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의 습격을 이겨내는 법

대학원생 6주차의 일기

by 윤지민

중간고사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대학원이라서인지 과제로 대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 과목은 시험을 본다. 오픈북이 아닌 서술형이라기에 절망했으나 A4 3장을 제한으로 소위 합법적인 컨닝페이퍼를 만들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그나마 희망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뭔가가 생겼기 때문일테다. 아주 간만에 현실로 다가온 '시험'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불안감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불안감과 두려움이란 걸 꽤나 잘 다스리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매번 깜짝 놀랄 정도로 예고없이 찾아올 때가 있다. 30년 인생동안 나름대로 얻어낸 불안감을 다스리는 노하우가 있다면 나의 감정상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감정의 근원을 찾아내서 인지함으로 감정소모를 절제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대체 왜 이런 불안감이 찾아왔을까?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후 나를 찾아왔던 불안감은 항상 '취직자리를 알아볼까?'라는 의미없는 생각과 함께왔다. 나라는 사람을 고용해줄 회사도, 내가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조직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으면서도 불안감이 엄습하면 습관처럼 채용 정보 사이트를 접속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를 찾아온 불안감이 아이러니했던 건 나는 그러한 고용안정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교를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면 이 불안감이 해소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를 시작한지 한 학기가 채 되지않아 또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 불안감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런데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 인생 가장 큰 감정적 동요는 고용안정성이 가장 보장되었던 서울시 근무 당시였던 것 같다.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제대로된 직장이었는데 그 곳에서 나는 가장 큰 불안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혔고, 치기어린 용기 따위로 포장했었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이제는 직장을 그만둔 용기가 대단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정말 그만두지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때는 매 주 심리상담을 받았을 정도로 괴로웠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나 직장이 힘들어도 적응을 하고 그곳에서 견뎌내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는 못할까. 내가 잘못된걸까.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지금 어쩌면 나를 지켜줄 '학교'라는 소속이 생기며 그때와 비슷한 불안감이 찾아온 것 같다.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풀타임으로 직장을 다니면서도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연구실을 정하고 하고싶은 연구주제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어디쯤에 와있는걸까 계속 비교하며 생각하게된다. 또 다시 군중에 속하니 나를 나로서 판단하는게 아니라 남들과 비교해서 판단하기 시작하고 '왜 나는 더 잘하지못할까' '왜 나는 더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걸까'라고 스스로를 질책하기 시작한다.

결국 돌이켜보면 나를 두렵게 만드는 불안감은 상황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는다.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도 나는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않아 불안했던 게 아니었다. 문득 회사라는 조직에 속해서 차근차근 성장하는 사람들과 홀로 서있는 나를 비교하는 순간, 작아지고 보잘 것 없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남들 앞에서서는 '남들이 알아주는 스펙'이 아닌 '나만 알아도 괜찮은 스펙'을 쌓으라고 당당하게 강연하면서도 나 역시 내 일에서는 아직까지도 항상 적용이 어렵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 있든 나는 '나'로서 바로 서야한다고 되뇌인다. 내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좌절하거나 실망할 수는 있지만, 남들의 기준을 적용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내가 부족한 부분부터 눈에 보이면서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나는 지금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있다. 학업을 선택한것도 나 자신이고, 지금 준비하고있는 한국관광스타트업협회 창립 일도, 지자체 협력 대학생 관광진로프로그램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하게되는 외부강연도, 틈날 때마다 쓰고있는 국내여행 원고나 브런치 글도 모두 내가 선택한 일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나한테 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칠 명분이 하나도 존재하지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 하나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할을 수행해나갈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일이 부담스럽더라도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끝까지 해내고자하는 동기부여가 더욱 절실하고, 만약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정한 기준이기에 유연할 수 있다.

결국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찾아왔던 불안감을 또 이겨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남들의 기준'을 마주하고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아, 지금이 내가 나의 기준을 바로 세워야하는 시점이구나'라고 생각할테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스스로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인생의 컨닝페이퍼를 한 장 더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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