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소리의 복권을 염원하며
빠델이라는 운동 종목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신문기사를 읽고서다. 빠델은 테니스와 스쿼시를 합해 놓은 운동이란다. 라켓으로 하는 건 맞는데 라켓에 끈이 매여져 있지 않고 그저 구멍만 숭숭 나 있단다. 라켓도 다르지만 공도 다르단다. 테니스 공의 내부 압력이 빠델 공보다 더 높단다. 코트의 크기도 테니스 코트가 더 넓고 무엇보다 빠델은 바닥뿐 아니라 벽면도 이용한다. 매우 정신없을 것 같다. 빠델은 보통 복식으로 한단다. 단식을 하기엔 버거운 모양이다.
빠델이란 운동이 대체 언제 생겼는지 궁금했다. 알아보니 1969년에 멕시코에서 처음 생겼다고 한다. 사업가였던 엔리케 코르쿠에라(Enrique Corcuera)가 자기 집 뒷마당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공간이 좁아 테니스 코트보다 작은 코트를 만든 뒤 공이 밖으로 나가는 걸 막으려고 벽으로 둘러싼 게 빠델의 출발이었다고. 이걸 본 스페인 왕자 알폰소 데 오엔로에-란헨부르그(Alfonso de Hohenlohe-Langenburg)가 스페인 마르베야에 같은 코트를 만들어 운동하면서 빠델은 빠르게 유럽과 다른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코르쿠에라나 알폰소 데 오엔로에-란헨부르크는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빠델은 널리 퍼졌고 한국에도 한국빠델협회가 있고 용산역 아이파크몰과 대전 봉산동에 빠델 경기장이 있다.
빠델이란 운동 종목도 신기하지만 필자는 빠델이라는 말 자체에 더 주목하게 된다. 빠델은 스페인어 padel에서 온 외래어고 외래어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외래어 표기법의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원칙이 있음에도 파델이 아니라 빠델이니 어찌 눈길이 가지 않을까. 여기서 나는 199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홍세화 작가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미 30년 전에 나온 그 책의 제목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가 아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다. 외래어 표기법을 정면으로 거슬렀다.(지금도 국어사전에서 빠리를 찾으면 "규범 표기는 '파리'이다."라 돼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둔 역사는 뿌리깊다. 이미 1930년대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1986년 외래어 표기법 고시 때도 이어졌고 지금까지 그대로다. 그러나 책 제목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그랬고 한국빠델협회가 이미 그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오늘 신문 기사도 그렇다. 어디 그뿐이랴.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쏘나타, 투싼, 싼타페 등과 같은 브랜드 이름은 거리낌없이 된소리를 쓴다. 외래어에서 된소리를 쓰지 못하게 한 방침이 현실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필자는 학생 때부터 된소리에 대한 공격을 들어왔다. 소주라 하지 않고 쏘주, 쐬주라 하는 것을 질타하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된소리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츰 된소리에 대한 공격이 부당하다는 인식이 들기 시작했다. 특정 소리를 터부시하는 것은 전연 근거가 없는 것이다. 된소리는 발음할 때 성대 긴장이 동반되는 소리일 뿐이다. 된소리는 필요하기 때문에 음운체계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쌀, 딸, 떡, 뽕, 땅, 빵, 까까머리, 오빠, 깨끗하다, 깔끔하다, 똘똘하다, 아리땁다, 쓸쓸하다, 빠르다 ...... 등 수없이 많은 된소리가 국어 어휘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된소리를 터부시한다고?
외래어를 무조건 배격하면 우리말의 자원이 줄어들듯이 음운체계 안에서 특정 음운을 차별하면 표현 능력이 줄어든다. 된소리에 대한 부당한 배제에 반대한다. 된소리를 좋지 않은 소리라 보는 것은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다. 뽀로로, 뽀빠이, 빠델 같은 말을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빠델을 보면서 된소리 해방 운동이 더욱 힘을 받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