가 봄이라는 걸 알려주고 확인하려고. 사람을 쉽게 사귀지 않는 아내는 절친들과의 오래된 모임이 두개다. 하나는 발령 동기 모임. 그 모임에서는 아내가 가장 언니다. 아내만 기혼일 때 만난 그 모임에서 출발한 네 가족. 모두 아이들이 둘씩 있다. 스물 하나 우리 아드님을 시작으로 초6까지 한살씩 차이가 난다. 올해 기준으로 딱 중2만 없다. 열 여섯이서 캠핑, 여행을 자주 같이 많이 다녔다. 우리 아드님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 모임에서는 아내 역할이 보듬는 거다. 자식들, 남편, 집안 문제에 대한 지혜로운 해법을 나누고 듣는. 나갔다 들어오면 누가 어떤 정신적 고민이 있는지 이야기를 가끔 나눈다. 그 모임은 대부분이 오늘같은 토요일에 만난다. 주중에는 한 시간 반 거리에 둘씩 떨어져 살기 때문에 어렵다. 오늘은 그 엄마들 넷의 모임이다. 남편들도 잘 아는 사이다. 여기서도 내가 가장 몸나이는 많다. A는 무역회사 영업으로 베트남에 혼자 거주한 지 이년이 넘어 간다. B는 새로 맡은 교무부장 업무 때문에 오늘도 출근했다고 한다. 막내 C는 집에서 아들 둘을 태워다 주고, 태워오는 임무 수행중. 그렇게 남편들은 오늘도 모일 수가 없는 상태다.     


아내의 또 하나의 모임은 이름도 있다. 은자매. 여기 역시 네 명. 각자의 이름에 모두 은이 들어가서 아내가 이름 붙힌 모임이다. 직접 이름을 붙히고 총무까지 자처하는 걸 보면, 살아가는 데 힐링이 많이 되는 모임인가 보다. 옆에서 보면 앞에 모임보다 뒤에 모임에 나갈때, 들어올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매달 얼마씩 자동이체되는 돈으로 평소에는 먹지 못하는 것들을 일년에 두어번 정도 만나게 먹으러 다닌다. 아마 그 모임에서는 자녀들이 다 성인이 된 언니들의 막내라 많이 안겼다 오는 가 보다. 그 모임은 주로 평일 저녁시간에 맞춘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를 평생 실천하는 언니들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남편들끼리 - 여기서는 나도 막내란다 - 얼굴 한번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적이 있다. 


물론 그 형님들은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하지만 가끔 들어 그림이 그려지는 정도다. 아내가 가장 따르는, 같이 근무하는 언니 남편은 여전히 지방 한 미술관 관장으로 근무중. 아마 내가 알고 지낸 이후 평생을 그렇게 주말, 아니 가끔 부부로 살아가는 것 같다. 각자가 서로의 시간, 혼자의 시간을 아주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십대 후반의 딸이 하나 있는데, 얼마전에 다국적 기업에 멋지게 취업했다고 들었다. 물론 부부사이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그렇게 아주 평화롭게. 


일팔 청춘 따님은 일주일 일정이 다른 탓에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 강남 한복판까지 나흘을 출퇴근 하듯 장거리 버스 여행을 하기 때문이기도. 그러다 오늘 아내한테 생긴 공짜 영화티켓 덕에 한달여 전 13시간의 월드 투어를 했던 친구와 다시 만나기로 했단다. 낮에 영화를 보고 마라탕에 꿔바로우까지 알뜰 살뜰이 먹고 돌아 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둘다 나갈 때 이 옷 저 옷을 입으면서 서로 추켜세워주고, 뼈를 때리면서 그렇게 맑고 상큼하고 요란(?)하게. 


나도 그렇게 안에서만 햇빛을 쬐다 걷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혼자인 시간에 혼자하는 산책을, 하는 생각이 들렸을까? 타닥이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나만 남겨두고 다 나갈꺼야 하고 올려다 본다. 그래, 타닥아 우리 같이 산책가자. 살짝 창문을 열어 봤다. 햇빛은 따듯하고 좋은데, 바람이 살짝 아직은 찬 기운이 조금 남아 있었다. 봄비뒤에 찾아 온 꽃샘추위다. 그래서 나는 얇은 검정색 맨투맨을 입고 카키색 머플러를 둘렀다. 맨투맨은 일산에서 머플러는 헤이리에서 아내가 사준거다. 그리고 타닥이는 따님이 사다 준 얇은, 개나리 같은 노란색 옷을 입혀 우리 둘도 나왔다. 그렇게 원래 잘 가던 초등학교 옆 골목을 벗어나 도로를 하나 건넜다. 조금 더 가면 주욱 이어지는 근린 공원. 그곳에서 오른쪽 작은 숲길로 쏙 빠져들 듯 돌았다. 거기까지, 타닥이는 벌써 응가를 시원하게 두번이나 해댔다. 덩이 아주 건강해 보였다. 장이 다 빠져나오는 줄. 


그렇게 골목 끝에 자리잡은 동네 커피집 - 이 집 주인장이 돌림병 기간중에 바뀌었다. 그 전 주인장님한테서 돌림병 전 커피 내리는 걸 석달동안 배웠었다. 커피가 하도 맛나서 자주 들르다 그냥 취미로 - 에 다달았다. 그쯤되면 타닥이도 슬쩍 터덜터덜 쉬고 싶은 듯 걷는다.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가 꽤나 실룩거린다. 그렇게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랑 츄러스 하나를 시켜 마셨다. 그러는 사이 타닥이는 자동차 구경, 사람 구경, 나는 타닥이 구경. 햇살처럼 넘치는, 변덕스러운 봄. 여름 가기전에 살짝 윙크하듯 짧다. 하지만 오늘 같은 햇살은 산불, 미세먼지, 황사, 추위, 감기, 비염, 알레르기를 몽땅 잊게 만들어 주기에 아주 충분하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봄이다. 아내도 따님도 나도 타닥이도 너도 나도 모두 봄처럼 그렇게 화알짝 화알짝 피어나는 님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토요일 오후. 단짠보다 섬섬하지만 맛난 짧은 동네 여행으로 나의 봄은 더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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