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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Apr 02. 2023

자전거로 평택 다녀오기

황구지천이 좋았다

코로나 3년 동안 자전거를 소홀히 했다. 별로 타지 않았다. 야영을 해본 지도 꽤 오래됐다. 4월을 맞아 1박 2일로 그 둘을 한꺼번에 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캠핑을 했다. 캠핑 장비를 배낭에 넣고 페달을 밟았다. 이틀 동안 150km를 달렸다.


서울에서 평택 가기는 1번 국도를 따라 달리거나 38번 국도를 따라 달리거나 하면 된다. 그걸 여러 번 해보았었다. 그러나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얼마나 긴장이 수반되는 피곤한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갓길을 따라 달리면 되기는 하지만 옆으로 맹렬하게 지나는 승용차, 트럭의 행렬은 여간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조용히 달리고 싶었다. 그런 길을 찾으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서울엔 강을 따라 참 많은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다. 한강은 그 으뜸이고 양재천, 탄천, 중랑천, 안양천, 불광천... 천(川)마다 자전거길이 잘 나 있다. 대부분 인도와 자전거길이 분리되어 있기까지 하니 여간 달리기 편하지 않다. 경기도 곳곳에도 그런 길이 돼 있으니 평택까지도 있지 않을까 싶어 길을 찾아 나섰다.


안양시 석수동에서 안양천을 따라 달리면 안양 시내를 통과해 의왕을 지나 수원으로 향하는 지지대고개 부근까지 안양천 자전거길이 있다. 그 길을 달려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공사중이라 길이 끊겨 있어 1번 국도로 나왔고 지지대고개에 이르러 휴게소에서 쉬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지지대고개에서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면 이내 교차로에 이르는데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좀 엉뚱한 곳으로 달려야 했고 간신히 서호천 자전거길을 찾아냈다. 그 후로는 서호천을 따라 줄기차게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파트촌 사이로 서호천은 흐르고 있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드디어 서호가 나타났다. 광대한 호수다. 경관이 좋으니 찾는 시민도 많다. 서호 남쪽 끝에서 서호를 벗어나 서호천을 달려 기안교에 이르니 이때부터는 황구지천이었다.


그러나 황구지천은 얼마 못 가서 천변 길이 끊겨 있었다. 수원비행장 남쪽에 군부대가 있었고 길은 가로막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산으로 향해 용주사쪽으로 달렸다. 가파른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달리니 유서 깊은 사찰 용주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주사 앞을 지나 안녕초등학교까지 간 뒤 길을 좀 헤매긴 했지만 결국 황구지천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천변이라야 길이 호젓하니까 말이다. 과연 길은 평탄하기 그지없었다. '제방관리용도로 자전거도로 겸용'이라는 표지가 곳곳에 눈에 띄었는데 거의 자전거도로용인 셈이었다.


황구지천을 따라 좀 지루하지만 편안한 라이딩을 실컷 즐겼는데 오산비행장이 가까워 오면서 황구지천은 진위천과 합류했다. 진위천이 더 큰 강이다. 그리고 라이딩은 벽에 부닥쳤다. 길이 끊겨 있었다. 다리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었고 대략 난감했다. 되돌아가서 우회로를 찾아보자니 길을 모르겠고 그냥 통과하자니 너무나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부딪쳐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우선 시멘트 바닥 위에 올려 놓고 몸만 간산히 좁은 길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반대편에서 그 일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렇게 위험지대를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진위천에선 진기한 경험도 했다. 말을 탄 기수가 진위천 천변에서 말을 몰고 있었고 때론 첨벙거리며 말이 강을 건너기도 했다. 부근은 미군 비행장인데 저이들은 미국 사람일까. 알 수 없었다.


마치 서부영화를 보는 듯하다



진위천을 그렇게 지나는데 낚시허용구역이라는 표지가 나타나면서 낚시꾼들이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온 차도 참 많았다. 그 지대를 지나면서 두번째 난관에 부닥쳤다. 역시 길이 끊겨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쏟아서 겨우 위험지대를 돌파했다.


이제 길은 진위천에서도 멀어졌다. 38번국도와 만났고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갓길을 맘을 졸인 채 부지런히 달려 평택 시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통복시장도 지났고 미리 점 찍어 둔 덕동산근린공원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이었다. 현충탑이 있었고 덕동루라는 근사한 누각이 서 있었다. 공원에 텐트를 펼치고 밤을 맞았다. 일교차가 꽤나 심해 여벌 옷을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매트를 깔고 침낭 안에 들어갔지만 오들오들 떨리는 걸 어쩌지 못했다.


