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원* 열 번째 인터뷰. 구슬을 꿰는 마음으로
(인터뷰 당시 나이 30세, 남자)
요즘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한국에 사느냐 떠날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물론 나고 자란 이 나라가 싫다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다른 나라들을 다니다 보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습에 얽매여 있고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사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나라별로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문화적 교육적으로 깨어있는 점도 그렇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점도 부럽다.
만약 다른 나라로 가서 살게 된다면 그 후보지는 어디인가요?
지금 석사과정 중에 있는데, 박사로 유학을 떠나 먼저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미국에서 훨씬 더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 함께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서 더 그렇다. 북미도 좋고 남미도 좋아 둘 중에 고민 중이다!
남미 하니까 말인데, 최근에 브라질에 다녀오셨죠!
브라질의 여자 친구 집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바닷가에 인접한 그 동네엔 친구의 대가족이 몰려 살고 있었는데, 정말 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춤추고 먹고 마시고 놀았던 것이 너무 좋았다. 나라는 가난하고 삶은 풍족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나라인 것 같았다.
낭만적이고 따뜻한 풍경이 그려지네요! 지금까지 삶의 경험 중에서 나를 가장 크게 바꿔 놓았던 결정적 순간들이 있었나요?
믿을 수 없겠지만 예전에 나는 부모님께 엄청 순종적이고 좋은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입시 준비를 성실하게 하던 아들이었다. 그러던 중, 꿈 많던 사촌 동생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만났다. 동생의 젊음이 그렇게 안타깝게 져버리는 걸 보면서, 이 불확실한 인생에서 앞으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만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후 원하는 전공을 찾고, 여행도 더 많이 다니고 특히 휴학 중에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구속 없는 삶 속에서 세상의 일과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들이 나를 살찌웠던 것 같다.
20대에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셨잖아요. 특별히 좋았던 경험이나 기억에 남는 일들에 대해 들어보고 싶네요.
우선, 뮤지컬에 도전했던 시기가 있었다. 무대에서 음악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를 때 너무도 행복했다. 다음으로 테니스를 배웠던 것도 기억에 남는데, 승부욕이 강해서 더 재밌게 몰입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스포츠는 늘 재밌다. 세 번째로는, 군 복무 시절 연평도 포격 사건. 모두가 유서를 미리 써두고 각자의 자리에서 상황에 대처했는데 전투 상황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특히나 더 전쟁의 민낯을 온몸으로 겪었다. 이후 세상을 보는 눈도 안보에 대한 정치적인 견해도 많이 바뀌었다. 바리스타 공부를 했던 것도 재밌었는데, 그때 진짜 커피 맛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간을 이식해드렸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 이식하기 위한 최적의 장기 조건을 만들기 위해 식이조절과 운동을 하며 온 가족이 노력했고, 아빠는 감사하게도 지금 건강을 되찾으셨다. 전처럼 미술전도 다시 열면서 재밌게 사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의 길을 직선으로 밟는 데에 반해 휴학도 많이 했고, 유독 여러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려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내 인생철학은 그 어떤 경험이라 해도 득이면 득이 되지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군대를 위한 기간을 포함해서 도합 4년이라는 시간을 학교 밖에서 보냈는데도 절대로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요즘 ‘융합’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융합이 학문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경험이 서로 연결되고 증폭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이 언젠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을 색깔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색입니까?
카멜레온 색.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하긴 좀 힘들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색에 가깝다.
오늘 인터뷰를 끝으로 당신이 죽는다고 가정해보세요. 나 자신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요?
내일 죽는대도 오늘을 후회 없이 살자. 죽는 것도 재밌게 즐기자.
나는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리고 죽는다는 공포가 그 하루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걸 원치 않는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학교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진작에 학교를 떠났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 소리를 들어가며 동기들과 후배들이 모두 떠나버린 교정을 굳세게 지키고 있는 만학도. 하지만 그는 취업전선을 향해 지칠 때까지 몰아치는 학교생활을 하는 친구들과는 조금 달랐다. 내 눈에 친구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경험들을 학교 담장 밖에서 차근차근 쌓아가며 저만의 속도로 완행로를 걷는 방랑객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규격화되어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코스를 밟아야만 하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는 둘러 가는 방법이라는 걸 애당초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조금만 코스에서 벗어나도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과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그렇게도 좋다면서 인생의 둘레길을 걸어가라고는 그 누구도 권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희귀종처럼 느껴지는 이 친구의 여정을 듣는 것은 늘 즐거웠고 듣는 내내 나까지 가슴이 설렜다. 바리스타를 공부해 카페에서 커피 향에 취해보기도 하고, 테니스공을 후려치며 코트를 종횡무진하기도 하고, 핀 조명 아래서 노래와 연기를 해보기도 하고, 군대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보았으며, 브라질의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가 한 달 동안 그들의 일상에 녹아들어보기도 했다. 쌓여가는 술병의 수만큼이나 많은 경험을 늘어놓고 친구는, 이 모든 경험들이 언젠가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이 올 것이기에 그 어떤 경험도 헛된 것은 없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젊은 시기에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비축하는 것은 참 귀중한 일이지 싶다. 그 이야기는 놀이가 될 수도 있고, 친구와 가족같이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직업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여행, 또 누군가에겐 일상이나 취미가 되기도 한다.
느리다고 혹은 당장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대신, 구슬을 꿰는 마음으로 꾸준히 한 발 한 발 걸어보는 건 어떨까. 그것들이 모두 하나로 매듭지어지는 날까지.
마음의 정원 한 조각