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는 오래된 농담처럼 호박은 못생겨야 했다. 그중에서도 핼로윈을 장식하는 누렇고 납작한 호박을 어머니는 늙은 호박이라고 불렀었다. 어린 나는 분명히 덩굴에서 딴 지 며칠 안 됐을 그 호박의 이름을 그대로 늙은 호박이라고 받아들였다. 그 큰 호박을 집에서 통째로 요리할 일은 없었으니까 언제나 오렌지에 가까운 그 노란색은 형체를 잃고 죽이 되고 난 다음에나 볼 수 있었다. 그 호박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한 건 캐나다 이민 이후의 이야기이다.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이 미국보다 빠른 건 아마도 북쪽에 있어서가 아닐까 하던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구글은 '왜 캐나다 추수감사절이 미국보다 빠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띄웠다.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이 언제나 10월이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미국에 맞춰 11월일 때도 있었고, 지금의 10월로 정착한 것은 물론 11월은 추워지니까. 그 단순한 답을 캐나다 어느 기관 에디터와의 인터뷰로 나름 공식화했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영국 왕실에 충성하던 사람들이 캐나다로 건너왔는데, 그들의 전통이 남아 10월 둘째 월요일이면 칠면조를 굽고 으깬 감자와 크렌베리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하필 칠면조를 잡는 게 전통이 됐는지 설명하는 여러 가지 가설 중에 나는 많은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어서라는 이야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처음 칠면조 구이를 맛봤을 때, 몇 시간씩 구운 칠면조를 오븐에서 갓 꺼내온 맛이 아니라 포일에 싸가지고 온 차가운 가슴살이라는 걸 감안한다 해도,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그래도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명절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몬트리올의 재래시장 중, 앳워터 AtWater 마켓은 가을이 특별하다. 수백, 수천 개의 핼로윈 호박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이 추석에 송편을 먹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지나치는 해도 있었지지만, 그래도 절기마다 뭔가 기억할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살짝 마음이 들뜨는 일이었다. 특히 백수가 된 올해는 그랬다. 운전학원에서 아이를 픽업해 오다가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반해서 집으로 가던 방향을 틀었다.
근처의 길 이름이기도 한 앳워터는 운하 바로 옆에 있는 위치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에드윈 앳워터 Edwin Atwater라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1830년에 미국 버몬트 주에서 당시 로어 캐나다인 이곳으로 이민을 와서 페인트공으로 일을 시작해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이 사람이 세운 은행이 지금의 로렌시안 뱅크가 되었다고 한다) 아르데코 양식의 오래된 2층짜리 건물 하나가 길게 놓여 있고 그 앞에 야채와 과일, 꽃가게가 즐비한 모양새가 계절의 변화를 보기에 좋은 곳이다. 차를 주차하고 퀘벡의 빵집 체인인 프리미에르 무아송 앞을 지나 들어가니 가지런히 진열해 놓은 과일이 보였다. 마늘도 상추도, 심지어 비죽하니 자란 생강까지 이곳에선 예쁜 전시품이 된다. 그래서 일반 수퍼보다 조금 비싸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장바구니가 묵직했다.
게다가 호박마저도, 못난이 펌킨 호박들마저 앳워터 시장에서는 미인대회를 벌였다. 핼로윈에 무서운 얼굴을 조각하는 커다란 호박부터, 꽃으로 장식한 미니 호박까지.
캐나다에서 농민의 비율은 1971년 14명 당 한 명이었던데 비해, 2021년에는 무려 61명 중의 한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21세기의 추수감사절이란, 일 년 어느 계절에나 지구 곳곳에서 나는 곡물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시대의 추수감사절이라는 건, 원주민과 들짐승의 위협을 받아가며 간신히 거둔 밀과 옥수수를 모아두고 감사 기도를 올리던 17세기 신대륙의 삶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고단한 삶에 잠시 쉬어가는 방점 같아서 나는 이 수확물을 직접 거두기라도 한 것처럼 든든한 마음이 되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