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 알람이 울렸다. 안 그래도 월요일은 공휴일이 많아 수업일수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던 교수님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복도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나서 우리도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안내방송이 흘렀다. 소방훈련이었다. 교수님은 포기하고 두 손을 휘휘 저어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강의실은 본관과는 두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학교에서 구입을 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밖은 오래된 건물인데 안에는 비교적 깔끔하게 레노베이션이 돼 있어서 큰 강의실이 많았다. 바로 앞에는 어떻게든 오래된 집의 디테일을 살리면서 재건축을 하느라 늘 복잡했다. 건물에서 쫓겨나 학생들 중에 우산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안이 훤히 보이는 성인용품 가게 앞은 피해서 어떻게든 학교 앞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는데 학교 경비들이 다니면서 DS관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학생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생 카트린 거리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이니까 수백 명 학생들이 길을 막고 있는 건 민폐였다. 나만 두고 다시 들어가 버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DS관으로 향했다. 자주 다니던 건물이었는데 안 쪽에 정원이 있는 건 처음 보았다. ㄷ자로 학교 건물로 둘러싸인 중정은 비록 꽃이 모두 다 진 후였지만 숙련된 가드너의 손길이 느껴졌다. 가운데에는 아기침대가 뜬금없이 놓여 있었다.
도대체 '대피용 아기침대 Lit d'évacuation'라는 게 뭘까? 설마 대피하는 공간이란 걸 알리는 사인? 검색을 해보니 어린이집에서 필요한 바퀴 달린 아기침대였다. 위급상황에 아이들을 태우고 피신할 수 있도록. 왜 하필 대학교 정원 한가운데에 망가진 채로 놓여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학교에 어린이집도 있으니까 거기서 사용하다가 버려진 건지, 아니면 정말 대피훈련을 위해 일부러 갖다 놓은 건지, 참 이상한 일이었다.
캐나다에서는, 미국하고는 다르게, 학교 총기사고가 많지 않다. 몬트리올에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 학교 총기사건은 2006년 다우슨 컬리지였다. 나는 그때의 희생자 이름과 가해자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25세의 킴비어가 18세의 아나스타샤를 죽인 날이었다. 저 유명한 1989년 에꼴 폴리테크닉 사건과 1992년 콩코디아 대학 사건 이후 세 번째 학교 총격사태였다. 하여간 대학 캠퍼스에서 대피라는 것이 고작 소방훈련이고 거기에 아기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은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그때 한 남학생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강의실에서 봤어요. 미국역사 듣고 계시죠? 수업엔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혹시 아세요? 어떻게 해야 돼요?
신입생이 가득한 교실에서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나를 기억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교수님을 제외한 유일한 중년, 그리고 아시안이었다. 안내방송의 반은 눈치로 알아먹을 수준의 내 프랑스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누구를 따라다녀야 수업에 차질 없이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중이었는데 원어민인 학생이 내게 그걸 묻다니 웃음이 났다. 소방훈련이 끝나고 다시 돌아간 교실엔 반도 안 되는 학생이 남아 있었다.
이 날은 대피하는 날로 정해진 운명이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지하철에서 내쫓겼다. 그래도 이번엔 안내방송을 다 알아들었다. 자주 듣던 내용이니까. 그냥 늦어지고 있으니까 내리라는, 밑도 끝도 없는 기다림... 나이가 들면서 없던 눈치는 생기는데 인내심은 줄어든다.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