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하게 구운 빵에 브리 치즈를 바르면서 나는 몇 번이나 밖을 내다보았다. 새로 달아놓은 빨랫줄이 하얗게 빛이 나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어 커피에 우유를 넣다가도 일어나 바라보았다. 그 줄에 뭐라도 널어 보고 싶어서 수건 몇 장 세탁기에 돌리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2016년 봄에 이 집을 샀다. 1951년에 지어진 이 작은 건물의 몇 번째 주인이었을지 모를 누군가가 설치한 기둥은 너무나 높아서 거기 걸린 오래된 빨랫줄을 바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낡아서 딱딱하게 굳어진 피복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안에 다발로 꼬아 만든 쇠줄에 녹이 나 있어서 밝은 색 빨래는 널기도 꺼려질 정도였지만 2층 지붕 높이에 맞먹는 기둥에 올라갈 사다리도 배짱도 없던 참이었다. 사과나무 가지를 쳐내러 왔던 DJ가 뭔가 끼릭끼릭 소리를 내길래 돌아봤더니 낮은 쪽 빨랫줄 높이를 낮춰주고 있었다. 8년 동안 살면서 빨래 한 번 널려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했는데도 한 번도 키에 맞게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빨랫줄 안 바꿀 거야?" 그가 물었다.
"저쪽 기둥이 너무 높아"
그러자 고개를 한 번 휘젓고는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헌 줄에 새 줄을 연결해 돌리면 된다며.
맙소사, 한국도 아닌 캐나다에서 처음 하우스 오너가 되어 삽질하던 지난 8년 반이 그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집을 관리하는 일에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나는 줄자의 끝을 잡고 그의 지시대로 졸졸 따라가며 거리를 쟀다.
그가 확인하듯 물었다.
"몇 피트라고?"
"60피트, 왕복 120피트고 사선이니까 여분까지 150피트짜리 줄을 살게"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잊혀질 듯 말듯할 때가 되자 그가 다시 짬을 내어 와 주었다.
"좋은 테이프 있어?"
"좋은 테이프라 함은?"
"전선용 테이프"
"그런 거 없는데"
그는 차로 돌아가 공구 상자를 챙겨 왔다. 검정 비닐 테이프였다. '저걸 전선 테이프(Electrical tape)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하며 머릿속에 넣었다. 새 빨랫줄은 끄트머리를 헌 빨랫줄에 고정하고 내게 나머지를 건네주며 다짐하듯 물었다.
"이걸 들고 날 따라와. 천천히 풀면서. 알았어?"
"오케이"
쇠심지가 들어간 빨랫줄을 급하게 풀어내다 보니 지름이 점점 작아지면서 조이기 시작했다. 만약에... 놓쳐서 빨랫줄이 기둥에서 떨어져 버린다면 낡은 빨랫줄마저 잃는 것은 물론이고 크레인이라도 동원하지 않는 이상 두 번 다시 내 집 마당에 빨랫줄을 걸 방법은 없을 것이다. 50달러나 하는 빨랫줄은 이미 뜯었고 환불기한도 지났다. 내 인생에 빨랫줄 하나 없는 것이 큰일일까 아닐까를 생각하는 사이 DJ가 눈치채고 돌아봤다. 이거 하나를 못 하냐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위치를 바꿨다. 이제 꾸러미를 들고 따라오는 것은 그였다. 걸린 줄은 점점 길어지면서 무게를 못 이기고 점점 처지고 있었다. 내 마음도 무거워져 줄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마침내 양쪽을 이어 조임쇠를 돌리기 시작했다. 늘어져 있던 줄의 높이가 서서히 올라갔다. 여분의 줄을 몇 겹으로 겹쳐 전선 테이프로 감더니 나중에 줄이 더 처지면 여길 풀어서 더 조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줄에 걸릴락 말락 하는 사과나무의 가지까지 쳐내자 깔끔해졌다. 완벽한 작업이었다.
새 빨랫줄이 가져온 감동은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그건 그냥 빨랫줄이 아니라 남편 없이 집을 관리해야 하는 나의 막막함을 다독이는 한 줄 희망이었다. 빨래를 널며 올려다보니 뒷마당 담장 너머 나뭇가지에 다람쥐집이 걸려 있었다. 몬트리올 어느 곳을 가도 흔하게 돌아다니는 다람쥐인데도 사는 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다. 나무 위에 지은 집들이 새집인 줄 알고 살았다. 뒷마당을 들락거리면서 튤립 모가지를 분지르고 사과며 토마토를 익기도 전에 깡그리 훔쳐간 놈들이 나무 위로 도망가는 건 보았어도 얼마나 높은 곳에 집을 지었는지는 낙엽이 떨어지면서야 발견했다. 근처에 새로 짓고 있는 4층짜리 건물보다 훌쩍 높았다. 적어도 15미터, 20미터까지도 돼 보이는 곳에서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작은 다람쥐 둥지를 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너도 새끼들 먹이겠다고 그 높이에서 내려오곤 했던 거니?
사과나무는 2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어느 사과나무나 마찬가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뒷마당의 사과나무는 늘 2년에 한 번은 쉬었다. 올해가 그랬다. 커다란 나무에 달린 사과는 달랑 몇 개. 그래서인지 유난히 마른 몸집의 다람쥐들이 데크의 나무기둥까지 갉았다. 눈이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고, 멍멍이라도 내보내 왈왈거리며 쫓아야 담장 위로 올라가 버리던 녀석들이었다. 처음으로 놈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햇빛을 붙들고 데크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빨랫줄은, 하얗게 빛나는 나의 새 빨랫줄은 커튼과 목욕수건이 걸려 축 늘어져 있었지만 조이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나도 빨랫줄도 일단은 조금은 느슨해도 되지 않을까? 커피를 마셨던 컵을 찾다가 새 머그잔을 꺼내 홍차를 우리고 우유를 넣었다. 부엌의 서랍을 열았다가 닫으려는데 검은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전선용 테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