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앱을 쓰기 시작한 지 십 년은 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급격히 퇴화한 내 기억력을 보조하기 위해 메모하는 버릇을 들이기로 한 것이 이제는 메모장 어느 구석에 어떤 내용을 넣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될 만큼 방대한 자료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 제목의 메모를 2024년 가을의 내가 남겨놓았다는 사실조차 2025년 봄의 나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한여름에 태어났다. 어려서는 여름방학의 가운데였고 직장에서는 동료들 대부분이 여름휴가를 갔을 정도로 한여름이었다. 덥고 더운 생일날이 지나고도 한국에서 살 때는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었다. 지긋지긋하리만치 긴 여름이었다. 그런데 몬트리올에서는 신기하게도 생일이 되면 절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낮에는 여전히 더운 날도 남아있지만 밤이 되면 18도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쌀쌀해지는 것이 가을이 금방이라도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퀘벡에 여행을 갔다가 햇볕이 뜨거워 모자를 사러 들어간 백화점의 매대는 이미 가을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미 여름옷 같은 건 7월에 세일해서 없어지고 가을에 시작하는 새 학기 준비로 바쁘다. 한여름에 태어났어도 가을을 좋아했던 내가 마당에 누렇게 변하기 시작한 아마릴리스를 발견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매미 껍데기가 마당 곳곳에 남아있고 밤이면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짧고 찬란한 몬트리올의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좋아하던 것이 좋아하지 않게 되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것. 내가 무더운 여름에 그토록 집착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텃밭에 심어 놓은 채소의 씨앗을 하나둘씩 받기 시작했다. 스낵 사이즈의 비닐봉지에 넣어 '파'라고 쓰자 사과나무의 가지치기를 도와주러 온 친구가 이게 '어니언'이라는 뜻이냐며신기해했다. 어니언은 우리말로 양파니까 서양의 파란 뜻이겠지. 양파란 것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파는 파인데 서양 파여' 하는 느낌이었겠지. 우리 어릴 때는 일본식으로 옥파, 다마네기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파는 파지, 어니언이 아니잖아. 나는 못난이 글씨로 꼭꼭 눌러 '파'라고 적은 집락을 내려보았다. 대파를 구하기 힘든 이곳에서 어쩌다 산 대파를 뿌리만 남겨 심었던 것이 매년 다시 나고 있다. 속은 텅 비고 키만 비죽하게 커버린 어설픈 파.새 땅에 어쭙잖게 정착한 나도 이런 모습일까? 언젠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되면 이곳 몬트리올에서 그리운 것은 아름다운 여름일까? 아니면 수북이 눈 내린 겨울일까? 그것이 궁금해지면서 봄의 나를 위한 메모장에 한 줄을 더 적어 넣었다. "마당일은 하루 한 시간만 할 것. 아프지 말 것", 알면서도 늘 잊는 그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