낡이 밝았다. 아침은 통복시장 부근으로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문 연 식당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한 군데 어느 식당에 사람들이 붐볐다. 핸드폰 충전을 해야겠기에 식당에 들어가기 전 물어보았다. 밥 먹으면서 핸드폰 충전할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종업원이 서툰 한국말로 "아이폰은 안 돼요." 하지 않는가. 난 갤럭시므로 냉큼 들어갔다. 종업원, 손님 할 것 없이 죄다 중국사람이었고 한국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메뉴도 죄다 중국음식... 순두부가 있기에 시켰는데 30초도 되지 않아 나왔다. 그리고 그 순두부는 잘 보지 못한 순두부였다. 중국식으로 색깔이 여간 짙지 않았다. 향채도 들고 양념이 중국풍이었다.


참 특이했던 건 식탁에 놓인 통마늘이었다. 먹고 싶으면 손님이 통마늘을 까서 생마늘을 먹는 식이었다. 과연 다른 테이블에 보니 손님이 통마늘을 까서 생마늘을 휴지 위에 올려 놓고 먹고 있었다. 들려오는 말은 온통 중국어였는데 이따금 한국어가 들렸지만 지독한 연변사투리였다. 연변동포보다는 순수 중국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얼굴에서 삼국지에서나 본 듯한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도저히 한국사람들 중에선 보지 못한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나마 한국 속의 중국을 경험하고 나왔다. 통복시장을 빠져 나와 38번 국도로 향했고 길을 지나쳐서 오성면까지 갔다가 되돌아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전날 맞닥뜨렸던 두번째 위험지대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안화리 마을을 지나니 편한 길로 달릴 수 있었다. 진위천에서 또 말떼를 만났다. 전날에는 두 마리만 보았는데 이번에는 9 마리가 한꺼번에 단체 훈련을 하고 있었다. 기수들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진위천에 가면 말을 만날 수 있다.


전날 만났던 위험지대에 또 이르렀다. 똑같은 방식으로 아슬아슬하게 구간을 통과했다. 무사히 건너고서 간담을 쓸어내렸다. 언제 다리가 완공될까. 그 전에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 평탄하지만 지루한 제방관리용도로와 저전거도로 겸용인 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안녕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용주사 앞도 지나 고개를 넘어 기안교까지 왔다. 무심코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을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실로 장관을 만났다. 황구지천애 벚꽃축제를 한다 했는데 바로 그곳이었다. 실로 황홀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곧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사람이 너무 많아 자전거를 타고 그 벚꽃터널을 지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벚꽃천지를 맛보고 오던 길로 되돌아나왔다.


기안교에서 전날 왔던 길로 부지런히 달리니 수원비행장 부근이었고 드디어 서호에 이르렀다. 전날 가지 못했던 서호의 나머지 반을 조심스레 달렸다. 전날과 합치면 서호를 한 바퀴 다 돌았다. 서호천을 따라 줄기차게 달려 노송공원에 이르렀고 마지막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장동 파장IC 부근은 온통 자동차 위주의 교통 체계이고 보행자나 자전거는 도무지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할 수 없이 위험하게 교통 위반을 한 번 하고서야 지지대고개로 향할 수 있었다. 지지도고개를 넘은 후로는 익숙한 길이어서 무사히 집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이틀 동안 150km를 달려서 평택을 다녀왔다. 국도를 달리는 위험을 피해서 안전하고 한적한 자전거길을 찾아나섰지만 아직은 불가능함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차가 너무나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는 그렇다. 차는 위험도 하지만 굉음이 여간 심하지 않다. 옛날로 돌아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딜 가나 차들이 신호를 참 잘 지킨다는 것이다. 위반하는 차를 보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안양천, 서호천, 황구지천, 진위천을 따라 안양에서 평택까지 이어지는 길 중에서 황구지천을 따라 난 자전거길이 제일 조용하고 넓고 평탄했다. 평온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좀 더 젋었을 때만 해도 미친 듯이 달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옆으로 차가 쌩쌩 지나가도 국도로 달려야 달리는 것 같았다. 이젠 아니다. 차가 없는 곳을 찾는다. 서울에서 평택 사이에 그런 곳이 있었다. 황구지천에 나 있는 제방관리용도로 자전거도로 겸용인 길이 그렇다. 진위천도 일부 구간은 그런데 거기서는 심심찮게 승마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번엔 비록 다양한 구간을 경험했지만 다음에는 좀 더 아늑하고 한적한 길만 다니는 여행을 하고 싶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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